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금천구 독산동(금천구청 뒤) 옛 도하부대 터에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초 신라시대로 추정되는 집터, 도로, 우물 등이 발굴됐다.[본지 5월 17일 보도]
신라가 영토를 한강유역까지 확장한 제24대 진흥왕(재위 540~576년)때의 유적이다. 서울과 수도권의 구릉지가 아닌 저지대에서 이 시기 취락지가 대규모로 발굴되기는 처음이다.
문화재 발굴 조사 기관인 (재)겨레문화유산연구원(원장 신창수)은 6월 19일 오전 독산동 유적 발굴 현장에서 ‘현장설명회’를 개최하여 조사가 완료된 1구역(13,615㎡)을 일반에 공개했다.
발굴조사 결과 1구역에서 신라 토기와 기와 등의 유물과 도로 1기, 수혈건물지(竪穴建物址,구덩이를 파서 지붕을 덮은 움집) 6동, 굴립주건물지(掘立柱建物址,땅을 파서 기둥을 세워 지상보다 높게 하여 지은 건물) 58동, 우물 2기, 집수시설 2기 등의 유구(遺構,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자취)가 확인됐다.
우물, 배수로, 집수시설 등에서 토기가 출토됐다. 특히, 집수시설에서 기와, 연질·경질토기, 동령, 목재, 씨 등이 다수 출토됐다.
조사구역 남쪽(금천구청 방향)에서 확인된 도로는 총 길이가 115m이다. 도로 폭은 3~3.5m이며, 도로 양 측에 있는 배수로를 포함하면 5.2~6m이다. 도로면에는 2m 폭의 수레바퀴가 지나간 흔적이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일반적인 신라 도로의 경우 주로 자갈을 깔고 도로를 다지지만 백제는 자갈을 깔지 않고 노면 그대로 이용했다고 한다. 이 곳에서는 자갈이 깔려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백제가 만들어 놓은 도로를 이 시기 신라가 계속해서 사용했던 것으로 보고있다.
발굴된 도로가 동서방향으로 길게 되어 있기때문에 1구역 서쪽인 2구역을 발굴하면 도로가 계속 이어져 나올 가능성도 있다.
대형의 주혈(柱穴․기둥 구멍)이 확인된 일부 굴립주건물지는 그 규모로 보아 망루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여 군부대 주둔지로 추정하고 있다.
겨레문화유산연구원 서길덕 조사팀장은 “수도권에서 통일신라시대 유적은 많이 나왔으나 6세기 후반 7세기 초 유적은 희소(稀少,매우 드물고 적음)하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이곳은 신라가 한강유역으로 진출하던 시기에 형성된 유적으로, 서울 지역(아차산 보루 등)에서 확인되는 신라 관련 유적, 유물 등과의 비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적 보존 여부와 관련해서 문화재청 발굴제도과 최인화씨는 “조사가 완료된 1구역에서 보존할만한 대상은 도로다. 도로 외에는 보존할 계획이 없으며, 2구역에서 도로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2구역 발굴 이후에 보존여부를 재검토 할 계획이다.”고 답했다.
겨레문화유산연구원은 곧 1구역 서쪽방향인 2구역(13,615㎡) 발굴에 들어갈 예정이다.
한편, 금천구청 도시계획과 관계자에 따르면 국토해양부에서 조만간 도시개발구역 지정해제를 할 것이라고 한다. 국토부의 해제 절차가 이루어지면 금천구는 개발행위허가 제한을 해제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발굴지를 국가(시)지정문화재로 지정하여 현장을 보존하지 않는한 땅 소유자인 JP홀딩스는 개발계획을 수립하여 개발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양 측에 배수로가 있는 115m 길이의 도로유구
△도로 위에 2m폭의 수레바퀴가 지나간 흔적이 있다.
△주혈안에 나무기둥 일부가 있다.
△우물 절개 단면
△집수 시설
△ 굴립주건물지 전경
△출토된 토기
△도로 층위
△도로를 축조하면서 놓은 돌이 그대로 있다.
최복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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