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당제가 어떤가



지난 선거(2016년) 그러니까 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내 교섭단체를 가지는 정당이 세 개가 출현함으로 그동안 꾸준히 이어오던 우리 국회의 양당제가 무너졌다. 그런가 하면 금년(2017년)에는 집권 여당이던 ‘새누리당’이 대통령의 탄핵사태로 분당이 되어  4+1 정당구도가 되었다. 즉 원내 교섭단체를 가진 정당 4개와 정의당 등 원내 의석을 가진 5개 정당으로 명실상부한 다당제 구도가 된 것이다. 제헌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 까지 일부 기간을 제외한  상당 시간을 대한민국의 의회는 양당체계로 이어왔다. 긴 시간 양당제로 지내온 우리 정치판에서 다당제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 의회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政黨, political parties)의 존재 의미를 알아보자.





정당이란 의회정치를 전제로 공통의 가치체계에 합의하여 정치권력의 획득ㆍ유지를 목적으로 결집한 정치세력들의 집합체이다. 그러나 이는 이론적 배경일 뿐 현실은 여러 가정의 설정이 풍부한 것이 오늘의 정당 실태이고 특히 우리나라의 정당이 그렇다. 다시 말하면 정치권력의 획득 목적이 원류인 것은 다름이 없지만 그 구성체 즉 정당이 표방하는 가치체계는 가변성을 넘어 거의 무질서이다, 곧 각자의 이해에 따라 이합집산을 밥 먹듯 하는가 하면 자기 입지 확보를 위한 선택과 집중이 존재하는 곳, 이념도 사상도 없는 이익 추구가 지상목표인 기회주의 무리들의 집합이 우리의 정당행태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집권을 위해서라면 구성원의 조건도 강령도 추구하는 이상도 필요 없는 곳이 그곳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정치판에는 이런 부류의 정치세력들이 많다는 일반론이다.



우리의 정당모습이 그렇다 하여 정당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 의회 민주주의란 곧 대의정치(代議政治)이고 그 구성 요소인 (국회)의원의 합리적 배출은 현재로서는 정당보다 나은 수단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양성의 시대인 오늘의 우리사회에서 국회의원은 정치권력의 진수(眞髓)다. 상식을 가진 보통사람들이라면 선망하는 지위인 것이다. 의회민주주의 체제가 옹호되는 한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것이므로 의원이 되고자 하는 자들의 정파(政派)에 대한 집착은 끊임없다. 


이와 같이 대의제(代議制) 곧 의회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국회의원의 위치는 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일자리이자 명예욕을 한껏 충족할 수 있는 지위이다. 나라에 따른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그들에게는 권위가 주어지고 그것은 객관성 곧 사회적 동의가 부여된다. 이러한 지위인 만큼 국회의원 지망자들은 항상 넘쳐나고 정당은 목적 달성의   수단이 되는 만큼 정당은 존재 가치를 풍부하게 가지게 된다. 그렇듯 정당이 없는 의회민주주의는 생각하기 어렵다. 정당은 국민과 권력의 연결 고리이자 권력의 관찰자이며, 의회정치의 실체적 구성체이다. ‘정당은 현대정치의 생명이다’, ‘현대정치의 특징은 정당체제이다’라는 말을 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일 것이다. 


