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모 칼럼]  4·13 총선 그리고 4·19혁명


제 20대 국회의원선거가 끝났다. 모두들 여당이 참패하고 야당, 그러니까 그간 양당체제를 이끌고 있는 제 1야당이 승리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선거 결과의 외형의 한 단면일 뿐 본 모습이 아니다. 결과부터 말하면 선거에 임한 정치세력은 모두 패배를 했고 승리를 한 주역은 국민이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이 주장에 동의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선거결과는 정치세력들이 지향한 방향이 아닌 국민들의 지향이 되었기 때문이다. 즉, 국민들은 정치세력들의 기대를 거부하고 국민들이 바라는, 그러니까 앞으로의 정치세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그것도 아주 명료하게 제시해 준 것이 이번 선거의 결과다.

4·13선거를 이렇게 보는 것은 그 선거의 결과가 냉정하고도 이성적(理性的)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필자만의 감각일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선택이 과거의 선거행태와 차별 점을 가진다. 다시 말하면 과거 선거에서 명확하게 구분되던 지역성의 의미가 옅어졌는가 하면 그 결과도 주목할 만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석에 설득력을 갖게 하는 결과가 있는데 그 곳은 다름 아닌 금천구의 선거행태이다. 이곳의 행태 즉 투표결과는 모든 선거권자와 정치권력 지향자들이 유의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이번 선거는 물론 앞으로의 모든 선거에 대한 국민의 자세로 가치를 가지기 때문이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우리나라 선거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는 말미에 보다 다시 살피고자 한다. 그것의 시사(示唆)점을 보다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서다.

이번 선거가 여러 유형으로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던 무렵 4·19를 만난 것은 이 선거에 내재한 현상들과 조화되어 묘한 여운을 던진다. 그 혁명은 우리나라 민주주의와 그것을 지지하는 수단인 선거라는 장에서 이 나라 국민에게는 영원한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 현대사를 본다.

문화민족인 우리나라가 가까운 시기에 우리보다 못한 이웃 민족에게 지배당한 슬프고도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이는 당시 국가 즉 조선왕조 국가권력의 무능으로 인하였다. 그 왕조의 선 역사에는 세종대왕을 위시하여 장영실, 율곡, 퇴계 선생에 더하여 나라를 구한 이충무공 그리고 조선 후대의 정조대왕과 다산(茶山) 선생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들이 있었고 그들로 하여 문명이 진보하고 문화국가로서 찬란히 빛을 내었지만 후대에 이르러 허망하게도 나라를 빼앗겼다. 이러한 과정은 모두가 알고 있듯이 당시 국가권력의 무능이고 그것은 그 시대에 마련된 정치권력 생성환경이 원인이다. 결과적으로 민초(民草)들의 고통의 시간은 일상사가 되었고 그것은 현대에까지 연장되었다.

연합국의 승리로 일제의 강압에서 해방된 기쁨도 잠깐 이 땅의 민초들은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나타난 새 권력에 의해 다시 고통의 시간을 맞았고 그것은 어쩌면 타민족의 지배 때보다도 더 괴로운 시련의 시간이었다. 조선조 600년은 인간의 보편성이 경시된 시간이고, 일제 35년은 민족자존이 부인된 시간이었다면 동족에 의한 12년은 인간의 존엄성이 유린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무능과 부패한 조선 왕조를 포함한 일제 강점기 과정에서 고통을 벗어나기 위한 선각자들의 희생적 활동이 있었으나 하늘은 이 민족에게 고통 감내(堪耐)만 요구할 뿐이었다. 마침내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서방국가들에 의해 해방을 맞았지만 그것도 잠시 이 땅은 다시 암흑의 시간이 시작되었으니 민주주의를 내세우는, 더러는 선각자라 칭송하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수장으로 하는 정치권력의 등장이다. 4․19혁명은 이러한 긴 시간의 민족의 악몽을 단절하는, 진리찾기의 신호탄 이다. 

이승만 정권은 해방 후 이른바 해방정국 3년이 지난 1948년 정부 수립 후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발췌개헌(사사오입 개헌)과 같은 비정상적 방법으로 집권을 연장하였고, 그것도 시간이 차자 헌법의 중임제한규정을 고쳐 영구집권 바탕을 만들었으며(3선 개헌), 이를 공고히 하려고 대통령 유고 시 권한대행자인 부통령조차 그들 세력으로 하고자 관권 선거에 더하여 부정선거를 자행했는데 이것이 3․15 부정선거(1960년)이고, 이에 국민들이 저항한 것이 4․19혁명 곧 시민혁명이다. 

선거를 이야기하면서 4․19혁명을 이야기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선택된 선거의 역사를 알고, 그것이 인간다운 사회를 형성하는데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가를 이해하고자 함이다. 그렇게 이 땅에는 선거로 인하여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희망이라는 화두를 갖게 하는 동기가 된다.

선거 이야기를 계속 해보자. 이번 선거는 이런 점에서 여러 시사점을 주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항후 선거방향의 중요한 지표가 된다. 정치권력이 국민을 경시하거나 오만해 질 때 이번과 같은 양상이 된다는 것을 정치권력 지향자는 물론 선거에 참여하는 국민이 함께 이해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의미를 가진다.. 

여당이 참패한 것은 설명의 여지가 없다. 그런가 하면 제1 야당도 마찬가지다. 숫자는 인간의 말초를 자극할 수 있지만 마음을 흔드는 요인으로는 완전하지 못하다. 그것 즉 숫자에는 그 생성 배경이 되는 상황별로 내재한 논리가 있고 4·13 금천구의 선거결과가 그에 대한 설명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번 선거의 승자는 오로지 국민이다.

관심을 가진 이들은 금천구의 투표결과, 즉 숫자로 나타난 현상에 대한 나름의 이해를 가지겠지만 그것은 향후 우리나라 선거제도에서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선택의 한 유형이다. 그런 점에서 금천구의 선거권 자를 포함한 구민들은 자부를 가져도 좋다. 단 사족(蛇足)을 붙이면, 투표율이 지금보다 높아야 한다. 재삼 말하지만 숫자는 그것의 많고 적음으로 논리를 갖게 되는데 긍정과 부정도 그 현상의 하나이다. 여기서 긍정은 많은 것이고 부정은 그 반대다. 금천구의 이번 선거결과는 교훈이 되지만 부족함도 있다.(♣2016.04.21.)


장제모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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