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가 있다.
[새해 첫 기적] - "황새는 날아서 / 말은 뛰어서 / 거북이는 걸어서 / 달팽이는 기어서 / 굼벵이는 굴렀는데 / 한날한시 새해 첫날에 도착했다 // 바위는 앉은 채로 도착해 있었다." (전문 - 반칠환) 날고 뛰고 걷고 기고 굴러도, 아예 한자리에 굳건해도 사람이 나눈 시간은 맞이하는 것은 만물에게 동일하다. 그래서 새삼 새해니 헌 해니 하는 구별도 무상타지만 사람이란 계기에 따라 아름다운 의지를 세우고 또 돌아보는 존재니 새해 첫 글을 쓰는 마음은 나름 유난타.
2013년은 근혜 신년이란다. 하지만 새로운 정권이 시작되는 것보다 정작 큰일은 자본주의 체제가 자기모순에 빠져있다는 거다. 자본의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 이유는 자본의 이윤에 대한 탐욕이 도를 넘어 '사람과 생태와 미래'를 착취했기 때문이다. 작년 자본가들의 모임인 다보스포럼에서 세상의 부자들은 '자본은 지난 신자유주의 20년 동안 죄를 지었다.'고 평가했다. 따뜻한 자본주의니 민생과 경제 민주주의니 하는 것은 그런 성찰의 표현이다. 하지만 한국은 겉과 속이 다른 정치를 선택했다. '아직도 선거 때 말을 믿느냐?' 하는 정치가 시작됐다. 누군가 역사란 과거를 보며 뒷걸음치는 것이라 했다는데 2013년의 한국정치는 경제도 정치도 사회도 과거를 보면서 앞으로가는 판이 될 것 같아 걱정이다.
나는 2013년 첫 일을 마석 모란공원에서 120여기의 열사들을 만나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때 전태일 열사 앞에서 2013년 한해를 더욱 더 사람답게 살자고 생각했다. 사람이 사람인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자신을 둘 줄 알기 때문이다. 사람과 사물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함께 더불어 사는 생각과 실천', 즉 '노동'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구를 욕망으로 돌린 체제다. 밥 한공기로 채워지는 욕구가 수십 수백만원짜리 한 끼가 아니면 안 채워지는 욕망이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인류의 경제력은 모든 사람의 욕구를 다 채울 수 있는데 단 한사람의 욕망은 채워주지 못하는 말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게 됐다.
함께 살기보다 나만이라도 살겠다는 생각, 공존이 아니라 승자독식의 경쟁에 눈이 먼 돈 중심의 세상이다 보니 우리가 가장 크게 상실한 것은 가난 보다 사람다움이다. 돈이 중심인 세상에서 사람은 오직 수단이다. 하지만 사람을 수단으로 삼는 것은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악이다. 이 생각을 잊으면 인간으로 모든 근본을 잃는 것이다.
전태일 열사는 이렇게 말한다. "어떠한 인간적인 문제이든 외면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 가져야할 인간적 문제다." 돈과 권력이 사람을 나누다 못해 노동자들을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나누고 차별하는 것은 그 자체로 반인간적 행위다. 남이 불행한데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비정한 생각이 사람다운 것일 수 없다. 그러니 사람을 사랑으로 보는 것이 바로 사람다움이다. 사람과 사람이 독립 자가 아니라 그 사이에 무언가로 연관되어 있는 것, 마치 벽과 기둥이 방이라는 공간을 위해 필요하듯,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공동체적 개인의 의미를 채우는 것이 즉 '인(人)+간(間)=사람다운 사람'이다.
자기만의 욕구충족이 눈이 벌게진 곳에 사람다움이 있을 리 없다. 한 사람이 굶어도 내 심장이 아프고, 단 한사람이 아파도 영혼이 아픈 존재가 사람이다. 정리해고 비정규직이 말하는 빈곤과 차별은 체제나 이념 이전의 문제가 되었다. 봉건적 논리가 자본의 탐욕에 의해 소환된 퇴행이 자본주의 말기 본질이라면, 자본의 탐욕과 경쟁과 전쟁에 반대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의 문제일 뿐이다.
가령 새누리 당 원내대표 이한구의 쌍차 방문이 그렇다. 그는 '쌍차 정상화를 위해 차 한대를 더 사주는 것이 필요하며 과거의 잘못은 엎질러진 물이라 어쩔 수 없어 국정조사는 반대한다.'고 했다. 그 말 속에, 23명의 죽음, 수천 명의 살인해고, 만 삼년의 눈물과 피땀, 그것을 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연민과 양심, 고통을 함께 하려는 연대의 사랑을 차 한 대 만도 못한 것으로 만들어 버린 줄 도 모른 채 말이다. 돈 또는 기업 중심의 생각이 얼마나 반인간적일 수 있는 건지를 잘 보여 준다.
과거와 독재와 독점이 승리한 세상에서 사람 노릇하기 쉽지 않는 2013년의 출발이니, 나만이라도 먼저 비정규직 정리해고와 투쟁하는 노동자들, 학살과 수탈에 저항하는 이들, 자기 목숨을 끊거나 자기 몸을 허공에 매단 이들의 마음으로 세상 가장 춥고 가난하고 아픈 이들을 생각해 본다.
문재훈 소장(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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