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왔다




2018년 여름은 정말 더웠다. 계절이 여름이니 더운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당연하다는 말에 저항이 들 정도로 정말 무더운 시간들이었는데 이제 그 힘든 시간이 끝나고 있다. 참으로 계절의 순환은 신비롭기만 하다. 감동이 따로 없다. 

여름이 한창이던 여느 시간의 아침 가을을 느끼게 하는 싸한 바람을 맞으면 한편은 반가우면서도 다시 한 해가 저물고 그래서 모진 겨울이 온다는 사실에 공연히 우울해 지던 지난 시간의 기억들이 있었는데 이번 여름 뒤끝에는 그런 생각은 사치로조차 여겨진다. 그렇듯 이번 여름은 견디기 어려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여름이 끝난다는 것은 가을이 옴을 말한다. 가을은 한 해의 결실을 보는 시간이라는 기대에다 계절 특유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에 더하여 낭만도 갖게 하는 시간이다. 그렇게 반갑고 또 희망을 두고 싶은 가을이 오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가을은 여느 가을과는 다른 시간이 기대된다. 우선은 혹독했던 여름의 고통이 끝나는 데 대한 안도감으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맞게 되는 필연적인 결과라 감동이라 할 것은 못 된다. 이 가을이 반갑고 또한 기대를 가지는 것은 평화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높다는 점이다. 그 기대가 너무 커 온 몸을 전율케 하기 조차 한다. 한 민족이자 역사와 문화를 같이하는 한반도의 남과 북이 그간에 두었던 미움과 증오의 시간을 접고 화해와 소통의 시간을 만들고 있고 그것을 이제 평화라는 이름으로 갈무리를 하는 시간이 이 가을에 마련되고 있으니 어찌 감동이라 하지 않겠는가!

이해 벽두 남과 북의 정상이 얼어붙은 땅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파격적인 만남을 가졌고, 이어 열린 평창올림픽에서 남과 북은 한 개의 상징인 한반도기를 들고 보란 듯이 세계를 감동시켰다. 그리고 봄이 오던 시간 남과 북의 청춘들이 두렵기조차 했던 각각의 하늘아래서 노래와 춤으로 ‘우리는 하나’를 외치면서 한 핏줄임을 자랑스럽게 세상을 향해 소리높이 외쳤다.

그 시간이 감동이었던 것은 그렇게 서로가 어울렸던 사실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있었던 때문이다. ‘봄이 온다.’고 남쪽이 외쳤더니 그에 답하듯 북에서는 ‘가을이 왔다’고 외치고 싶다하였는데 그 바람이 이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차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행 비행기에 올랐다. 언론에 의하면 판문점 선언에 대한 후속조처와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교착상태에 있는데 대한 대안마련이 목적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자든 후자든 평화가 주제이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구하기 위함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크다. 문대통령은 북에 가는 것을 ‘불가역적이고 항구적인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라고 출발 전 국민들에게 말했던 것이 그것이다.

평화는 모든 인류들이 염원하고 있지만 그것을 구하는 것이 이슈가 되는 것을 보면 평화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세계 도처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평화를 모두가 바라는데 평화추구가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더욱이 한반도에서는 그것의 필요성은 남북의 모든 사람들이 절감하고 있는 최대의 과제이기도 하다. 

한반도에서 평화가 최대 이슈인 것은 달리 말해 전쟁 발발 우려가 상대적으로 높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을 두고 북을 탓하는 사람들이 많고 그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 북한이 핵을 개발하고 있고 이제는 상당량을 보유한 채 남쪽은 물론 세계 최강 국가인 미국까지 위협을 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인 것이 그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은 핵폭탄을 만들어 두고는 남쪽을 비롯하여 그들을 적대하는 세력들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살펴야 할 게 있다. 북한이 왜 이러한 상황을 전개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가 그것이다. 그들이 힘이 있고 그것을 이용하여  패권세력이 되고자 이런 상황을 초래하였다는 데 동의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적대세력에 의해 고립되어 있고 언젠가는 체제가 붕괴된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되어 이에 대한 방책으로 핵을 보유하게 된 것이다. 이는 필자만의 주장이 아닌 것은 저간의 한반도 사정을 아는 이들은 부정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상황의 전개는 그들의 책임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는 없다. 솔직히 말하면 스스로 자초한 면도 없지 않다. 그들이 세운 전통에 의해 수립된 체제를 옹호하기 위하여 비인도적인 인권문제를 야기했고 이러한 사정으로 민주국가가 주류인 서방진영과의 마찰로 긴장상태가 전개되면서 체제 위협을 받게 되는 경지로까지 발전되었다. 

그러나 그렇다 하여 그들의 체제를 무조건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기준삼아 문제로 볼 수는 있다 해도 그들의 선택인 만큼 전후 사정을 무시하고 외부에서 힘으로 강제해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의로운 지향은 그들을 달래고 설득하여 인류보편 가치를 존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곧 평화의 지향이고 지금 남과 북은 그 도정을 함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글이 읽혀 질 무렵 남과 북은 몇 차례의 정상회담을 했을 것이고 어떤 형태든 합의를 하였을 게다. 그것은 당리당략에 가치인 정치꾼이나 남북이 가까워지는 것이 싫은 세력들이 ‘그것 봐라!’며 신나하는 결정일 수도 있고, 그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 등 보통사람들이 원하는 수준에는 도달하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남북이 다 함께 ‘가을이 왔다’를 합창할 수 있는 수준이면 이번 두 정상의 만남은 성공이다. 우리는 그로 인해 울려질 평화의 메아리를 기대하여야 한다. 그것은 이미 울려진 평화의 서막을 확인하고 이제 본 막을 열게 하는 과정이다. 부족한 것은 시간을 두고 채워나가도록 양방이 노력하면 된다. 

평화, 그것은 갈망하는 대상들에게는 그 보다 더 큰 가치를 둘 만한 것이 없다. 진정한 평화는 누구도 배척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배척당하지 않는다. 모두를 자유롭게 하는가 하면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 한다. 이 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진 것이 없는 것은 그것을 제대로 누리다가 잃었던 사람들은 다 안다. 평화가 전제된다면 그것을 추구하는 모든 행위는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 설득력을 갖는다. 지금 한반도에는 그런 행위들이 일고 있고 남북의 정상이 그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 이들의 행보는 그러나 아직은 힘이 들어 보인다. 그들 탓이 아니다.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버거운 외압들이 있어서이다. 그것들은 외견 상 평화를 주조로 하고는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신뢰 문제가 있다. 평화를 이야기하면서 어려운 조건들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평화를 원하는 당사자들 밖에서 공연한 논리를 만드는 세력들이 있다면 평화는 이루기 어려울 것이다. 평화의 추구에 필요한 논리들은 진실에 바탕 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불완전할 수 있고, 그런 바탕에서 이룬 평화는 한시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난 봄 북에 간 남측의 일꾼들이 ‘봄이 온다.’고 시작을 마련하였더니 북측의 일꾼들은 남쪽에 가서 ‘가을이 왔다’를 같이 노래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이제 그것을 현실로 드러나게 할 시간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봄은 시작을 마련하는 시간이고 가을은 그 시작의 결실을 거두는 시간이다. 우리는 바란다. 판문점의 봄이 평양의 가을로 이어지고, 그래서 풍성한 결실이 있는 가을이 왔음을 남북이 함께 노래할 수 있기를.(♣2018.9,19)


시흥3동에 거주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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