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가치와 돈
여럿이 함께 운영하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은 바로 그 이유로 세상의 칭찬을 많이 듣는다. 한 가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운영위를 거쳐야 하고 결정에는 모두가 책임을 진다. 함께 만든 도서관이기에 소박한 일에도 가치를 두고 열심히 일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의 칭찬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참 이 일이 기분 좋은 일임을 알면서도 결코 자유롭지 못한 점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돈’ 문제이다.
아름다운 탄생과 세간의 칭송이 우리의 동력이 되는 건 사실이나 돈 문제는 늘 만만치 않게 발목을 붙잡기도 하고 큰 성과없는 토론거리를 낳기도 했다. 여럿이라는 개인이(말은 이상하지만 여기에서는 관과 대별되는 뜻으로) 나라의 도움도, 제 3자의 도움도 받지 않고 도서관을 꾸리기란 정말 어렵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한동안 모두의 생각은 아니지만, 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다면 기업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나 하는 의견도 있었다. 사실은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자신도 그런 생각을 했다. ‘기업이 좋은 일에 돈을 좀 쓰게 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오히려 우리가 자기들을 돕는 셈 아닌가’ 하며 ‘왜 우리는 도움을 받으면 안 되는가? 도대체 왜?’ 이러고는 머리를 쥐어뜯을 때 하늘에서 한 권의 책이 떨어졌다.
마이클 센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에 대해 묻는다면 많은 이들이 대답할 것이 있을 것이다. 우정이나 사랑, 우리 같은 작은 도서관의 가치들... 그런데 미국의 경우이긴 하지만 이런 것들이 점차 시장의 지배논리에 침식당하고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제는 주에서 공원을 후원해 줄 기업을 찾고 기업은 후원 대신 공원 안에서 해당 기업의 음료수만 팔 수 있도록 요구한다. 어떤 소설가는 특정 기업의 물건을 소설 속에서 12번 언급하기로 하고 돈을 받았다. 우리가 먹는 달콤한 사과에도, 계란껍질에도 광고가 붙어있다. 심지어 돈이 급했던 싱글맘은 자신의 이마에 도박사이트를 영구 문신하고 돈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합당한 대가를 받으면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도 기업에도 좋은 일이 아니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다. 센델은 이것에 대해 시장에 의해 성행하는 이런 거래들이 과연 자발적인 거래인지 묻고 있다. 돈의 억압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런 행위는 자발적이 아니라 매우 억압적인 선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마에 새긴 문신은 개인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학교에까지 침투한 상업화는 결국 욕망을 제어하도록 하는 학교 교육의 원래 목표를 퇴색시킨다. 욕망에 충실한 인간을 만들어놓는 것이다.
안일했던 내 머리를 후려치는 책이었다. ‘시장이 제자리로 가게 하려면 당신을 둘러싼 모든 일에 대해 평가하고 생각하라. 그러지 않으면 시장이라는 괴물이 그것을 결정할 것이다.’ 작은도서관은 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우리는 왜 이렇게 힘들게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결정을 어떤 방법으로 내려야 하는가 이런 생각은 우리의 몫인 것이다. 이런 생각과 비판에 게을러질 때 상업의 논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도서관 곳곳 돈 들어갈 데는 많아진다. 돈 들어갈 데를 두고 걱정하는 것보다 서로의 처진 어깨를 다독이고 우리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우리는 상위권 모범생이기 때문이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에는 결코 팔 수 없는 진한 가치가 분명 있다.
돈으로 둘러싸인 세상이 짜증나고 싫증나지만 돈 때문에 귀한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니 그나마 다행이다.
마이클 샌델 저/ 안기순 역/ 와이즈베리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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