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놈을 왜 당장 구속시키지 않는 거야' '구속은 무슨 당장 총살시켜야지...'
종편의 통진당 이석기 의원 체포 동의안 통과를 보며 우리 사무실 건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환호를 지르며 내는 반응이다. 도대체, 사실여부도 진실에 대한 판단도 과정에 대한 관찰도 없이 싸질러 버리는 저 도저한 조건반사에 할 말을 잃는다.
조건반사는 '파블로프의 개'로 유명(有名)하다. 러시아의 생리학자 파블로프는 소화에 관한 연구(硏究)를 하다가 우연히 개가 먹이를 먹지 않고도 침을 흘린다는 것을 발견하고 조건반사 실험을 한다. 처음에는 개에게 종소리를 들려준 후, 먹이를 준다. 반복하면 종소리 뒤에는 먹이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에 종소리만으로 침을 흘린다. 요즘 우리의 정치의식과 판단은 아직도 이 파블로프의 개 수준이다. 예전엔 빨갱이 간첩으로 이제는 종북이라는 말만 들으면 “앞뒤를 가리거나 사리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맹목(盲目)"이 되기 때문이다.
친북에 대해 문익환 목사님은 친북하지 않으면 어떻게 통일을 하나, 또 전쟁을 할 건가? 반문했다. 반미라는 질문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용미를 말했다. 미국도 무조건 지지가 아니라 그저 외교의 한 상대라는 것이다. 종이라는 굴종의 단어는 사뭇 봉건적이거나 식민지 억압이나 군사독재 시절의 폭압이 담긴 접두사다. 그러면 친북도 아니고 종북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 우리는 자기의 경험과 입장에서 타인과 사물을 본다. 미국은 남한과의 관계를 기본으로 중국, 러시아와 북의 관계를 설정한다. 그래서 미국은 북의 문제를 북과 안 풀고 중과 러에게 압력을 가해서 풀려고 한다. 억압하면 항복할 것이라는 남한의 상식을 확장한 것이다. 지금의 남한지배세력은 자기들의 경험인 친일 친미 사대적 경험에 근거하여 자기들의 반대자들을 본다. 그래서 종북이라는 말은 바로 종(從)미(새누리당류) 공(恐)미(민주당류)세력에겐 사회운동을 하는 이 시대의 비판자들에게 아주 쉽게 자기들의 경험을 덧대 저들도 그럴 것이라 믿고 쉽게 긍정한다. 실상 종북이란 말은 반북 분단이데올로기를 극단으로 몰고 간 개념이다. 우리가 목숨을 바쳐 민주와 평화통일 그리고 인권을 향해 노력해온 지난 30년의 시간을 통째로 도려내는 말이다. 민주와 인권은 우리안의 식민지 잔재와 군사독재의 폭압을 제거하고 지우는 과정이다. 평화와 통일은 증오에 기초한 군사적 긴장을 푸는 것이요, 북을 주적이 아니라 통일의 상대로 보는 것이다. 반대와 섬멸이 아니라 유무상통을 하자는 것이다. 유무상통이란 내가 있는 것으로 남의 없는 것을 채우고 남의 남는 것으로 우리 모자라는 것을 보태는 관계를 말한다. 종북은 이런 평화와 통일의 시간을 또한 통째로 지운다. 그럼으로 종북은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더러운 정치적 용어다.
종북이란 말엔 빨갱이란 말이 들어있다. 고문과 학살 그리고 연좌제에 의해 한 가족이 평생의 고통을 당하는 공포가 내장되어 있다. 나아가 분단과 예속에서 돈과 권력을 마련한 기득권 세력에겐 6.25를 통한 트라우마가 있다. 미국이 아니면 자기들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공포다. 그리고 이승만 정권과 미군에 의한 예비검속과 민간인 학살이라는 상처도 있다. 그러다보니 저들은 국방비를 수십 배 많이 써도 북한이 두렵다. 미군이 철수하면 무슨 큰일이 날것처럼 말한다. 한심한 것은 민주당인데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김대중 대신에 김영삼으로 바꾼 모양이다. 종북과 내란이라는 이름으로 가장 크게 상처 난 세력이면서도 공포에 빠져 수치스러운 부화뇌동을 했다. 비이성적인 광기가 9월의 남한 땅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내란을 예비하거나 일으킨 것은 두 번이다. 한번은 5.16이고 다른 한번은 12.12다. 다 정치군인들이 독재적 권력을 구축하려는 음모이자 폭거였다. 나머지 그들에 의해 조작된 내란죄는 다 무죄이자 역사적으로 그 명예가 회복되었다. 이런 역사를 가지고 있는 국민들이 50년 남짓한 세월 속의 진실을 잊고 부정선거의 범죄자들의 놀음에 정신없이 당해버리는 모습이 참으로 남부끄럽다.
전쟁과 기아와 군사정권의 폭압과 고문에 의해 그 반대자는 3대가 망하는 공포의 경험을 가진 우리다. 그러다보니 아이가 용기를 내어 진실을 외치면 ‘너만 손해’라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비겁하게 침묵하라는 것이 요즘 부모들의 가르침이다. 그리고 자기들의 그 비굴을 감추기 위해 아예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고 모순을 구조적으로 고치자는 사람들에게 기괴한 적대심을 표출한다.
헌법의 기본권에 의해 집회 및 시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고 조금 차가 막히고, 조금 시끄럽다고 극도의 공격성을 보인다. 그런 모습이 공화국의 시민으로 민주주의를 적대하는 것인지를 살필 줄 모른다. 이러는 사람들에겐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추론이 없다. 심지어 진실조차도 종북 앞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나중에 역사적 진실이 밝혀져도 반공 애국 체제에 복무하기 위한 선의라며 별다른 문제가 아니라고 한다. 마치 미국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고 전쟁을 했지만 막상 대량살상무기가 없음을 확인하고도 그 전쟁은 불가피했다는 억지와 같다.
그 결과 5.18 광주에 대한 왜곡이 나타나고 나아가 일제시기를 찬양하여 일본 극우를 기쁘게 하는 괴물 교과서들이 나타난다. 박정희 유신독재를 찬양하는 입으로 일본 역사 왜곡을 탓하는 것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탓하는 짓이다. 진실, 진리, 사실은 중요한 게 아니다. 오히려 ‘사실 아닌 환상의 최면술’인 종북에 빠져 있는 지금, 우리는 파블로프 개일 뿐이다.
이 딴 세상 확 뒤집어 져야 한다.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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