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옥죄던 전쟁의 먹구름이 일단 멈췄다. 다행이다. 어떤 좋은 전쟁도 가장 나쁜 평화보다 못한 법이다. 전쟁을 부추기는 저열한 남한 언론들의 천박한 보도와 그들이 비웃는 북한의 보도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실제 이번 긴장격화는 합리성을 배제한 긴장이다. 이명박근혜정권 시대, 더 분명히 말하면 천안함 사태 이후 대한민국은 ‘절대적 전제의 맹목’에 빠졌다. 최소한의 합리적 의심도 배제한 보도와 주장만이 난무한다. 그것에 반하면 종북이 된다. 하지만 모든 진실과 진리를 파괴하는 것이 바로 이 맹목(盲目)이라는 괴물이다. 우리가 조중동을 기레기라 욕하다가도 북한 문제에서 갑자기 뉴욕타임즈 쯤으로 여기는 무지와 착각을 벗지 못한다면 우리는 정체모를 지뢰 한방에 온 삶이 흔들리는 비극적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 이전과 다른 기묘한 지점이 여럿 있다. 첫째는 지뢰 폭발의 기괴함이다. 최첨단 열감시기 설치된 고정 초소 바로 앞에서 발생된 폭발에 폭발장면은 있지만 매설 장면은 없다. 안개 때문이라는데 열 감지기 TOD는 어둠이나 안개에 구애치 않는 장치다. 둘째 그동안 남북 간에 문제에 슬쩍 비껴만 있던 미국이 처음부터 한미합동조사라는 이름으로 전면에 등장한다. 이례적이다. 셋째, 어떤 물증도 없는 포사격에 대한 주장이다. 주장만 하면 무조건 믿으라는 맹목이 전형이다. 그러면서 포를 쏘고 대북 방송을 한다. 남한이 휴전상태를 열전으로 돌린 것이다. 우리는 쉽게 대북 방송이라 하지만 우리 스스로 그것을 심리전(心理戰)이라 부르지 않는가? 그렇다. 그것은 그저 소음이 아니라 휴전을 열전으로 돌리는 전쟁의 일환이다. 남북 대치 상황의 엄중성을 배제한 남한의 일방적인 열전화가 참으로 기괴했다. 넷째는 중국이다. 중국은 자기들의 언론을 통해  북한과 한국 또는 다른 외부 세력이 중국의 열병식에 영향을 주려고 지금 도박을 하는 것인가를 물으며 “만일 열병식이 어떤 형태로든 실질적인 간섭을 받고 외부에서 보기에 악의적인 부분이 있다면 중국은 무관심하게 이를 방치해둘 수는 없다... 강력하게 대응 하겠다”고 보도했다. 북한과 한국 또는 다른 외부 세력이라고 호칭할 때 외부세력을 북으로 해석하는 나한 언론의 주장은 틀렸다. 남북은 이미 호명되어 있기에 그 대상은 명백하게 미국이다. 


이유와 과정이야 어떻든 남북이 긴장을 완화하는 대화를 하고 합의를 발표하는 것은 전쟁을 선동하는 몽매보다 백번 났다. 그런데 그 합의문도 굉장히 이상하다. 우선 긴장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포사격에 대한 언급이 없다. 지뢰 사건에 대해 포사격을 조작하고 작심하고 36발의 포탄을 남측에서 쏜 것이 아니라면 강력한 사과와 재발방지에 포사격 공방이 실종된 것이 의아하다. 두 번째로 유감이라는 표현에 대해 그것을 사과로 보는 것은 우리 어법 상 억지다. 보통 유감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쓰는 말이다. 오직 일본만이 그것을 우회적 사과라 하지만 우리는 그 말의 진정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지뢰매설에 대한 인정도 아니고 다친 것에 대한 유감을 사과로 보고, 그것을 대북 상대로 원칙의 승리로 보며 심지어 이른바 햇볕정책을 폄하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지나친 정신 승리 식 주장일 뿐이다.  


그러면 이번 사태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남한의 언론들은 북은 실리 남의 명분을 챙긴 것이라 했다. 하지만 유감이라는 말은 명분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협상 막바지 대통령이 강력한 사과 재발 방지가 전제라는 말을 머쓱하게 만든 것이 지뢰폭발에 다친 병사에 대한 유감이다. 남한 식 지뢰도발도 아니고 병사가 다친 것에 대한 유감은 텐진 항의 폭발로 고통 받는 텐진 시민들을 걱정하며 유감이다,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실제는 오바마 미국 정부가 진행된 “전략적 인내”라는 대북 봉쇄 무시 정책이 미중관계의 전략적 충돌 속에서 포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처음부터 미국이 지뢰조사에 나서고 남북 발표 직후 즉각적으로 환영을 표하는 백악관의 모습은 충분히 상징적이다. 두 번째는 5.24 조치 이후 대북봉쇄를 견지해온 남한 측의 입장 변화다. 이것은 결국 북의 항복 없이는 대화가 없다는 한미의 대북 정책이 전략적이고 결정적인 전환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공은 북미 문제로 전개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것이 남한의 객관적 위치다.  


두 번째는 중국과 동북아 정세가 미묘한 전환을 하고 있다. 중국은 자기들의 변한만큼 북한의 변화를 자기들의 영향력 속에서 전개시키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북은 북 자체의 역사를 가진 만큼 쉽지 않다. 북중관계는 한미관계와 다르다. 최근에 중국의 9.4 전승절 행사를 두고 일본과 중국과 한국과 신경전 중인 미국은 그 판을 한바탕 흔드는데 필요한 카드가 한반도 긴장일 수 있다. 중국과 북한은 장성택 처형 전후로 사이가 뒤틀려 있다고 한다. 미국의 봉쇄와 중국의 견제를 건너기 위해 북은 미국 봉쇄를 러시아를 통해 뚫고, 중국의 견제를 미국과 남한의 관계 개선을 통해 극복하려는 의도가 있고 그 첫 돌파점이 이번 긴장을 활용한 전화위복 전략이라 볼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이 북의 진정한 의도로 보인다. 그러면 남이 차지한 명분은 무엇일까? 남북 간 대립으로 닫힌 문을 열 기회를 얻은 것이다. 하지만 아마 진정한 실리는 내정에서 현 정부의 위기를 무마시킨 것일 터. 북미 북중 문제가 새로운 차원으로 전개되고 있다.  


사족 같지만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 있다. 북 무력을 대표해 참석한 황병서와 김양건이 남한 언론에서는 숙청 총살 설에 올랐던 사람들이다. 그런니깐 유령이 나타나 북한을 대표하고 있는 셈이다. 이것은 국정원의 정보력이 최소의 최소 신뢰도 갖추지 못했음을 실토하는 것이다. 오보에 대한 어떤 책임도지지 않는 한국 언론에 나와 북을 증언하는 수많은 전문가들이 실제로는 국민들을 속이려는 사기꾼에 불과함을 말해 준다. 간첩조작, 대국민 해킹 도감청, 부정관권선거의 몸통 국정원은 해체되고 근본적으로 재구성된다. 남북 합의문 식으로 말하겠다. 

국정원 참 유감이다. 나는 국정원에 사과를 한 것인가? 

남부노동상담센터

문재훈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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