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사람이 쓸쓸히 돌아가지 않게하라' 는 고 김수환추기경 님의 요청으로 1975년 금천구 시흥동에 전진상의원이
생겨났다.
그로부터 35년이 지난 지금, 전진상 의원은 여전히 시흥동 그 자리에 있다.
노란머리의 외국인 간호사와, 약사, 사회사업가 3명의 주말진료로 시작한 전진상의원이 생긴 이후, 이 동네에 어떤일이 벌어졌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전진상 의원/복지관의 문을 열었다.

 

기자를 맞이하는 최혜영 사회복지사는 오늘도 여전히 분주하다.  대기실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진료상담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가 진료상담을 한다? 언뜻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지만 전진상의원/복지관의 시스템을 알고나면 쉽게 이해된다. 이곳은 단순한 병원이 아니다. 의료와 사회복지가 통합된 개념으로, 환자가 왔을 때, 사회복지사가 먼저 상담을 하여 의료적인 문제 뿐 아니라 전반적인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 알고 적절한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즉, 의료적인 필요를 가지고 온 환자들의 근원적인 삶의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가난의 연결고리를 끊는 해법으로 '의료와 교육의 기회 제공'을 선택했다.  그 일환으로  의원, 약국, 지역아동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1977년부터 무료유치원도 운영하였으나, 보육지원정책이 일반화되면서 무료유치원에 대한 필요가 감소하여 작년부터 자연스럽게 운영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이쯤에서 전진상이 왜 금천구를 선택하게 되었는 지 궁금해졌다. 대답대신 보여준 당시 동영상에는 지금의 벽산아파트 자리까지 판자촌으로 빽빽히 들어선 1975년의 시흥동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1980년부터 의료보험이 본격적으로 적용되었기 때문에 설립당시 판자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병이 났을 때 속수무책이었으므로 무료의료서비스에 대한 필요가 절실했던 것이다. 의료보험과 보호가 적용되는 지금은 차상위계층 등의 저소득층의 전월세계약서를 확인하여 진료대상을 정하고 있다.



가정의학으로 시작된 의원은 35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산부인과, 신경과,신경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외과, 비뇨기과, 재활의학과 등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이처럼 종합병원 수준의 진료가 가능한 이유는 60 여명의 의료진 자원봉사자가 있기 때문이다. 현업에 종사하고 있는 의료진들이 주 단위로 돌아가며 저녁시간에 자원진료를 하고있는데, 밤11시가 넘어서까지 진료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전진상의원은 낮보다 밤에 더 생기를 띤다. 물론 낮에는 상주하는 가정의학전문의가 진료를 보고있다. 이처럼 주야간진료가 매일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공동체생활을 하며 상주하는 6명의 의료팀과 자원봉사자 후원자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재 전진상의원/복지관에서 중점적으로 펼치고 있는 것은 말기암환자의 호스피스 사업이다. 진료의 기회가 제한되어있는 중증환자에게 방문진료를 시작하면서 2009년부터 호스피스사업을 의료보험수가로 적용받기 위한 시범사업기관으로 선정되었다. 여명이 6개월 이내인 말기암환자인 경우, 암치료가 불가능하다는 병원소견서를 구비하면 누구나 무료로 입원하여 여생을 보낼 수 있다. 이는 본인 뿐 아니라 가족들에게 힘이 되는 일일 것이다. 실제로 독산동에 거주하시던 59세의 유방암 환자는 가족과의 불화로 혼자 살다가 전진상의원을 알게되어 성모병원과 연계되어 항암진료를 받고 뇌로 전이된 후 이곳에서 2개월동안 외롭지 않은 여생을 보내셨다. 말기암환자의 돌봄 뿐 아니라, 완화의료센터를 통해 음악,미술치료, 가족간화해 등의 정서적인 부분과 환자의 사후 가족모임까지 진행되고 있는데 말기암환자와 가족들의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한 세밀한 배려가 느껴진다.

최혜영 사회복지사는 "말기암환자들의 입원비와 저소득층의 경우 간병비까지 지원되지만 알지 못해 이용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계시니 안타깝다" 며 기자에게 홍보를 부탁하였다.  문의전화 02)802-9313 / 02)802-9311

 

병원을 나서며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르신에게 이 병원을 이용하시는 이유를 여쭈어보았다. 의료비는 둘째치고 이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면 잘 낫는다고 입소문이 나서 친구의 소개를 받아 진료를 보러 오게되었다고 한다. 12년째 시골에서 올라와 한달에 한번씩 이용하신다는 옆에 계신 할머니도 여러곳에 가 보았지만 이곳만큼 진료를 잘 하는 곳을 본 적이 없다고 하신다. 특별한 의술이 있는 것도 아닌데, 유독 이 병원에만 오면 아픈 것이 쉽게 낫는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이곳에서는 몸의 병 뿐 아니라 환자의 마음을 헤아리기 때문일 것이다.

환자의 전반적인 삶에 관심을 가지는 의원, 이런 기관이 오랫동안 금천구에 자리잡고 묵묵히 일해오고 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다. 


김수진 기자
gc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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