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를 방랑하는 소설가 황석영씨가 북한을 다녀와서 남긴 글의 제목이 "사람이 살고 있었네."였다. 뿔 달린 괴물들과 세뇌당한 무뇌아들만 사는 곳이라 여겨졌던 북한 땅에는 "남한에 가면 사흘도 못 견디고 껍데기 홀랑 까 먹힐 순진하다 못해 천진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87년 6월 항쟁이 있어 만들어진 민주정권 수립이 양김의 분열로 날려 먹고 실의에 빠진 때에 조성만 열사 등의 분투에 밀려 , 문익환 목사님이, 임수경이, 과감하게 녹슨 철조망을 거두며 남북의 평화통일로 나갔다. 남북의 평화적 통일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김일성 주석의 사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는 듯 했지만 끝내 6.15 선언으로 꽃폈다. 그러면서 우리는 대립과 증오가 아니라 친선과 연대로 남북이 하나 됨이 얼마나 가까운 가를 실감했지만 MB 정권 아래서 그 반대도 얼마나 쉬운 것인지 슬프게 경험했다. 

그해 1991년, 노태우 정권에 맞선 청년 노동자들의 투쟁이 가열 차, 물경 11명의 열사가 희생된다. 강경대 열사가 등록금 인상 반대를 한다고 맞아 죽었다. 그것에 항의한다고 김귀정 학생을 토끼몰이로 죽였다. 이런 정권의 폭압에 죽음을 무릅쓴 저항을 지지하고 역전되는 민주주의를 막기는커녕 당시 저항을 상징하던 사이비 전향 저항시인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그치라며 중립적인 척 정권 편에 선다. 이에 편승한 서강대 박홍은 죽음의 배후세력이 있다고 나대고, 검찰은 김기설 열사 유서를 대필했다는 터무니없는 누명을 강기훈에게 들씌우며 민주와 진보로 가는 저항의 길에 바리게이트를 쳤고, 막 국무총리로 임명된 정원식이 학생들에게 밀가루를 뒤집어쓰는 희생을 통해 진보와 민주는 패륜이 되었고 우리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신자유주의 야만으로 떠밀려갔다. 

2012년, 통합진보당은 역사를 너무 앞당겨 살은 죄를 톡톡히 당하고 있다. 여타 정당에서는 감히 시도도 못하는 비례대표 당원 투표제를 했다는 이유로, 그 과정이 운동권적 양해가 아닌 형식만 내세운 민주주의 선을 넘었다는 이유로 (그 선을 누가 넘었는지 어떻게 넘었는지 밝혀지지도 않은 채) 정치적 쿠데타를 일으키고, 그 쿠데타에 저항을 했다고(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을 탄핵할 때 모습을 전혀 기억 하지 못한 척), 민주주의 파괴자로 되었고, 그 자리에 온갖 언론과 진보 연하는 작자들이 나서 과거 박정희․전두환 앞잡이들이 거품 물고 떠들던 그 모습, 그 언어로 머릿속을 토로하라고, 관심법을 인정하라고 난리를 친다. 

진중권의  말을 봐라. "개인에게는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가 있지 '의원'에게 그런 자유는 없다" 사상과 양심이 위장전입쯤 된다는 저 몰역사적인 인식의 뿌리가 결국 반공․반북주의라는 것을 몰라서 하는 말일까? 바로 저 같은 생각이 박홍의 말이며, 통일이 아니라 반공이 국시라고 인정하라는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오염된 말에 다름 아님을 정말 모르고 저럴까?

이런 혼란의 틈을 타, 또 다른 구태를 일소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이 휘둘러지고, 국가 폭력인 경찰은 토끼몰이로 사람들을 잡아간다. 대한문의 쌍차 분향소는 철거된다. 강남의 선거투표함 부정도, 조폭들이 장악한 청와대 일심회의 부정과 사찰도, 4대강 비리도, 저축은행의 비리도 다 묻힌다. 그리고 화룡점정 대통령께서 친히 나서 김일성 보다 더 나쁜 놈이라고 통합진보당을 욕한다. 진중권의 말에서 박홍의 냄새를 기억하는 내가 낡은 것일까? 유학 갔다 와 세련됨을 자처하는 저 진중권이 낡은 것일까? 

동지들의 어려운 사정에 대해서는 침묵이 예의라는 견해도, 또다시 도가니를 쓰게 하지 말자며 지나친 편향의 광기를 자제하라는 충고도 힘을 얻지 못한다. 이런 메카시 열풍이 벌써 한 달,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고 무엇이 남을까? 통합진보당의 총선 패배는 통합진보당의 당내 균열로 나타났다. 그 결과 '무단행단 했다고 사형을 시키자'는 소란이 있었다. 그 소란을 더 부풀린 것은 언제나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조․중․동 수구세력과 권력이다. 그들은 재빠르게 평화통일, 반제 자주, 민중이 주인 되는 평등한 민주라는 진보개념을 종북으로, 낡은 이념으로 되치기 해 왔다. 비례대표 의원을 당원에게 의견조차 묻지 않고 당권파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보수정치가 그래도 당원에게 의견을 직접 묻는 진보당에게 민주주의 문제를 걸고 넘어 지는 것은 '똥 묻은 개, 겨 묻은 사람 욕하는 꼴'이다. 

그런데도 집단 왕따, 광기에 빠진 여론 공세 속에서 '국민의 눈높이'라는 또 다른 사상 검열대가 세워졌다. 결과, 북한을 평화적으로 긍정적으로 보자는 것은 낡은 종북이 되었다. 자랑찬 자주 통일운동은 부끄러운 역사가 되었다. 거리를 내달릴 야생의 진보정치는 의회 안에서 응앵 되는 애완의 진보정치로 바꿔치기 당하고 있다. 그렇다. 지금 사태는 경기동부라는 이름의 당권파의 고장 난 관행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은 진보정치의 수상한(?) 혁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분단과 예속과 그리고 반북을 내장(內裝)한 수구의 위대한 부활로, 우리는 '경기동부도 사람이었네'를 말해야 하는 침묵의 시간으로 후퇴시킨 또 하나의 매카시 마녀사냥이 되고 말았다. 

나는 그저 간절히 기원한다. 제발 이런 반공 반북의 낡고 낡은 병통의 광기가 이번이 마지막이길, 어느새 진보를 자처하는 이들이 조중동과 동지가 된 자신의 처지를 황급히 반성하고 침착해 지길, 목욕물(낡은 관성) 버린다고 아기(자주와 평등의 변혁적 진보주의)마저 버리지 말길을.



 2012. 6. 2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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