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너희가 민주노총의 6.30 사회적 총파업을 알어?



 

새 정부가 들어서며 기대가 높아졌다. 박근혜 정부를 심판 한 것은 광장의 촛불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정권의 심판을 주도한 결과가 아니라 그 부산물이다. 당선의 힘이 더불어 민주당에 귀속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많은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촛불이라는 이름 앞에서 미증유의 과감한 혁파가 새 정권의 의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이전과 다름없다. ‘기다려라. ‘가만히 있어라가 아니라서 다행일까? 그런데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대한 반응을 보니 이건 뭐 더 한다. 반백년을 넘게 살면서 노동자들의 총파업 환영 보도를 제대로 본 적이 없지만, 경제가 어려운데, 북의 위협이 가중되는데 웬 파업이냐 식의 터무니없는 구박, ‘가뭄이 들었는데 웬 파업이냐는 조동중식 시비도 못해 이제 새 정부 아래서 웬 파업이냐라는 말까지 듣고 있자니 말이다.

 

파업은 헌법적 기본권이다. 애초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단결과 교섭과 파업을 다 불법 범죄라고 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전은 노동자들의 주장이 인간 존엄의 최소한의 기본권으로 만들었다. 자본주의가 즉 민주주의가 아님을 잘 말해 준다. 민주주의는 결국 노동자 민중의 투쟁의 결과라는 것도 함께 보여 준다. 노동자들이 불법 불온 범죄 취급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투쟁을 해온 과정이 민주주의와 인권이 발전한 역사다. 그런데도 아직도 노동자들의 투쟁은 현실에서 불법 불온으로 몰려 탄압을 받는다. 민주노총의 6.30 사회적 총파업에 대한 부정은 현실을 지배 중인 과거가 미래의 희망을 탄압하는 것이다. 특권과 반칙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능멸하는 것이다. 그 탄압과 능멸의 명분이 노동계가 새 정권 하에서 욕심을 쏟아 붓고 있다니 기가 막히다.

사람들은 630일에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한다는 것만 알고 있다. 파업의 내용에 대한 관심은 없다. 6.30 사회적 총파업에 돌입하는 노동조합은 최저임금 노동자이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의 6.30 총파업은 최저임금 총파업’, ‘비정규직 총파업이다. 민주노총은 민주노총 역사상 최초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앞장서는 파업이라 하고 있다. 이른바, 돈과 권력이 말하는 노동귀족의 배부른 요구가 아니다.

 

6.30 총파업 요구는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철폐, 노조 할 권리 보장이다.

비정규직은 나와서는 안 되는 제도다. 인간을 일회용 소모품 취급하는 노예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박한 비정규직 철폐다. 노조 할 권리는 이미 헌법이 권리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민주 노조를 한다는 것은 왕따에 폭행에 해고를 당할 결심을 해야 한다. 단식, 농성, 고공, 거리 노숙... 무수한 고난에 대한 감수다. 박근혜 정권에 맞서 투쟁하다 유일하게 자기 조직의 대표를 구속시킨 민주노총인데 민주노총을 숟가락 얻는 세력으로 폄하한다. 그러니 투쟁하는 민중들에 대한 따듯한 위로가 아니라 백남기 열사를 죽인 폭력을 동원하여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현실에서 도려낸다. 헌법 속에서 유산된 노조 할 권리가 절박한 이유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6.30 파업은 최저임금 파업이다. 630일은 다음 해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법정 한도일이다.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가지고 해 온 노사정 교섭의 정점의 순간이다. 그 날 제대로 된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 온 노동자가 힘을 모으자는 것이 6.30 파업의 시기적 의미다. 이것은 정권의 신구 유무과 무관하다. 비정규직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생존이 걸린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의 최저는 사람이냐 짐슴이냐를 가르는 마지노선이란 말이다. 그 이하는 인간이되 인간 취급을 안 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 존엄의 최저 기준을 상향하자는 것이 노동의 요구다. 자본은 인간 존엄의 기준을 하향하자고 한다. 그러니 자본 논리의 승리는 인간 존엄의 파괴고 노동의 승리는 인간 존엄의 상승이다. 자본의 승리는 결국 인간의 사회를 개돼지의 세상으로 만드는 폭거다. 민주노총의 6.30 파업은 인간존엄을 수호하는 숭고한 파업이다. 이기심을 벗고 함께 살자는 고귀한 투쟁이다. 누가 이겨야 하는가? 박근혜와 촛불의 투쟁에서 촛불이 이겨야 하는 것만큼 뚜렷한 이 모습을 왜 보지 못할까? 민주노총의 6.30 총파업의 반대는 스스로를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애국이라 외치는 망령 난 늙은이로 만든다. 최저 임금이 모든 임금이 되어버린 더러운 나라 대한민국에서 인간존엄이 보장되는 삶의 최저 기준을 조금이라도 올려 보자는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진정한 촛불정신이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최저임금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을 노동귀족이라 욕했다. 그들이 자기들의 임단협 투쟁에 나서면 이기주의라고 비난했다. 이제 민주노총이 최저임금의 인상을 가지고 전체 노동자가 사회적 연대 정신으로 파업을 선언했다. 필자는 당연히 민주노총을 비난하던 이들이 민주노총을 칭찬 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인간의 존엄성을 올리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헌법적 기본권인 노동 3권을 보장하는 것이 새 정부 1년차에 발목 잡는 파업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는 인간 존엄에 발목을 잡히는 정부인가,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정부인가? 궁금하다.

 

한미 FTA 협상 반대가 광우병 촛불로 번졌다. 그 이후에 한미 FTA에서 미국이 한국에 충분한 양보를 얻지 못했다는 미국 내 비판에 대해 미국 정부는 더 양보를 받고 싶어도 한국 내 촛불 시위 때문에 할 수 없었다고 답했다. 한미 FTA에서 한국 측 교섭 단은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작자들이라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말 협상은 결국 잘난 정부대표의 외교관들이 아니라 거리에 나선 국민이 했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사회적폐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다. 그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민()을 관객이 아니라 주인이 되게 해야 한다. 적폐의 뿌리는 언제나 돈과 권력을 지닌 자들이다. 그들과의 투쟁을 위해서라도 촛불은 거리를 지켜야 하고 노동자 민중들은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요구를 선명하게 들어야 한다. 요구를 든 이들을 적극지지 연대해야 한다. 그래야 촛불은 비로소 세상을 바꿨다 할 것이다. 민주노총의 6.30 파업에 대한 반대는 광장의 촛불을 사유화 하거나 변질시키겠다는 지독한 탐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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