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하달은 시원하다. 거침없다. 하지만 일사불란(一絲不亂)함은 봉건적 위계질서나 군사 독재적 굴종 질서에 세뇌된 비민주적 습성이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고 복잡하고 귀찮은 과정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일상 속에서 닫히고 막혔던 민의가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없다.
야당이 거리정치를 하고 있다. 여당이 귀를 닫았다는 것을 말한다. 정해진 절차를 말하지만 다수결은 실은 결정권이 일방에게 넘어가 있다는 말이다. 그래서 정치는 법과 형식이 아니라 소통과 타협으로 존재한다. 소통과 타협을 할 여지가 없는 정치에서 약자들은 당연히 민주공화국의 기본에 호소하게 된다.
민의(民意)다. 백성의 마음에 직접 호소하여 법 제도적 형식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경중완급을 판단케 한다. 그러고 보면 민주주의는 내각이나 의회에 있지 않다. 거리에, 민심에 살아있는 민주주의가 존재한다. 민심을 정확하게 보고, 민심이 천심임을 믿는 것은 봉건 지배세력의 독주와 폭주를 막는 민주주의의 발로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각대신 비서진을 개편했다. 경제민주주의와 소통, 신뢰를 내걸고 대통령이 됐지만 취임이후 지금까지 잘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여름휴가를 아버지의 추억으로 보낸 대통령이 한 첫 번째 정치가 비서실 개편이다. 보통 정치(책)에 대한 책임은 내각이 진다. 그런데 알다시피 새누리당에 친근한 인사 중에 청문회를 깔끔히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희박하다. 그러니 개각보다는 손쉬운 비서실 교체로 휴가 구상을 통해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그런데 그 내용이 파격적이다. 앞으로 나가는 파격이 아니라 뒤로 가는 파격이다. 퇴행으로 파격은 김기춘 비서실장 기용으로 모든 것을 말해 준다. 대통령 비서실장쯤 되면 이른 아침부터 한 밤중까지 대통령을 수행해야 하는데 우리 나이로 75세가 넘은 노인을 혹사하겠다는 것도 사회적 통념 상 맞지 않는데, 대통령이 정치 모토가 '창조(創造)'를 생각하면 이번 인사를 통해 박근혜정치가 얼마나 표리부동한 것인지 알 수 있다.
김기춘, 1958년 서울법대에 들어가 5·16 쿠데타 직전인 60년 10월 고등고시 사법과에 합격했다. 1기 5·16장학회(현 정수장학회)생으로 학업을 마쳤고, 정수장학회 장학생 출신들의 모임인 상청회 회장을 맡으며 그 유명한 유신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했다. 박정희 정권 말기에 청와대 비서관도 지냈다. 5·16장학회(현 정수장학회)는 일부에서는 장물이라 부른다. 부산일보와 삼화고무를 운영하던 언론인이자 기업가,의원까지 지낸 김지태라는 사람을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잡아다 놓고 강제로 재산을 강탈한 면에서도 장물이지만 무엇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재산이 국가가 아닌 박정희와 그 자식들을 위한 사적 재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국가권력으로 개인의 재산을 뺏고 그것을 다시 자기 것으로 만든 이중의 장물이다.
박찬종 변호사는 김기춘 실장의 친구인데 그는 방송에서 "아주 상관에 대해서 빈틈없이 깔끔하게 마음에 들도록 일을 대단히 잘하는 사람이다. 박근혜 대통령으로서는 김기춘 실장을 임명해 놓으면 아마 굉장히 안심을 할 사람이다, 그러니까 김기춘 실장은 박 대통령 입장에서는 아버지와 자신에 이어서 부녀 2대로 충성하고 그렇게 일을 잘 해 줄 것이다."라고 했다.
박변호사의 말을 들으면 오랜 관계 속에서 믿음의 근거가 있는 인사인데 문제는 그것이 극히 봉건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왜냐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심이 원하는 것은 대통령 가문의 개인적 믿음이 아니라 공명정대한 측면에서 믿음을 원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 정국에서 보면 김기춘 실장의 등용은 오기정치의 표현이다. 지금 비록 자기를 반대하는 백성들이지만 거리에서 촛불을 들고 있다.
그 이유는 국기를 흔드는 행위를 연달아 버린 국정원에 대한 분노이자,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를 반민주적으로 만든 행위에 대한 분노이기 때문이다.
김 기춘은 이른바 우리나라 민주주의 큰 걸림돌인 지역감정을 극단적으로 밀고 간 초원복집 사태의 주역이다. 그가 내뱉은 '우리가 남인가'라는 말은 영남을 뺀 대한민국 전체에 대한 배제 선언이다. 초원복집 사건의 심각성은 초원 복집 사건의 처리 결과가 있다. 국기를 흔드는 행위에 대해 당시 공권력은 국기를 흔드는 범죄에 대한 고발은 눈감고 고발한 사람을 주거침입죄로 처벌했다. 국가 권력의 힘으로 죄를 감추고 용기를 처벌했다.
이것은 권력형 비리 범죄에 대해 권력을 통해 무마를 넘어 덮어씌우기가 가능하다는 것을 돈과 법과 권력을 쥔 세력들에게 보여 준 셈이다. 그리고 그 후과가 국정원 대선 개입이다. 권력만 유지하면 된다는 그들의 민주주의 유린 행위의 상징, 초원복집의 주역을 국정원 선거개입 비리에 대해 백성들이 분노하고 있는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을 하는 것은 민주당의 표현대로 "민심 역행, 민심 불복"정치를 할 것임을 선언한 꼴이다.
민심에 염장지르는 이런 정치를 후안무치라 부르면 과한 것일까?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56호 2013.8.9~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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