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운남

소식을 접한 운남은 가슴이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온 몸과 함께 두 손으로 잡은 택시 핸들이 마구 떨렸다. 도저히 운전을 지속할 수 없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엊그제 부산 한진 노동자의 죽음만으로 너무나 무거운 마음인데, 오전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파업투쟁에 정몽구가 용역깡패 2,000명을 동원하여 유혈이 낭자한 폭행을 휘 두른다는 소식에 다시 한 번 악몽이 떠올랐다.

박일수 열사의 죽음을 안고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올랐던 지프 크레인이 생각났다. 아니 분노로 정련된 투쟁의 각오가 아니다. 5시간 만에 다리를 부러뜨리며 얼굴의 형체가 사라지도록 맞았던 그 아픔, 너희들 같은 것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수 있다는 구체적인 살의와 협박을 홀로 고립되어 견디다 까무러쳤던 그 순간, 지금 폭행을 당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때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때 자신은 얼마나 절박하게 연대의 손길을 기다렸던가? 고립과 단절이라는 벽속에서 얼마나 많은 마음의 상처들의 죽음을 각인시켰던가? 그런데 지금 바로 그런 소식을 들으면서 나는 하루의 밥을 위해 택시 운전이나 하고 있다니. 나는 잘살고 있는가? 내 양심은 지금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택시 운행을 중단하고 전"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하면서 두들겨 맞는 것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제대로 도와주지 못 해서 그런 것 아니냐" 선배에게 그리고 친구에게 전화로 도움을 청한다. '운남아 니 잘못이 아냐.' 하는 몇 마디 위로의 말을 챙기며 병원에도 들렸다. 그런데도 가슴의 쿵쾅거림은 잦아들지 않는다. 영구 임대아파트 좁은 방에 여전히 홀로 남아 있다. 저 환한 창문이 유일한 문으로 보인다. 이 어둠을 깨기 위해 나의 양심은 지금.....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양심이 허물어진 삶은 의미 없는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그는 꽃잎이 되었다. 겨울공화국이 연장되는 이 겨울에 그는 채 피지 못한 인간해방을 위한 또 하나의 피 거름이 되었다.

7년 동안 그는 가장 싹싹한 노동자였다. 누구보다 성실했고, 누구에게 먼저 화를 낸 적이 없다는 착한 사람이었다. 선배들로부터 가장 큰 귀여움과 신뢰를 받던 노동자였다. 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들고 조직부장이 되는 순간 세상은 한꺼번에 달라졌다. 울산 동구를 사유화하여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한 현대중공업 정몽준의 힘은 막강했다. 그리고 교활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조가 결성되자마자 현대중공업 원청 자본은 조합원 납치․폭행, 사내하청업체 폐업 등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렀다. 운남이 다니던 하청 업체에서 폐업 위협으로 동료 노동자들을 이간질시켰고, 생계위협을 느낀 동료들이 운남의 '출입증을 뺏고 사지를 달랑 들어 현장 밖으로 내동댕이쳤다.' 돈은 이렇게 한순간 7년의 인간관계를 먼지처럼 부순다.

현대중공업은 정규직 노조를 돈으로 사서 어용화 했다. 당연히 비정규직 노동자는 존재 자체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 터무니없는 탄압에 맞서 박일수열사의 분신항거가 일어났다. 그 항거에 부응하여 이운남은 동지들과 크레인 농성을 했지만 돌아온 것은 무지막지한 폭력이었다. 영혼과 육체에 새겨진 이 두 가지 아픈 경험은 운남에게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상처를 새겼다. '외상 후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사람을 만나 마음을 나누는 것이 혁명이라 믿었던 운남이지만 현대중공업이라는 절망은 사람을 만나기가 무서워진 운남으로 만들었다. 마음의 상처는 매일 매일을 두려움으로 깊어졌고 사그라지지 않는 운남의 양심은 쉼 없이 나약한 자기를 채찍질하니 심신은 더욱 황폐해 져 갈뿐이었다.

그의 영전 앞에서 묻고 또 물었다. 이 착한 청년을 죽인 원인이 무엇일까? 희망고문일까? 절망의 두려움인가? 양심고문에 무력고문이 더한 것일까? 아니면 사람이 죽어도 표정하나 없이 무심히 유령처럼 출근을 하고 있는 세상일까?

그는 말한다. "양심이 허물어진 삶은 의미 없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최소한의 양심을 지키며 살고 싶습니다. 회사 폭력의 후유증으로 우울증을 앓아왔지만, 그래도 자신의 원칙을 잃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 이제 더 이상 좁은 방에서 갇혀서 흐느끼고 싶지 않습니다."

유서다. 현대 재벌들에게 만신창이가 된 심신을 들어 마지막 항거의 이유다. 양심을 지키며 동료들의 행복을 원하고 있다. 대법원이 불법파견이라 판결한 것을 여전히 자행하고 있는 현대 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에게 보내는 통곡이다. 정몽구 회장은 알아야 한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은 양심으로 뜨거운 사랑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심장에 테러를 가하고 것과 같음을.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한 잔혹한 폭력임을. 죽음으로 하는 외침을 외면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음을.

노모가 서럽게 오열을 한다. 아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온몸을 뒤튼다. 아프다. 아프다. 어쩌란 말인가? 부산 한진에서 한 노동자의 자결이 울산에서 한 비정규노동자의 투신이 연신 시대의 어둠을 두드리고 사람들의 양심을 흔든다. 벌써 4명 째 귀한 목숨이 타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추모제 중에 또 하나의 억울한 죽음이 들려온다. 이제 살자는 말, 힘내자는 말 조자 사치다. 하지만 잊지 말자. 모든 열사는 죽음으로 말한다. "사람들 가는 길에 희망만이 가득하길" 우리 사회에서 이런 희망과 사랑의 마음이 죽어가고 있다. 이 죽음을 막지 못하는 우리는 여전히 죄인이다.

모든 죽음은 그 사회 공동체의 몫이다. 열사들의 몫은 산자들의 성찰과 용기를 부추기며 끝내 비겁과 도피의 삶에 굴복할 수 없다는 절개의 표현이다. 산자들은 죽은 자를 추모하면서 돈이 아니라 사람이, 돈이 아니라 생명이 우선인 세상을 위해 악착같이 살고 투쟁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돌아보자. 나만 살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함께 살려는 죄로 배제당한 이웃은 없는지. 굴종이 아니라 용기를 내어 아닌 건 아니라고 했다고 추방당한 이는 없는지. 그들을 더욱 외롭게 하고 있는 내가 아닌지... 돌아보자.

 

문재훈(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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