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축제 그리고 약속



가을이 되니 마을마다 축제로 떠들썩하다. 마을마다 축제들이 열리고 있는 것은 주민 공동체들이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니 좋은 현상이다. 축제란 그것이 펼쳐지는 공간의 사람들이 함께 기릴 희망을 펼치는 시간인데 막상 그것이 끝난 뒤 그런 의미를 퇴색시킬만한 유감스러운 일이 있는 경우가 있다. 인간들의 삶이 그렇듯이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 항상 만족할 수는 없는가 보다.


행사의 유형에 따라 다르겠지만 행사 뒤끝에 행사주최자들이 서운함을 넘어 화가 날 정도의 경우가 있다. 행사의 진행에 차질이 있는 등 문제가 있어서도 그럴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주최자의 책임이니 주체들이 서운은 하겠지만 화를 낼 사정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주최자의 책임이 아닌 외부 요인에 의해 마을 축제가 기대했던 효과가 감하는 것은 물론 축제가 의도했던 의미가 퇴색되는 경우도 있다. 축제를 통해 기대했던 효과 이를테면 관중과 함께 가꾸고자 했던 희망의 메시지가  축소되거나 모호해지기조차 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 


마을에서 축제를 열게 되면 그 마을을 관장하는 행정책임자나 그런 위치 또는 영향력을 가진 직분에 게신 분들 즉 구·시의원, 구청장 국회의원 등 이른바 지역의 지도자들을 초청한다. 통상의 질서이기는 하지만 잔치에는 손님들이 와야 하고 이왕에 마련된 기회라면 공동체의 공통적 기대나 다짐과 같은 것들을 이런 분들과 함께 할 때 시너지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축제와 같은 행사에서 준비되는 이런 순서는 의례적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의 목표 달성 추진 효과를 구하기 위해서도 그 효용성은 인정된다. 마을의 일은 민과 관이 함께 할 때 성과를 거두기가 용이하고 그런 기회를 만드는 것도 축제의 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이런 기회를 통해 그간의 성과를 살피는 한편 그것 또는 그것과 어울리는 마을의 희망을 만들기 위한 다음 순서를 마련기도 한다. 이러한 지향은 축제의 의의를 분명히 한다. 

물론 이런 축제라 해서 주민들이 선출한 행정 책임자 등을 꼭 초청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에 의미를 두는 것은 주민에 대한 예우 때문이다. 그들은 주민들에 의해 직분을 부여받았으니 주민잔치에는 당연히 그들이 나와야 하고 주최 측은 이러한 질서를 수행해야 알 책임을 가진다. 주민들이 선출한 지도자들인 만큼 주민이 주인인 마을 축제에 그들이 있어야 하는 것은 서로에 대한 예의다. 


그런데 이런 분들이 펑크를 내는 경우가 있다. 솔직히 그들이 없다하여 마을 축제가 축소되거나 의미를 잃는다 하기는 그렇지만 오기로 한 그들이 오지 않으면 김이 빠지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더욱이 이들의 참석을 미리 주민들에게 약속을 해 두었다면 더욱 그렇다. 주민들은 그런 질서를 당연하게 여기는 데 그들이 불참을 하면 주민들이 서운해 하는 것은 물론이고 배신감조차 가진다. 심할 경우 그들에 대한 반감조차 가지게 되어 향후의 유사한 행사에 영향을 끼칠 수가 있다.


이런 분들은 대부분이 스케줄이 많으므로 시간을 두어 통지를 하고 다시 참석 확인을 한 후 행사 진행순서를 만들어 공식행사 순서로 준비를 하는 것이 상례다. 그런 경과를 가졌는데도 통고도 없이 참석하지 않는 것은 주최 측을 무시하는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그 축제에 참여하는 주민들 곧 자신을 선출한 주민들을 무시하는 행위다. 이런 모습들은 물론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어떻든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사정이 있어서 그럴 수야 있겠지만 어떤 사정에도도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다. 그들이 그곳에 있어야 하는 것은 주민이 지워준 지도자로의 최소한의 도리를 지켜야하기 때문이다. 약속을 지킬 수 없다면 사정을 알려 양해를 구해야 하는 것이 그것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평범한 사람도 비난을 받아야 하는데 하물며 지도자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그런다면 여간 실망스럽지 않겠는가!. 


별것 아닌 일, 있을 수 있는 평범한 일을 두고 법석을 떤다고 핀잔을 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은 그런 질서로 세상을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고 따라서 논쟁을 사양한다. 약속이란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데 그것을 가볍게 보는 자와의 논쟁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약속을 절대적이라 말하지 않는다. 더 급한 일 등 사정이 있을 수 있는 것이 사람들의 생활이다. 그렇듯 사람이 하는 것이라 불변의 원리에 묶지 않는다. 사람이 만든 것은 사람이 바꿀 수가 있는 것이 사람에 의해 경영되는 세상사이기 때문이다. 다만 약속의  존중이 아름다운 것은 불변의 원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마을 축제는 미래 약속의 장이고 그것은 즐거움에 더하여 희망을 전제로 할 때 의의를 가진다. 함께 하는 이들 모두가 중요한 구성원이어야 하는 이유도 그래서 제기된다. 따라서 시행 주체이던 초청인이던 단순 참여자이던 그 지위나 역할에 관계없이 참가한 모든 이는 그 장으로 만들어진 약속의 무거움을 동의해야 한다. 그런 한편 마을 축제는 그것을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의 시간이어야 하지만 보다 더 큰 의미를 두어야 하는 것은 소통의 시간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즐거움은 함께 공감할 때 의미를 갖게 되고, 그곳에 같이 하지 않는 이들과도 소통이 확대될 때 그 축제의 의미는 더욱 빛날 것이다.


소통이 부족한 축제에도 즐거움이 있겠지만 그것은 완전한 즐거움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즐거움이란 그것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고 이들 모두가 공감할 때 비로소 완전한 즐거움이라 할 수 있다. 공동체가 함께 하는 장에서의 약속의 무거움을 유념해야 하는 이유는 그래서 필요하다.(♣2018.11.07) 





시흥3동에 거주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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