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 -여덟번째
기존 '금천in인 만난 금천人'코너를 릴레이 인터뷰로 코너명을 신설하여 지속합니다


“우리는 인정과 도리로 먹고 살아요”

가산동의 아담한 커피집 안에 앉아있는 성기윤(47세)씨는 그야말로 평범한 동네아저씨의 모습이다.
“황당하네요. 저 같은 사람이 어떻게 신문에 나온대요? 뭐 특별히 해드릴 얘기도 없는데…”

가락동 농산물시장에서 새벽에 입찰을 마친 물건들을 재구입해 식당에 납품하는 유통업을 하는 성기윤씨는 하루가 정말 길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시장으로 향해서 식당마다 일일이 물건을 대주고 나면 9시가 넘는다.
“사실 딱히 취미생활을 누릴 시간도 없어요. 남들은 골프도 치고 한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처럼 다 이렇게 살지 않나요?”

현실에 안주하는 것 같아 보일지 모르지만 평범한 일상을 만족하면서 사는 모습이 보기 좋다.

“이 일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가장 마음 아플 때가 작년 배추파동과 같은 상황이예요. 식당 운영을 하시는 소비자들이 너무 힘들어 했거든요. 저희도 물건이 없어서 못주고, 안그래도 비싼 물건에 마진을 더 남기지도 못했죠. 그런데 올해는 또 폭락해서 농민들이 배추 엎는 걸 보니까 참 마음이 안 좋아요. 가격이 폭락하면 소비자는 웃겠지만 생산자는 울어야 하고, 생산자가 웃으면 소비자가 울게 되는 것이 시장의 논리죠.
제가 시골 출신이라 그런지 소비자는 한철 비싸게 먹고 마는 거지만 농민들은 일년 동안 애쓴 거 다 잃어버린다 싶으니까 더 안타깝더라구요. 이번 구제역 때문에 돼지고기 값이 올랐다고는 하지만 평생을 일궈온 것을 다 잃은 농민의 심정과 비교가 되겠어요? 위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우리끼리니까 얘기하는 거지만) 이런 거 신경이나 쓸까요?”

긴 이야기 조목조목 듣다보니 시장구경 하다가 세상구경 다 한 것 같다. 

  “저 같은 중간 상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만 채소 값이 뛰든 가라앉든 어느 한쪽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덜 가게, 가늘고 길게 사는 것이 저의 영업 방침입니다. 손님들도 이제는 오랫동안 정들어서 세상이 각박해 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인정과 도리로 서로 먹고 살아요.”

세상사는 이치가 바로 이런 것이다 싶다.
크게 어긋나지 않고 조화롭게 서로의 고통과 아픔을 이해해주면서 살면 된다.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자기 자리에서 빛나게 살 수 있다면 이보다 행복한 세상이 또 있을까.

  “수입의 3분의1을 사교육비로 쓰고 있어요. 가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한숨이 나올 때도 있지만 이 길 밖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사실 사교육비의 10%라도 문화생활을 즐기는데 쓴다면 훨씬 삶이 윤택해 질 텐데요.”

성기윤씨는 독산고 3학년, 세일중 3학년 자녀를 두명 두고 있다.

“결혼기념일에나 공연한번 볼까말까 하는데 사실 한번 보고 오면 관중석의 열기와 감동이 뇌리에 한동안 남더라구요. 무리해서라도 가끔씩 이렇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오전시간에 크라운.해태제과 납품 코디(납품한 물건 정리) 일을 하는 아내 유원복씨(44세)는 주말에는 성기윤씨의 일도 나서서 돕는 부지런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아이들 교육에 가사까지 책임지니 ‘투잡’이 아니라 ‘쓰리잡’ 하신다고 했더니 “아이고 맨날 투잡한다고 그러는데 이 말 들으면 애들 엄마 목에 힘 더 주겠네요.”라며 웃는다.

“아이들도 표현하지 않지만 어리다고 생각이 없는 것 같지 않아요. 내가 너희들 때문에 얼마나 고생하는 줄 아냐면서 강요할 필요는 없어요. 말로 하지 않아도 부모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고 자라면 자기들도 속으로 다 알고 느끼는 거죠. 그래서 그런지 우리 아이들은 사춘기도 무난히 넘어가는 것 같아요.”


서로에 대해 믿어주고 알아주는 관계에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저는 요즘 예능프로그램 시청을 잘 하는데 사람은 누구한테나 배울 점이 있다는 생각을  해요. 억지로 웃음을 만드는 것은 한계가 있지요. 삶이 녹아나고 진정성이 보이니까 같이 울고 웃게 되는 것 같아요.”
평범한 삶이라 할 얘기가 없다던 성기윤씨, 우리가 그의 삶에서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그도 충분히 아는 듯 했다.

김선정 기자
gc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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