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행복 5대 약속을 실천하기 위해 새누리당이 거리 곳곳에 내건 플랭카드다. 비정규직 차별을 금지한다는 것은 언뜻 보면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이전에 민주노동당 등이 같은 주장을 했다가 '좌빨, 사회주의적 요구'라고 얼굴 붉히던 당이 유니폼까지 벌겋게 갈아입고 동일한 주장을 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항상 10년 쯤 앞선 요구로 구박받다가 구박하던 이들이 슬그머니 그 요구를 자기 것인 양 외치는 모습을 보면 구박받던 우리가 불쌍하기도 하지만 저 뻔뻔스러움이 가증스럽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내 논 법률은 '비정규직 차별금지'가 아니라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다. 노동계에서는 이 법률을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에게 쥐어주는 도깨비 방망이법'이라 부른다. 왜일까?
요즘 현재 현대자동차 몽구 회장을 골치 아프게 하는 것은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불법파견이라는 대법원 판결로 2년 이상 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할 의무, 올 8월 2일 시행되는 제도에 의해 불법 파견 단기 노동자들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의무, 이를 즉각적으로 이행하라는 정규직과 비정규직노조의 빗발치는 요구다. 하지만 요즘 몽구 회장 속으로 웃는다. 이 모든 고통을 말끔히 해결해주는 ‘도깨비 방망이’가 나타났다. 새누리당과 박근혜 민생법안 1호로 국회에 제출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다.
이법은 불법파견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라는 대법 판결을 전면으로 부정하는 법이다. (불법) 파견노동을 그대로 둔 채 임금만 조금 더 올려 주고 차별을 금지한 것이라 말한다. 결국 사내 하청이 불법 파견이지만 이를 사내 하도급으로 명칭을 바꾸고 그대로 두자는 주장이다. 그러니 이법이 생기면 고용 형태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이전에는 불법이던 것이 이제는 합법이 된다. 즉, 사용자에겐 불법 파견의 면죄부를, 노동자에겐 영구적인 비정규 파견 노동을 주는 법이 새누리당의 비정규직 차별금지 법의 핵심이다.
문제는 이법이 미래에 더 두려운 작용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도 기아자동차 모닝공장인 동희오토, 현대모비스 11개 공장 중 8개 공장,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STX중공업, 현대위아 3개 공장 등 정규직은 관리자들뿐이고, 모든 생산 공정은 합법적인 사내하도급 노동자들이 일하는, 즉 생산 노동에 정규직이 단 한명도 없는 유례가 없는 야만적인 공장이 있다. 이 법이 공표된다면 현대, 기아, 한국지엠 등 자동차 완성사,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 조선소, 포스코, 현대제철 등 철강회사, 삼성전자, 엘지전자 등 모든 제조업의 재벌회사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을 사용할 이유가 전혀 없어지게 된다. 불법 파견이라는 족쇄가 벗겨지니 월급은 반만 줘도 알아서 더 열심히 일을 하지 않으면 하루살이 목숨이 되는 사내하청 노동이 무한정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법은 자본이 줄기차게 요구한 파견업종 전면 확대, 파견 허용 기간 연장, 고용의무 완화를 완전히 허용케 한다. 그 결과 노조는 무력화되고 합법적인 비정규직 공장이 전면화 된다. 조선과 조선인을 보호하기 위해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했다는 일제의 강도적 논리가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불법파견을 합법화하고 비정규직 노동을 영구화하는 괴물법이 '민생과 가족의 행복'을 위한다는 미명 속에서 등장하고 있다. 추측컨대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가족은 사람이 아니라 '괴물'들인 모양이다. 오직 권리만 누리고 인간적 의무를 외면하면서 노예노동을 합법화하는 괴물들만 행복한 세상을 만드니 말이다.
이글을 쓰는 동안에 전국의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힘든 파업이 전개 중이다. 이 가뭄과 폭염 속에 하늘로 오른 이들의 투쟁이 너무나 많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요구가 집중된 사업장 중에 현대 글로비스가 있다. 트레일러로 승용차를 운반하는 회사다. 이 회사는 올해 매출액 9조 5천억에 순이익 4062억을 예상하고 있다. 작년보다 순익이 34.4% 증가시킨 예상이다. 하지만 트레일러를 직접 운전하는 노동자들은 한 달에 300시간을 일해 80만원을 받는다. 최저임금도 못 미친다. 기름 값의 인상으로 한번 운행에 드는 기름 값이 운송료보다 많아졌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현대 글로비스는 트레일러 화물트럭을 단 한 대도 직접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모두 지입 차량인데 이것을 생산 공장에서 비유한다면 생산 기계를 노동자가 가지고 취직하고 그 기계로 노동하는 꼴이다. 이 회사의 최대주주는 정몽구와 그의 아들 정의선이다. 참으로 사회 곳곳에서 인면수심으로 산다. 아무리 돈이 좋아도 이 반인간적 죄악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지.
29호 2012. 6.29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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