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진짜 하루 근무 시간은 무엇인가?



티브이 켜 놓고 출근 준비를 하다 인간 극장이라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들었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하고 특별한 이야기를 그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다. 잔잔하게 전개되는 생의 흐름에 잔잔하게 감동하는 프로그램이다. 이번 주 사연은 강원도 원주에서 택시운전을 하면 9남매를 키우는 가정이다. 스치며 듣다가 귀에 확 들어오는 소리가 있다. 11명의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아버지 택시기사는 하루 ‘15시간의 근무’를 했다는 것이다. 방송을 보는 이들은 가족들을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겠지만 내 귀엔 ‘하루 15시간’라는 말만 꽂힌다. 


현재 서울시 택시 노사가 맺은 단협에 의하면 1일 근무는 6시간 40분이다. 실제 서울지역 택시는 12시간 맞교대 형식의 근무를 하고 있다. 그리고 법이 정한 월급제 대신 대부분은 사납금(규정된 액수를 회사에 입금하고 나머지 부분을 임금으로 가져가는 형태의 근무- 법으로는 금지된 불법 제도다.) 제도로 운영하고 있다. 불법을 편법으로 보이기 위해 택시회사 노사는 최저임금을 어기지 않는 부분에서 고정 기본급을 상정하는 소정근로시간을 정한다. 보통 주 5일제에서 토요일이 무급 휴일이면 209시간, 토요일이 유급 휴일이면 240시간이 소정근로시간으로 계산된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불가피하게 고정 기본급 즉 통상임금도 올라야 한다.

 

그런데 사용자들은 금액을 올리는 대신 상여금 수당 그리고 소정근로시간을 줄여 최저임금 인상을 무산시킨다. ‘최저시급×근로시간=고정급’으로 계산해 임금을 지급해야 하지만 택시 사용자들은 기존의 월 고정급 임금을 최저시급으로 나누어 나온 값을 소정근로시간이라 한 것이다. 기존 고정급을 최저시급으로 나누어 소정근로시간만 줄이면 임금 한 푼 올리지 않아도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거의 마법이다. 사용자가 이런 요술을 부리게 한 것이 근로기준법 제58조(근로시간 계산의 특례) 조항이다. 제 1항 ‘사업장 밖에서 근로를 해서 근로시간을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소정근로시간을 근로한 것으로 본다’ 제2항 ‘노동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에는 그 합의에 정하는 시간을 그 업무의 수행에 통상 필요한 시간으로 본다’라는 규정을 악용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노사관계는 이런 사용자의 주장에 투쟁 없이 동의하는 관계다. 사용자와 노조 대표자가 조합원들의 피땀을 공동으로 빠는 짓이다. 우리는 이런 노사관계를 ‘어용’이라 부른다. 특권과 반칙, 부정과 불법으로 유지되는 한국사회 자본 체제를 유지하게 만드는 적폐의 한 뿌리다. 이런 터무니없는 억지에 저항하는 것이 노조의 본연의 의무지만 그러면 바로 ‘과격, 불순, 귀족 노조’가 된다. 이런 말을 들어야 민주노조다. 하지만 민주노조를 유지하는 길의 끝은 해고다. 


금천에서도 한남상운 마을버스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요구해서 승리했다. 투쟁 1년이 지난 지금 현재 해고자만 세 명, 계약해지를 당한 이들이 몇 명, 그래서 조합원으로 현직에 근무하는 이가 단 한명 남았다. 옳은 말 당연한 요구를 했다는 것으로 직장을 유지할 수 없는 것이 한국사회의 현실이다. 

이런 악성의 노사관은 일제 강점기 식민지형, 유신독재, 그리고 기업하기 좋은 나라 신자유주의라는 반인간적인 시대가 범벅으로 만든 괴물이다. 인간의 최저한의 존엄성도 파괴하는 반인륜적 범죄다. 그런데 이에 대한 도덕적 사회적 부담은커녕 그걸 잘하면 능력자가 되는 것이 현실이다. 검찰과 법원은 이 범죄가 합법하다고 면죄부를 준다. 인간의 존엄성의 파괴가 이윤의 확장이나 보전이고, 평화와 평등, 정의를 말하면 추방 배제가 되는 사회라는 점에서 참 일관되게 잘못된 사회라 헬 조선이다. 


실제 근무하는 15시간, 법이 규정하는 하루 8시간(주5일제면 하루 7.33시간), 그리고 택시 노사가 자기 식으로 규정한 하루 6시간, 최근엔 아예 2시간 30분이라는 소정근로시간, 이 차이가 우리 사회 빈곤과 차별의 실내용이다. 15시간 일을 시키면서 2시간 30분만 인정한다는 이 괴기한 비현실을 현실이라 하고 현실의 고통을 말하면 이기적이라는 하는 뒤집어진 사회 상식들.. 이것을 어찌 한단 말인가?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서울시에 대표적 대중교통수단이 지하철과 시내버스다. 그 중 최악의 막장은 마을버스다. 금천구의 한남 운수 마을버스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2017년 2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1회 노선운행 후 10분 이상 휴게시간 보장, 운수종사자가 충분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휴게실(편의시설) 마련 등 마을버스노동자들에게 작지만 최소한의 화장실만큼은 편히 갈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법안이 마련되었다. 그런데 이법이 발표되고 6개월이 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지역마을버스 134개 업체 (2016년 기준)는 이를 전혀 개선하지 않고 있다. 이 법은  현장에서 단 한 번도 지켜지지 않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불법 편법에 대해 사용자도 아니고 서울시가 나서서 개정 여객법은 현실과 맞지 않아 국토부에 보완검토를 요청했다. 4월에 아예 국토부를 방문해 재개정을 요구했다. 서울시가 말이다. 


빈발하는 대중교통의 대형사고는 있는 법도 집행하지 못한 행정의 책임이 반이다. 그런데 전국에서 가장 민주적이고 혁신적이라 자처하는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 행정이 승객 안전을 위한 기사의 단 10분간의 휴식이 배 아파 한다. 삶을 비용으로 보고, 비용의 절감이 일자리의 추방이요 노동자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다. 임용고시생들의 아픔을 보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아픔은 보지 않는다. 공부하는 것과 비정규직으로 불안한 노동을 하는 것, 둘 중에 누가 더 힘들고 아플까? 자영업자들의 박한 삶은 잘도 살피면서 그 사람들의 지휘 감독 속에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는 이들을 보지 않는다. 이렇게 맹목적인 시각으로 보는 단색의 세상에서 무지갯빛 현실은 결코 볼 수 없다. 나아가 현실을 직시하면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 이상주의자, 무능력자가 된다. 이 거꾸로 된 세상 거꾸로 된 생각들을 뒤집지 않는 한 적폐는 화장만 바꿀 뿐 영원하다. 그 함정과 늪에서 문재인도 박원순도 자유롭지 않다. 그것이 헬조선의 미래를 보여주는 암울함이자 보이지 않는 적폐의 고향이다.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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