헬 조선 - 괴물들의 사회 


       <쿠키뉴스 사진>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한 여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살해당했다. 경찰은 정신분열증환자의 피해망상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어 여성혐오 논쟁이 일어났는데 논쟁이 무슨 필요 있나. 저 흑산도의 끔찍한 수컷들의 만행이 모든 것을 웅변하는데. 거기에 그 만행을 둘러 싼 더러운 한국 패거리사회 속살을 보라. 이미 오래전에 우리는 이기적 욕구를 위해 도덕적 양심을 죽여 버린 세상을 살고 있다. 이명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숨은 힘들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많은 이들은 언제나 그랬다고 한다. 정말 그랬을까? 어떤 이는 한국 경찰처럼 병자나 사이코 패스의 탓이라 한다. 심지어 사람의 본성을 이기심과 탐욕으로 보는 이들에겐 그 정글 - 야만의 전장은 정상적인 사회가 된다. 그러니 자연스레 우리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쓰라린 탐구를 한다. 인간에게 정말 희망은 있는가? 

사람에게 사람이 가장 잔인한 존재라는 것은 어제 오늘, 동서양의 일이 아니다. 죽은 귀신보다 산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성악설보다 성선설에 마음을 기울인다. 그러다 머리가 좀 크면 성선도 성악도 아닌 백지론 정도로 양보한다. 사람은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키워지고 만들어 가는 존재다. 본능 본성은 사회적 존재로서 사람에게 절대적 조건이 아니다. 생선가게에 비린내 나고 꽃가게에 향내 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기에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까?  


모든 것을 개인의 몫으로 돌리면 보수, 모든 것을 사회 탓으로 돌리면 진보라고 한다. 보수는 지킬 것이 있는 사람들의 생각이다. 진보는 지금은 부족하고 억울한 이들의 염원이다. 지키려는 이들과 바꾸려는 이들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그 사회의 계급적 힘과 투쟁의 정도다. 지난 30년은 진보가 보수에 밀린 시간이다. 현존 사회주의 몰락과 미국형 제국주의의 극대화 속에서 신자유주의라 이름 지어진 세상이었다. 세상을 돈(이윤)이라는 유일신으로 단색화 됐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경쟁하는 존재다. 그 중심엔 시장이 있다. 이기적인 사람은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해 최고의 결과를 내놓을 것이다. 거기서는 성공과 실패가 오로지 자신의 노력에 의해 결정된다. 이기적인 유전자가 생명을 살린다. 그것이 생명의 윤리다. 사회라는 공동체란 없다. 오직 자기만이 자기를 책임진다. 쉬지 않고 성장하고 쉬지 않고 경쟁하는 무자비한 세상에서 평가와 순위매기는 불가피하며 탈락 또한 불가피하다.” 라는 생각과 함께.


하지만 현실에서 완전 경쟁이 가능한 시장은 없다. 태어날 때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금수저와 흙수저들의 경쟁이 있을 뿐이다. 성공과 실패가 이미 고정된 사회다. 공정 경쟁은 사기다. 그 결과 한국은 비정규직이 900만이 넘는다. 월 평균 임금 143만 원이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파리 목숨들, 빈곤과 차별이 당연하고 빈부격차가 경제적으로 효율적이라는 악마의 논리로 물든 세상이니 금수저가 아닌  젊은이들은 연애, 결혼, 출산, 집, 인간관계 등까지 줄줄이 포기하다, 심지어는 자기 목숨까지 포기해야 한다.


구의역에서 청년 노동자가 죽었다. 열아홉 청년, 가방에 든 컵라면, 생일 전날 당한 사고…. 익숙하게 세상은 “당신 아들의 잘못이다. 그가 매뉴얼을 지키지 않았고, 보고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죽음을 죽은 자의 탓으로 돌렸다. 정규직 노동자 파업은 ‘노동귀족의 파업’이고, 비정규직파업은 ‘공장을 무법천지로 만드는 불법 파업’이며, 민중 집회를 ‘IS 테러리스트의 난동’으로 보는 눈 그대로다. 그래도 이번엔 아니었다. 시민들은 “너의 잘못이 아니야” “그의 죽음은 불의의 사고가 아니야” “그의 죽음은 바로 지금 헬 조선 대한민국 자체야”라 외쳤다.

구의역 참사는 처음이 아니다. 2013년 1월 성수역, 2015년 8월 강남역에서 똑같은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초 삼성전자 부품회사에서 일하는 파견노동자 4명이 메탄올에 중독돼 실명했다. 올해에만 현대중공업에서 7명, 삼성중공업에서 5명이 목숨을 잃었다. 6월 1일 남양주 지하철 공사현장이 폭발 붕괴해 죽은 네 명의 노동자도 죽었다. 매년 2500명 이상의 노동자가 기업들의 살인 행위로 죽어간다. 구의역의 죽음은 어린 청년의 불쌍한 죽음이 아니다. 매년 죽는 2,500명의 죽음 중의 하나다. 계급적인 죽음이다. 계급적으로 보고 계급적으로 해결을 모색하지 않는 한 세상을 조금도 바꾸지 못하는 또 하나의 불쌍한 죽음이 되고 만다. 실업으로 굶어죽거나 과로사 산재로 죽는 세상은 계속된다.  


죽음의 시대를 만든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신자유주의가 만든 능력주의 환상이다. 경쟁을 통해 모든 인간적 유대, 공동체적 친선을 지워버렸다. 더불어 사는 관계가 아니라 좀비 아니면 사탄이 되어야 사는 적자생존 승자독식의 사회다. 신자유주의, 더 정확하게 말하면 도덕적 통제 없는 자본주의 세상에서 사람은 다른 이에게 그저 승냥이 괴물이다. 그 결과 시작부터 패배자가 양산된다. 그들의 불만은 더 약한 먹잇감을 노리는 비열함으로 미끄러진다. 이른바 혐오범죄다. 미국형 제국주의 지배 체제인 신자유주의 세계화, ‘이윤이 인간에 우선한다.’는 입장이 세상을 헬로 만든 진짜 주범이다. 


천박한 양아치자본주의 대표쯤 되는 한국사회는 더 불행하다. 식민지노예로, 총칼의 노예로 이제 돈의 노예로 살아 온 역사가 더 흉폭하고 파렴치한 세상을 만들었다. 어떤 도덕적 갈등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시체를 도막내는 사회다. 괴물 세상을 만든 진짜 괴물들은 가짜를 내세워 아무런 의무 없이 무한의 권리를 누리고 있다. 원하청, 무전유죄, 전관예우, 대형로펌.. 무수한 거악들이 내세운 장막이 거악의 몸통을 가리고 있다. 그 몸통을 똑바로 보자. 사회적 약자의 불만이 또 다른 사회적 약자로 향하는 질병, 혐오범죄, 묻지마 범죄가 아니라 저 장막 뒤 괴물의 몸통에 불만의 저항을 하자. 괴물세상을 사람세상으로 바꾸는 유일한 길이자 우리가 사는 길이다.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소장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