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그 자체로 자기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는 망동(妄動)이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당연히 국가 기관에 의한 부정선거이기 때문에 선거 자체가 무효가 된다. 국가권력의 선거 개입은 심판이 한쪽 편을 들어 경기를 진행한 것과 같다. 아니 그것도 모자라 감독이나 선수를 매입하여 승부를 조작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진행된 경기도 경기라고 결과에 복종해야 할까?


노동운동을 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보면, 국정원의 개입은 어용노조 선거에 회사가 개입하는 꼴이다. 애초 이명박 전 대통령이 CEO 대통령을 자처할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 국민은 부하직원이란 말인가? 약한 사람들, 그늘진 곳, 사각지대에 놓인 문제를 품어 안고 나서야 할 대통령이 국민간의 경쟁과 갈등 그리고 승자독식의 야만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말인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형용모순이었다. 그런데 이번 국정원의 불법선거와 여론조작 행태는 단지 대통령만 CEO화 한 것이 아니라 나라 자체를 기업화한 것으로 보인다.


나라를 기업화 하고 나면 민주주의와 그 절차는 기업경영 중 한 부분이 노무관리 쯤 된다. '선출되지 않고 감시 받지 않는 권력'이 돈과 인맥과 정보 등을 통해 민주주의를 내부로부터 무력화시킨다. 국가권력이 특정 세력에게 사유화되어 여론과 선거를 조작한다. 아마 이들의 이런 흉측한 생각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넷을 통해 대중의 열망과 결합되어 대선에서 승리한 것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 됐을 것으로 추측해 본다. 처음에는 정당차원에서 인터넷 요원을 꾸려 보았지만 역부족을 느끼자 아예 국정원을 동원한 것이다. 자기들을 제외한 모든 세력들은 종북좌파로 보고 구국의 결단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만 것이리라. 그 결과가 지난 대선이자 박근혜 후보의 당선이리라. 결국 지난 대선은 거짓된 이미지, 거짓된 여론몰이, 조작된 결과가 되었다. 대한민국은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민주주의를 유린당했다. 더 문제는 이런 반칙을 통해 승리를 거머쥔 세력들이 '반칙을 통한 승리'라는 마약에 중독될 것이라는 우려다.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 전체를 지배하는 것이 기업이다. 기업 안에는 밑으로부터의 민주주의도 없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은 우리 손으로 뽑아도 회사 과장 부장은 뽑지 못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기업 내 민주화와 인간화의 최소 조건이다.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최소조건이다. 그런데 그것을 사육하고 통제하려는 국정원의 만행을 정화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셈이다. 국가의 기업화는 민주주의 사망이다. 실제 어용노조를 민주화하는 것은 새롭게 노조를 만드는 것보다 어렵다. 왜냐면 무노조 사업장의  노조 건설은 회사와 직접 만나는 것인데 어용노조가 있으면 회사는 그 뒤에 숨어 노노갈등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두른다. 이중 삼주의 장애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믿고 집행부를 바꿔 민주노조를 꿈꾸지만 도무지 집행부를 바꿀 길이 없다. 어용노조의 실제 힘은 바로 회사의 힘 자체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노조 선거에 개입하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로 명백한 현행 범죄다. 하지만 노조선거에 회사가 개입하지 않는 경우란 없다. 그 결과 어용노조에서는 대항 후보가 되는 것 자체가 사느냐 죽느냐 문제가 된다. 이런 부담을 가지고 출마를 하는 용기 있는 사람이 드물고, 용기를 내 출마를 한들 회사가 권력을 가지고 지배개입 하는 선거에서 결과를 뒤집기는 더욱 힘들다. 후보 간의 선거가 아니라 밖에서 다른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터무니없는 경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 권력의 선거개입은 최악의 부정선거이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뿌리인 4.19 혁명도 바로 국가 권력의 선거개입에 대한 민의 저항이었다.
민주주의를 유린한 범죄자들의 민얼굴을 보여주고 민주주의 역사에서 다시는 이런 반칙과 범죄가 의혹조차도 생기지 않게 만들기 위해 국정조사를 열었다. 그런데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가로막겠다는 새누리당의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믿는 정치의 힘은 결코 백성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특히 아예 증인 선서를 거부하는 전 서울경찰청장의 백성, 국회, 국가 능욕행위를 묵과하는 새누리당 국회의원의 모습은 의아함을 넘어 어리석기 짝이 없다. 도대체 그것이 바로 자기를 능욕하는 것임을 왜 이해하지 못한단 말인가.


아예 위증을 하겠다는 증인들의 교정하지 않고 국정조사를 진행하는 야당의원들의 모습도 의아하다. 국정 조사의 격을 갖추지 못한 채 윽박지르는 것을 방송에서 보여주는 선전효과가 얼마나 될 것인가. 그 자리에서 강제력 없는 국정조사 전에 특검으로 바로 넘어가자고 왜 못한단 말인가. 천망회회 소이불루[ 天網恢恢 疎而不漏]란 말이 있다. 하늘의 그물이 성긴 것 같아 다 빠져 나갈 것 같아도 물 한 방울 빠져나가지 못한다는 노자의 말이다. 작금의 사태에 비유하면 잔꾀로 꼼수로 물타기로 속이고 사기치고 우기기로 진실을 막으려 하나 끝내 막을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자는 '정치는 정(正)'이라 했다. 바름이란 이(利)가 아니라 의(義)에 강한 정치를 말한다. 바름의 정치의 최소한은 염치를 아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사유가 "합법적으로 선거를 돕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이명박근혜정부는 말이 아니라 힘과 실천으로 부정선거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에 세상의 뒤집히기나 한 것처럼 나섰던 새누리당의 민주주의 수호자들은 지금 왜 꿀 먹은 벙어리인가? 열 명의 의인이 없어 망한 소돔과 고모라와 지금 집권세력과 새누리 당은 무엇이 다른가? 노회찬 전의원의 의문을 다시 던진다.
정말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에겐 염치를 가진 단 한명의 의인도 없는가?
민주주의를 보호하고 지킬 보수세력은 정녕 없는가?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57호 2013.8.23~9.12 지면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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