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 (2003)

감독: 페키 젠킨스


 " 옛날 옛날에 아주 어여쁜 공주가 살고있었답니다. 공주는 그녀의 미모를 질투하는 왕비의 미움을 받아 독사과를 먹고 깊은 잠이 들었는데 어느날 숲속을 지나던 백마 탄 왕자님의 키스을 받고 잠에서 깨어....... "

이 영화는 실화이며 미국 최초의 여성 연쇄살인범 이야기입니다. 좌절에 빠진 한 창녀와 그녀에게 다가온 레즈비언 소녀의 비이성적이고 맹목적인 동성애, 그리고 무차별적인 살인 이야기, 델마와 루이스’ 같은 화려한 결말이나, 의중을 벗어난 반전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뭐 이래? 할 수 있는, 한 여자가 자신의 불운한 운명에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아주아주 상투적인 건조하고 뻔한 내용, 하지만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는 바로 이런 무미건조함 속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감독은 왜 하필이면 세기의 미녀인 ‘샤를로즈 테론’ 을 세기의 추녀로 만들었을까요?

 어쩌면 감독은 그런 지루함속에서 처음부터 그런 여자들의 뻔~한 인생이 숙명이라는 것을 보여주려고 한 것은 아닐는지? 뭔가 색다른 반전과 화려한 이야기를 기대하는 영화형식에 길들여진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감독의 낯선 문법때문인데요, 하지만 무엇보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바로 ‘샤를리즈 테론’의 캐스팅입니다. 연기를 잘하는 못 생긴 배우라면 얼마든지 있을 텐데 감독은 왜 하필이면 모든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인 세기의 요정, 샤를로즈 테론을 20kg 더 살찌게 하고, 20살은 더 늙은 분장을 시키며, 20배는 더 추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런 질문을 해 봅니다. 과연 여자의 미모는 누구를 위해 필요한 것 일까요?

자 자신을 위해서?  아니면 남자들을 위해서? 젠키스 라는 여성 감독의 눈에 비친 남자들  이란 가부장적 사고로  예쁜 여배우만 나오면 그저 어쩔 줄 모르는 발정난 수캐들이고,   여자들이란 그런 남성 이데올로기의 혜택에 빌붙어 스스로 노예의식을 벗어나지 못하는  백설공주와 신데델라의 후예들이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그런 세상, 혹은 그런 미국사회의 남성이라는 상징에 총알을 박아 넣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영화 속 ‘린’ (샤를로즈 테론) 은 남자들을 하나씩 거세해 나갑니다. 하지만, 감독은 그 곳에 머물지 않고  ‘샤를리즈 테론’이라는 절세 미녀를 보기 위해 영화를 찾은 남자 관객들까지도 거침없이 거세합니다. 세기의 미녀 ‘샤를로즈 테론’ 을 추녀로 만든 이유는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감독은 '테론' 을 남자들의 연인이 아닌  모두의 '엄마' 로 만들고 싶었던 겁니다. 우연히 ‘린 (샤를리즈 테론)’ 에게 나타나 유일하게 그녀의 친구가 된 동성애자 ‘셀비 (크리스티나 리치)’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호기심에 이끌려 클럽에서 만난 뒤 서로 위로해줍니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그 만남이 린에게 최초의 살인이 된 쇠몽둥이 사건이 있은 후, 린은 셀비에 게 비정상적인 집착을 보입니다. 젠킨스 감독에게 쇠몽둥이와 살인은 어떤 의미이길레 그 사건 이후로 ‘린’ 은 ‘셀비’ 에게 그토록 강한 집착을 보이는 걸까요? 린에게 있어 셀비는 동성애자가 아니라 다만 그녀가 13년 전에 자신의 부모에게서 잃어버린 보호받아야할 자신입니다. 동시에 쇠몽둥이로 상징되는 남성의 성적 폭력에 의해 잉태된 자신의 딸이기도 하지요. 그때의 유린으로 인한, 린의 각성은 그녀를 폭력이 있기 이전,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지치기 이전 상태인 최초의 아기를 임신했을 때로 되돌려 놓았고, 당시에 방치했었던 어머니로써의 본능을 발동시키게 됩니다. 

