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모칼럼] 마을신문을 이야기 하다





언제부터인가부터 우리 사회에는 동네마다 마을신문이 있다 할 정도로 마을신문 풍년이다. 좋은 현상이다. 마을에 신문이 있다는 것은 다양한 정보의 수요 공급을 통해 그 마을의 역동성을 기할 수 있다. 마을신문은 그 곳의 밀집된 정보들이 망라된, 마을의 소식들 곧 정보의 생산 장이자 교류장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운영자의 능력에 따라 생활의 방편으로서도 기능할 수 있으므로 일자리 창출에 더하여 마을의 발전에도 기여하고 더불어 사회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마침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정부에서도 마을공동체 사업 일환에서 공모 등의 방법으로 ‘마을 미디어’ 확대 정책이 시행되고 있어 주민들에 의한 마을신문 등 미디어의 창설과 운영을 자극하고 있는 것도 발전 동력으로 볼 수 있다. 


 마을신문이라 해서 과소평가 하는 것은 경솔한 처사이다. 기사 량 등 신문으로서 규모가 작을 뿐 최소한 신문이 가져야 할 것은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신문의 역할은 정보의 생산과 공급인 것은 마을신문들도 또한 존재 이유다 다만 정보의 수요 공급이 한정된 대상과 공간이라는 점이 대형 신문을 비롯한 일반 신문들과 차이일 뿐이다. 이러한 마을 신문의 특성은 그러나 장점이 될 수 있다. 특정지역이 무대이고 그 공간 즉 고정된 독자들이 정보 수요자라는 점에서 신문에 대한 집중도는 오히려 마을신문이 더 높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신문의 기능을 비판자적 역할에서 찾는다. 신문의 역사가 시작된 것도 이러한 동기에서 찾을 수 있고 그래서 일찍이 신문을 ‘사회의 목탁’이니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들이 회자되었다. 이기주의가 속성인 인간들의 생활 공동체에서는 비판이 필요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들을 경시 또는 외면하면 공동체적 질서가 교란될 수 있어 이를 예방 또는 확대 방지가 필요한데 그것을 신문의 임무로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역할을 방송 등 다른 매체들도 담당하고 있지만 신문(종이신문)이 그 원조인 것이 곧 신문이 미디어의 상징이자 중심으로 이해되는 이유 일게다. 이러한 공식은 인터넷 등 ‘에스엔에스(SNS)’가 범람하는 디지털 시대인 오늘날에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 

마을신문도 신문인만큼 이러한 전통적이자 고유한 기능인 비판은 외면 될 수 없다. 작던 크던 정보의 생산과 보급이 신문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정보라는 것은 따지고 보면 사람 사는 이야기 즉 인간사들이 소재다. 사유(思惟)하는 인간들의 삶이니 수많은 사연들이 얽히고설켜 다양성의 집대성인 그 곳에 비판의 수요는 매일같이 발생하고 있지 않겠는가? 

비판이 없는 신문은 죽은 신문이다. 이는 곧 짠 맛을 잃은 소금과 같다. 신문들은 비판적 기사가 독자를 부르는 요인인 것을 잘 알고 있다. 인간의 보편성은 정의에 기조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문들은 논단이나 칼럼과 같은 비판이 주조가 되는 편집을 선호한다. 그렇듯 비판의 질과 양이 신문의 외형(外形)이 되는 것이 신문의 역사이고 전통이다. 


그런데, 마을 신문도 이런 유형의 편집이어야 하는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마을신문은 이런 보편성에 함몰되지 않는, 즉 일반신문과는 달라야 한다. 거북한 이야기 보다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많고, 부정성 보다는 긍정성이 많은 신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물론 비판이 필요하고 그것이 비록 거북하고 부정적인 면을 보여준다 하더라도 그것이 사실이라면 기사화는 당연하다. 비판은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동기로 작용할 수 있으니 말이다. 다만 굳이 비판적 접근이 요구되지 않는 경우인데도 비판의 강조는 바람직하지 않고, 객관성이 미흡한 비판적 구성은 하지 말야야 한다. 마을신문은 이런 면에 취약하다.

