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그리스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악당이 있다. 프로크루스테스는 평소 선량한 척 살다 나그네를 보면 집에 초대하여 극진히 대접한다. 그의 집에는 침대가 하나 있는데 주인의 호의에 감사한 마음으로 침대에 잠이 든 손님들은 사지가 결박된다. 그리고 침대보다 작으면 잡아 늘려 침대 크기에 맞추고 침대보다 크면 큰 만큼을 잘라버렸다. 이 신화는 자신의 잣대로 모든 것을 꿰맞추려 하거나 판단하는 독단을 그린 비유다. 그리고 이 독단의 결과는 생명을 죽인다. 


메르스라는 낯선 이름이 일상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그 공포의 진원지가 삼성이다. 삼성은 지난 십수년 한국 경제의 상징이다. 보이는 곳에서 경제의 국가대표인 양 삼성의 어마어마한 매출과 순익 숫자로 대리 만족했다. 환상이 우리들의 영혼을 태운 것이다. 그 사이 삼성의 제일주의와 다 바꿔 주의는 승자독식의 괴물이 되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삼성은 더 큰 힘의 소유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권력이 삼성에게 넘어 갔다고 탄식을 할 정도다. 그들의 인맥, 로비력, 금력에 의한 대한민국의 어둠속 지배는 삼성 아닌 이들에게 공포 자체다. 저항 자체를 포기할 정도다. 그 삼성이 차세대 돈줄로 상정한 것이 의료영역이다. 의료영역을 사유화 민영화하여 의료를 이윤의 숙주로 삼겠다는 것인데 그 중심에 서울삼성병원이 있다.


어떤 기독교인의 바람대로 메르스는 동성애자들에 대한 신의 심판이 아니라 인간의 생명을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의 삼성에게 재앙이 되고 있다. 메르스를 못 막은 주체는 박근혜정권이지만 그 비극의 주관자가 삼성병원이기 때문이다. 메르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 작용을 한 14번 환자는 5월 27일에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그리고 5월 29일까지 응급실에 있었다. 일주일 전에 1번 환자 확진이 있었고, 평택이라는 같은 지역, 같은 병원, 같은 층 병실에 있던, 비슷한 증세의 환자이었는데 말이다. 송재훈 삼성 병원장은 환자가 말을 안 해 몰랐다고 한다. 거짓이 아니라면 최소한의 문진도 생략하는 끔찍한 무능이다. 부산의 한 내과의원은 환자가 삼성서울병원을 다녀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바로 메르스를 확진했다. 일개 의사도 할 수 있는 일을 왜 거대독점병원은 하지 못했던가? 안했던가? 

이유는 간단하다. 영리와 명성이라는 마약에 취했기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은 5월 29일 이후에도 응급실을 전면 폐쇄하지 않았다. 6월 13일까지도 응급실 폐쇄조차 하지 않았고 병원은 “아무 잘못이 없었다”, “국가가 뚫린 것”이라며 언중유골의 발뺌만 했다. 삼성이 곧 국가라는 속셈 말이다.


삼성의 힘은 가히 대단하다. 정부로 하여금 메르스 노출 병원의 발표를 미루게 했다. 서울시장의 요구에 자료제공을 거부했다. 자료공개를 거부해 진실을 은폐한 한 것이 이번 메르스 확산에 결정적 원인이다. 삼성의 탐욕과 삼성만 바라보고 있던 정권의 무능의 합작이다. 더 이상 진실을 감 출 수 없자 삼성병원장과 국무총리 직무대행이 6월 7일 오전 11시에 동시에 발표를 했는데 간발의 차로 삼성자본이 먼저 발표를 했다. 삼성이 정부를 앞섰다.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위원회”라는 비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메르스의 사회적 본질은 삼성 자본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민의 건강권을 포기한 것이다. 서민 생계에 치명타를 가했다. 이런 삼성자본의 진실 은폐는 역사적인데 ‘삼성노동자 백혈병’, ‘태안반도 기름유출 사건’ 등이 그거다. 모든 권력을 동원하여 삼성자본의 명성과 이윤을 지키는 과정은 그 과정 자체가 바로 인간의 존엄과 생명에 반하는 짓이다. 피도 눈물도 없다. 그러나 보자. 이윤을 향한 의료행위는 공공 의료 예방 의료에 얼마나 취약한가? 아니 오히려 전염병의 수퍼 전파자가 되지 않았나. 우리가 이성과 상식과 인간 존중의 머리가 있다며 메르스의 교훈은 의료민영화니 영리병원이니 하면서 우리들의 생명과 건강을 돈 귀신과 흡혈의 악귀들에게 맡기는 미친 짓을 막아야 한다는 점이다. 메르스의 수퍼 전파자가 되고도 원격진료라는 전략적 잇속을 챙기는 삼성, 정말 무섭지 아니한가? [참세상 손미아(강원대 예방의학)님 글 참조함.]


반면에 열악한 상황에서도 수많은 노동자가 사회적 책임감을 잊지 않으며 위험한 일을 해내고 있다. 이 노동자들은 재난을 예방하거나 최소화시키며 대중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는 당당한 주체다. 메르스에 고통 받는 환자의 많은 부분이 의료 노동자다. 일하는 노동자들의 노력이 모든 생명의 토대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는 여전히 비정규직이다. 삼성이 사악한 것은 서울병원 하나에만 비정규직을 3천명을 고용하고 있었지만 이들에 대한 방호 조치는 없었다는 점이다. 자본에게 비정규직은 조금 적게 받고 일하는 이등 노동자를 넘어 그저 투명인간이나 유령일 뿐임을 보여 준 것이다. 그렇다. 비정규직은 바로 이런 문제다. 인간 자체를 부차화 수단화하여 인간성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그러니 비정규직은 차별을 줄이는 존재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해야 우리가 비로소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 비정규직 문제다 우리시대 가장 큰 민주와 인권의 문제인 이유다. 


세월호도 메르스도 문제가 발생한 그 자리에 노조가 있었다면, 자본이 돈이 아니라 생명을 먼저 생각하는 최소한의 브레이크인 민주노조가 있었다면 비극과 고통의 크기는 훨씬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레이건 대처 이후 권력을 지닌 세력은 여야를 막론하고 노동조합 존재를 헌법적 기본권이 아니라 이윤추구의 걸림돌로 보며 분리 배제 파괴를 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거대한 자본이라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누인 신세가 됐다. 침대의 이름은 삼성이고 프로크루스테스는 박근혜 정권이다. 안전한 일터, 안정된 일터, 대중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공공의료 확충, 무상의료와 지역 주치의에 의한 예방 의료가 파괴되고 있다. 우리가 권력과 자본의 탐욕과 무능의 침대를 걷어차지 못한다면 우리의 내일은 오늘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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