그러면 의회 민주주의의 취지에 합당한 정당체계는 어떤 것일까? 정당이 많은 것이 좋은가 그 반대인가 즉 최근 화두로 등장하고 있는 다당(多黨) 체계가 좋은가 아니면 우리에게 익숙한 양당(兩黨)체제가 좋은가를 묻는 것이다. 사람들의 정치의식에 따라 선호가 다를 수 있겠지만 우리 정치 생태계는 양당제 성장 환경인 것 같다. 정치권력들도 국민들도 그쪽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는 뜻이다. 현재의 정치권력들은 기왕에 가진 권리를 잃을 수도 있는 불확실성에 빠지기 싫은 게고 국민들은 정치에 별 관심이 없어 새로운 제도에 대한 흥미를 가지지 못하기 때문일 게다. 사정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둘다 변화에 흥미를 두지 않는 것을 이유로 본다. 국민들이야 기존 양당체계 외의 정보가 없고 관심도도 낮아서 그렇다고 이해를 해도 되지만 정치세력들은 다르다. 그들은 기존의 양당 체계를 선호한다. 즉 변화를 수용할 의사가 없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현실 정치권력들은 정치판도에 변화가 있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양당제 체계 또는 그것의 선호를 나쁘다거나 잘못되었다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정치풍토가 그렇다는 것이고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들에 의한 정치 행태를 볼 때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하였는가 하면 민주주의의 순수성조차도 흐렸다는데 대한 불만을 말하고자 함이다. 물론 이러한 행태가 양당제라는 정치 환경으로 인한 것이라고 잘라서 말하지는 않겠지만 의회 민주주의 본질에 부합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하다. 요지를 말하면, 우리정치 환경에서 지금에 이르도록 이어온 양당제는 적어도 국회의원의 자질 변화가 없는 한 바람직하지 않다. 


양당제를 살펴보자. 

양당제란 세력이 비슷한 그러나 이념적 배경이나 사상을 달리하는 두개의 정당이 선거를 통하여 승리하는 측이 계속 또는 교대로 집권하는 형태다. 물론 이러한 체계에서도 정당은 3개 이상이 있을 수 있고 함께 정권획득 경쟁을 벌이지만 실제 정권 획득 정당은 압도걱 우위를 점한 두개인 경우로서 지금까지의 우리 정치구도도 이런 형태로 이어져 왔다. 


양당제는 의회와 행정부에서 국정 심의 등 국가의 중요사안을 양당 간에 결정과정을 가지므로 국가정책 심의와 결정을 위한 과정의 단순화 등 효율성을 가진다는 장점이 있다. 더욱이 집권당이 과반수 의석을 가진 경우 그들 이상대로 내각 구성을 할 수 있고 각종 국가정책 결정을 신속하게 또한 지속적으로 추진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국민의 선택이 두개의 정당에 집중되어 있으므로 다음 정권 담당 정당의 선택이 용이하여 평화적인 정권교체를 실현할 수 있다. 


그러나 단점도 있다 기존 정치체제 유지에 기반을 두고 있어 집권당의 장기 집권이 용이하고 특히 과반수 의원을 가지는 경우 정부는 정책의 독주를 할 수 있는가 하면 의회의 견제기능조차 무력화 시킬 수 있다. 더욱 우려하는 것은 의원 선택에 한계를 가지는 것은 치명적 단점이다. 즉 최다 득표자 1명만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양당 후보중에서 선출되고 이러한 운영으로 인적자원의 선순환이 되지 않아 의원의 자질문제를 야기한다. 


여기서 경계하여야 할 게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연시되는 엽관주의(獵官主義, Spoils system) 폐해가 그것이다. 선거에서의 승리가 선(善)인 정치판에서 공헌자에 대한 논공행상은 자연스럽고 이러한 운영은 아무리 장치를 두어도 옥석가리기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기회주의자들에게 잔치 상을 차려주는 형국이 되고 그것은 정치판의 건강을 좀먹게 한다. 오죽했으면 “국회선진화법”같은 우스꽝스런 법이 만들어졌겠는가? 정리를 하면,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것이 양당 체계이다.


이런 현실에서 최근에 이루어진 다당제는 신선한 희망을 가지게 한다. 물론 그것의 효율성 문제를 간과해서도 안 되지만 지금까지의 우리 정치판의 적폐(積弊)를 볼 때 효과적 대안이라는 일각의 주장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변화가 필요한 우리 정치판에 시의적절한 처방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싶다. 

새 정부가 구성되고 희망적 신호가 보인다. 과거를 반성하며 필요한 조치들이 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 한편 걱정도 있다. 양당제를 선호하고 그래서 인위적 정계개편 의지를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변화가 두려운 것은 그들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눈을 부릅뜨고 지켜야 할 게 있다. 국민들이 선택한 다당제를 지키는 것이 그것이다. 다양성의 시대가 아닌가? 


(♣2017.08.30.)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해 다양한 

마을활동을 함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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