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들을 만나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적이 있다. 다섯 달 정도 병원신세를 져야했는데 그 때 내가 놀란 것은 입원 환자 열에 일곱, 여덟이 노인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많은 노인들이 자식이나 친구가 있어도 말 한마디 제대로 못 나누고 떠나신다는 것이었다. 



그런 노인들을 지켜보며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도 이야기를 들려 드린다면 그 분들이 잠시나마 병으로 인한 고통과 외로움을 잊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리고 두 해가 지난 지금 나는 노인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 있다. 목요일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요양원 가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다. 

 할머니들을 뵈면서 나는 내 할머니를 추억하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송편을 반달처럼 빚으셨고, 문종이를 바를 때는 꼭 문고리 옆에 꽃잎을 따서 넣으셨다.

밥상에 둘러앉으면 된장고기라며 된장덩이를 내 밥숟가락 위에만 얹어 주기도 하셨다. 비록 학교에서 가르쳐 주는 것과 다르다고 무시해 버렸지만 마당에 풀을 뽑으며 온갖 풀이름을 가르쳐주시기도 했다. 

그것뿐인가? 아침마다 엄마와 싸우긴 했지만 겨울이면 항상 우리 삼남매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유난히 기억력이 좋은 할머니는 글자는 모르셨지만 해님 달님 이야기며 소가 된 게으름뱅이 같은 옛이야기 뿐 아니라 성경이야기도 해주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책 읽기와 이야기 듣기를 좋아하는 것은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듣고 자란 때문이 아닐까? 그 이야기들을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사실 내 할머니를 떠올리며 요양원에 계신 할머니들을 만나니 그분들을 즐겁게 해드리려는 마음보다 할머님들이 가진 이야기를 듣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이제는 잊어버려 토막 난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찾아 잇고 싶은 것이다. 버려진 들풀의 이름을 찾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내 기대와 달리 요양원 할머니들은 이야기를 잘 모른다. 돌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거동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편찮으신 분들이나 치매에 걸린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한번은 서정오 선생님의 <이상한 냄비>를 읽어드렸더니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친구들한테도 들려주고 싶다 하셨다. 내가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돌아가고 나면 재미난 얘기를 잊어버릴까봐 불을 떼서 밥을 하면서도 이야기를 외운다고 하셨다. 이야기를 들려드리면 맞장구도 잘 쳐주시고 잘 웃고 하셔서 그냥 몸이 좀 불편하시려니 했더니 치매 환자였던 것이다. 또 하루는 책을 읽으려 하는데 한 할머니 애기가 없어졌다고 야단이 난 적도 있다. 분명히 등에 업고 나오셨는데 아이가 없어졌다는 거다. 옆에 할머니가 엄마한테 잘 데려다 주었다 하니 몇 번이고 확인을 하고 이야기를  들으셨다. 

 오랫동안 고민하다 할머니들께 책을 읽어드린 지 열 달이 되었다. 살구밥집에 오시는 어르신들에 이어 사랑채 요양원에 간 것도 벌써 네 달이 됐다. 이제 옛이야기에 대한 욕심은 좀 버리고 할머님들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들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래서 이야기도 서로 나누고 노래도 같이 부르곤 한다.  

할머니들, 노래는 즐기셨는지 노래를 부탁드리면 주저하지 않으시고 부르신다. 영감님이 보고 싶다는 할머니는 처음 들어보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셨다. 

'영감아, 땡감아, 뒤지지를 마라. 인절미 콩고물 청 찍어 주마' 하고 부르시는데, 짧지만 할아버님을 보고 싶어 하는 할머니의 마음이 느껴졌다. 

때로는 유행가를 고쳐서 불러주실 때도 있지만 어쨌든 생전 듣고 보지도 못한 노래를 들으며 이야기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고 있다. 

  *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은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있어요. 그 중 오랫동안 지속해온 책읽어주기-찾아가는 도서관-활동과 도서관 활동의 바탕이 되는 책읽는 어른 동아리 중 신입이야기를 소개합니다.매년 봄이 되면 책 읽는 어른 “함박웃음”이 모집이 되어 한 해 동안 그림책, 동화, 옛이야기를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2014년에 함께 책 읽는 신입회원들은 16기랍니다.

다음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진행하고 있는 '찾아가는 도서관' 활동입니다. 도서관이 있어도 찾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직접 찾아가서 책을 읽어주는 활동 프로그램이죠. 2014년에는 지역아동센터, 다문화가정들, 장애 청소년들, 활성화를 찾는 작은도서관, 어르신들이 모이시는 곳 등 10곳에 나가서 책 읽어주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르신들을 위한 책읽기는  2013년도에 이어 올해에도  세 곳의 어르신 만나고 있습니다. 

은행나무어린이 도서관은 탑동초등학교 옆에 새 둥지를 틀었습니다. 도서관 이용 및 활동 문의는 ☎ 892-7894 입니다.


*  본지는 '작은도서관이야기' 의 지면을 만들고 있습니다. 도서관이 마을의 중심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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