마을신문이라 하여 신문의 보편 형식구조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아니다. 마을신문이 형식을 지키는 것은 나쁘지 않으나 그 구성에 있어 일반신문과는 차별되는 편집 형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분명하게 말하고 싶은 것은 마을신문은 마을신문 다운 구성이 되어야 한다. 어떤 구성이 마을신문 다운 것인가는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자.


재차 말하지만, 마을신문이라 하여 추구하는 가치가 일반신문과 다르거나 차이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지금부터라도 마을신문이 추구해야 할 가치를 따로 두어 보자는 제안을 하고자 함이다. 신문이 가지는 통념적 가치에 함몰되지 말고 새로운 가치의 생성 즉 시대적 변화에 순응하는, 새로운 마을의 가치를 함께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분명하게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마을신문은 일반신문을 넘을 수는 없다. 노력하고 노력하여 일반신문에 버금 될 모양을 갖췄다면 이제부터는 일반신문이지 더 이상 마을신문이 아니다. 마을신문이라는 이름의 구속을 거절하지 않는, 소박함의 구성이 마을신문의 본질이어야 한다. 지향해야 할 가치가 일반 신문과는 다른, 마을 신문만이 가지는 형식구조 즉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말이다. 어떤 가치를 창출 할까는 운영당사자들이 할 일이다.

마을이라는 단위는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그 규모의 차이기 있겠지만 이웃이라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한다. 도시에서 이웃이란 그 경계가 모호하다.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를 수 있는 것이 오늘의 도시 현상인 것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도시에는 이웃으로 이해해야 하는 공동체들을 말하는데 크게는 기초 자치구 작게는 행정 동 단위가 그것이라 본다. 

필자가 거주하는 금천구에도 대여섯 정도의 마을신문이 있다. 규모도 비슷하고 편집 방향등도 비슷한 것 같으나 운영 모습은 각각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경영의 형태와 운영자의 구성을 볼 때 그렇다. 그런데 분명한 공통성이 보인다. 하나 같이 열악한 재정상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재정이 어려운 것은 현재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대개의 마을신문의 현실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추정 밖에 있는 것도 있겠지만 필자가 이해하는, 민간에 의해 운영되는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마을신문은 다 그런 것 같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열심히 신문을 만들고 있는 운영자들이 대견함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마을신문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중요한 수단이므로 활성화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임무는 우선 운영 당사자들이 담당해야 한다. 그들 스스로 택한 길이고 그것은 자신의 신념의 소산이라 이해하기 때문이다. 잘 해내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도 해야 하지만 전략도 필요하다. 목적 달성은 노력과 전략이 아우를 때 달성확률이 높다. 앞에서 제기한 마을신문만의 가치를 고민하는 것은 전략 수립의 포인트가 된다.

마을신문이 있는 공동체 구성원인 주민들도 활성화에 동참해야 한다. 마을 공동체의 공동선을 이뤄내는 중요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공동선은 민주주의에 의해 구할 수 있는데 마을신문은 그것을 해낼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이 된다. 참여가 도움이다. 곧 독자가 되는 것이다.  


행정관청도 마을신문 활성화를 도와야 한다. 정책과제이자 목표인 풀뿌리 민주주의 실현을 도울 수 있는 시스템이 되기 때문이다. 현 제도에서 방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시행을 위한 이른바 ‘주민참여’를 내세우는 각 행정사무에 마을신문을 돕는 장치를 두면 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는 공무원의 몫이고,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성실한 복무라 생각한다. 

그리하여 마을신문만의 가치를 가지는 신문이 우리 고장인 금천구에서 가장 먼저 탄생하기를 기대한다.

(♣2017.04.23.)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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