비록 폭력에 의해 수태된 자식일망정,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서의 셀비와 그리고 그 절체절명의 어미로써의 의미가 그녀의 정신세계를 채우기 시작하는데 그래서 그녀의 사랑은 결코 동성애적인 문제가 아니라 어미와 자식 간의 보호의 대상이자 애절한 집착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린은 셀비라는 새끼를 밴 암캐입니다. 새끼 밴 암캐에게 다가가 본 적이 있나요? 암캐는 자신과 새끼의 공간에 발을 들이는 누구에게나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심지어 누구라도 물어뜯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린의 남성 살해는 남성 사회의 폭력에 대한 적극적인 반격이 아니라, 새끼를 보호하기 위한 여성으로써의 공격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입니다. 영화에서 린은 셀비를 수태한 이후로 남성들과의 섹스를 철저히 거부하고 있습니다. 린은 자신을 위해 집을 나온 상처 입은 '셀비' 를 위해 폭력이 철저히 배제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기를 원했고, 그 목적을 위해  스스로 몬스터가 되어갔습니다.  그러므로 백설공주는 몬스터였습니다!  

옛날 옛날  아주 특별한 <백설공주> 에서 사실 백설공주의 구원은 남성 권력에 순종한 보상이며, 반대로 마녀의 멸망은 여성에게 주입된 남성 권위에 저항한 ‘징벌’ 이라는 이야기 . 

린은 쇠몽둥이로 당하는 그 순간, 모든 것을 깨닫는데요. 어릴 적에는 자기가 공주가 될 줄 알았고, 왕자가 나타나 자기를 데려가 줄 줄 알았지만, 삶의 결과는 단지 5달러에 스스로 옷을 벗어야 하는 창녀가 되었습니다. 레즈라는 이유로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셀비와, 여자라는 이유로 아버지로부터  도망나온 린은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서로를 이해했지만  현실에서 쎌비는 경찰들에게 린을 팔아넘겼습니다. 냉혹한 현실 앞에 쎌비는 스스로  살기위해 린을 배반했지만 그걸 알면서도  끝까지 쎌비를 지켜주려는 린을 보면  인간이 세상을 살면서 진정 의지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대체  인간을 지탱하게 해주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 일까요?  하지만 반대로 말한다면 대체 무엇이 우리의 눈을 멀게 만드는 것일까요? 

허구와 현실. 세상의 온갖 그럴듯한 구호들이 사실은 그 속에 추한 리얼리티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엄마의 본성이 성모마리아의 그럴듯한 아가페적 모성애가 아니라, 때로는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미친 암캐처럼 이빨을 들이대는 괴물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사랑, 이성, 희망 따위의 단어가 갖는 진정한 의미가, 때로는 몬스터라는 불편한 진실을 깨달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에서 원빈의 엄마인 김혜자는 아들이 살인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들대신 살인자로 잡혀 온 한 청년을 물끄러미 바라만 봅니다. 엄마의 자식에 대한 절대사랑이 누군가에게 괴물이 되는 순간입니다. 

 

얼마전 황교안 국무총리가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의 공직가치 조항에 민주성·다양성·공익성 을 삭제하고 ‘애국심’ 등만 넣으라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고있습니다. 손석희 앵커는  28일 JTBC <뉴스룸>앵커브리핑을 통해  헌법이 정한 국민의 4대 의무(국방의 의무, 납세의 의무, 교육의 의무, 근로의 의무)를 다하느라 군대에 가고, 세금 꼬박꼬박 내고, 교육을 받고, 지금 이 시간에도 열심히 일하는 우리들에게 누가 애국을 말하는가 ”라고 반문했습니다. 각종 위장전입과 해괴한 질병으로 군면제를 받고 자녀들 병역논란에 진 땀 흘리고 있는 그들이 과연 애국을 말할 자격이 있을까요? 그들이 말하는 애국은 애국을 위해 어느 정도 사소한 희생은 감수해라! 그것이 충성이고 애국이야! 라고 말 하고 싶은 것일테고 이것 역시 “의도된 희생” 을 말하는 ‘괴물’ 이라고 보기에 충분 할 것입니다. 

 이번엔 한반도에 사드를 들여온다고 난리인데 어느 지역 할머니가 ‘나라를 팔아먹어도 박근혜를 밀어준다’ 고 말하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박근혜를 밀어주든, 새누리당을 밀어주건 상관은 없는데 당신 손자, 손녀들이 밥 굶고 직장 못 구해 힘들어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느냐고, 박근혜를 밀어주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혜택이 돌아가느냐고 묻고 싶습니다. 결국 백설공주란 한낱 남성들의 편리한 노리개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을 깨달을 때, 누군가에게 계획되어진 사랑, 희망같은 단어들이 때로는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몬스터라는 진실을 받아들일 때, 영화 <몬스터> 는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영화감독 홍두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