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에 불태우는 학업의 열정
“공부가 이렇게 좋을 수 없다”
“일, 이, 삼, 사, 오”, “하나, 둘, 셋, 넷, 다섯”
숫자를 소리 내어 읽는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수학 공부 열기로 가득한 이곳은 가산초등학교 다목적실이다.
책상 위에 생전 처음으로 접한 수학책을 올려놓고, 돋보기안경 너머의 두 눈동자를 반짝이는 학생은 다름 아닌 가산동에 거주하는 어르신들이다. 또한, 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는 선생은 가산초등학교 박승선(60) 교장이다.
11월초부터 매주 수요일, 가산초등학교에서 수학과 역사를 격주로 배우는 ‘상록수 학교’가 열리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11월 28일에는 수학을 공부하는 날이었다.
‘상록수 학교’란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가산동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가산종합사회복지관과 연계하여 가산초등학교 박승선 교장이 초등학문을 교육하는 것인데, 이는 가산종합사회복지관 자원봉사 선생들이 진행하고 있는 마을공동체 사업인 ‘금천구 노인 초등학교 체험 사업’의 일환이다.
과거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기초교육을 받지 못한 어르신들은 ‘상록수 학교’에서 숫자를 세고, 덧셈·뺄셈을 하면서 공부의 재미를 알아가고 있다.
올해 84세인 김순옥 할머니도 선생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놓치지 않으려고 두 귀를 쫑긋 세워 집중하는 모습에서 열정이 느껴졌다. 온갖 풍파를 헤치며 살아온 세월의 무게만큼 주름진 손으로 연필을 꽉 쥐고 쓰는 모습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김 할머니는 “살날이 얼마 안 남았지만 뒤늦게라도 이렇게 공부하니 재미있고, 정말 좋다.”며 수줍게 웃었다. 어렵지 않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어려운 것이 있어도 선생이 가르쳐주니까 괜찮다”고 답했다.
수업 도중에 박승선 교장이 “내년 3월 4일, 1학년 입학식 때 여러분도 함께 입학식을 하고, 1년 후에는 학교장 명의로 명예졸업장을 드리겠다”고 얘기하자 윤계순(80) 할머니는 두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감사합니다”라고 가늘게 떨리는 목멘 소리를 내셨다.
황혼의 나이에 공부하는 어르신들의 즐거움만큼 ‘상록수 학교’에서 연상의 제자(?)를 가르치는 박승선 교장의 기쁨도 남다를 듯하다. 박 교장은 “제 부모가 글을 모르신다. 그래서 (글을 모르시는) 어르신들에게 배움의 기쁨을 드리고 싶었다”며 “내년에는 상록수 학교에서 봉사 할 재능기부 교사가 4명 더 확보됐다. (상록수 학교를) 활성화해서 더 많은 분들이 즐겁게 공부하실 수 있도록 하겠다”는 소감과 계획을 밝혔다. 또한 덧붙여 “어르신들이 상록수처럼 늘 푸르고, 젊게 사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최복열 기자
90by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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