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참다운 의미와 가능성은 자연스러운 수단과 탁월한 설득력을 가지고 동화적인 것, 기적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특유한 능력에 있다.’ (발터 벤야민)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에게 있어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쉽게 눈에 띄는 질서를 분산시키고 무질서를 가시화하는 것! ’ 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그의 영화에서 드러나는 말과 몸짓과 화면 비율의 구성체계와 사운드는  우리에게 익숙한 획일적인 질서와는 다른, 다소 어수선함을 볼 수 있는데요. 특히 화면이나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그런 연출에 국한된 것 만이 아니라 그가 그려내는 집시들의 무질서한 세계자체가 법도 예절도 상식도 없는 아주 이상한 세계입니다. 있는 것 보다 없는 것이 더 많은 곳!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고 그래서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세계! 누가 감히 유럽에서 무질서의 상징인 유랑민. 집시의 세계를 영화로 만들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집시는 유럽인들에게 있어 여전히 금기이고  아직도 동냥하고 소매치기를 한다는.....그 어떤 문명도, 문화도,  그 어떤 교육도...이성도, 상식도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듯 사는 사람들 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세계를 상식을 초월하고 회화처럼, 마술사적인 환상의 세계로 보여준 영화가 바로 집시의 시간이고, 그곳엔 비상식이 만들어낸 상식을 뛰어넘는 가치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뒤집어 생각해보면 우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무질서의 세계 속에는 법과 예절과 상식의 합리적 사고가 가둬놓는 세계에서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는 무수하게 더 많은 우리가 모르는 아름다운 것들이 존재한다고 생각됩니다.  이런 혼돈과 비이성으로 가득 찬 상식 밖의 세계를 영화로 끌어들여 일상으로 재 구성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31살의  '쿠스투리차'  에게 칸느는 자기들이 표현할 수 있는 최고 찬사인 '황금종려상'  을 수여합니다.

 

유고의 어느 집시 마을에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쓴 소년 ‘페란’ (데버 더모빅) 이 자상한 할머니 (심령술사) 그리고 다리를 저는 어린 여동생 ‘다니라’와 함께 가난하지만 나름 행복하게 살고있었습니다.  강물 위에 띄운 화려한 불빛을 받으며 죽은 자는 꽃으로 장식하고 강물에 떠내려가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  삶의 즐거움을 구가하는 집시의 축제로 이어집니다.  페란은 이상하게 항상 커다란 칠면조를 안고 다니는데 할머니는 이 칠면조를 언젠가 '페란' 을 장가들이는데 쓸 밑천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란'  은 ' 페란' 대로 이 칠면조가 자기 분신이라고 생각하는지 매일 아끼며 껴안고 자는데 자기에게 정성을 다하는 페란의 심정을 아는지 신기하게도 칠면조는 페란이 시키면 그가 시키는 대로 다 합니다.

 페란은 어느 날 이웃집 처녀 ‘아즈라’를 보고 사랑에 빠져 칠면조를 통해 사랑을 전하는데 그걸 본 아즈라 역시 순수한  테란을 보고 반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페란의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는데 그녀 어머니를 설득하러 간 ‘페란’ 의 할머니는 불쌍한 손자를 보며 칠면조 한 마리가 전부인 자신들의 가난을 저주하며 손주를 달랩니다.  이때, 마을이 시끄러워지며 고급 승용차 한 대가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자 아이들이 차들 따라다니며 차속의 얼굴을 보기 위해 창문으로 얼굴을 갖다 대고  안에는 이곳 출신의 성공한 ‘아메드’ 가  번쩍번쩍한 양복을 입고 부하들에게  담뱃불을 붙이라고 거들먹거리고 있습니다.  마을은  삽시간에 그를 환영하기 위해 축제 분위기가 되고 그 자리에서 아메드가 병에 걸려있는 자기 아들을 보며 걱정하자 심령술사인 '페란' 의 할머니는 심령술로 고쳐주는데 이걸 본 '아메드' 는 자기아들을 고쳐준 대가로 할머니의 손녀이자 페란의 여동생인 '다니라'  를 도시의 병원에 데리고 가 다리를 고쳐주겠다고합니다.

 

천사 같은 다니라를 볼 때 마다 온전치 못한 한쪽 다리 때문에 늘 마음 아프던 할머니와 페란은 잘 되었다며 페란은 다니라를 병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함께 도시로 떠날 결심을 합니다.  하지만 도시의 의사는 다니라의 상태가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하고 다니라는 오빠에게 자기 혼자 병원에 버리고 가지 말라고 울면서 매달리지만 아메드는  '페란' 에게 동생은 의사에게 맡기고 빨리 가자고합니다. 어쩔 수 없이 동생을 진정 시키며 차에 오르는 페란의  참담한 심경을 아는 지 차창 밖으로 휘날리는 하얀 스카프는 죽은 어머니로 변해 혼자 눈물짓는 테란을 위로합니다.  페란을 태운 차는 이태리로 떠나고 다음날, 페란에게 아메드는 거지처럼 앙상한 고아들을 소개해주는데 아메드는 사업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라 고아들을 데려다가 구걸하게 만드는 앵벌이 두목이었습니다. 그는 페란에게 고아들을 데리고 나가서 돈을 벌어오라고 하는데  여동생 '다니라' 가 병원에 있기 때문에 페란은 하는 수없이 아메드의 요구대로 아이들을 부려가며 앵벌이 대장노릇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동안 ‘별’ 을 점치고 칠면조와 이야기했던 순수한 청년은 점점 세상의 탐욕을 경험하며 조금씩 타락해가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궁지에 몰린 아메드를 구해주자 아메드는 고마움의 표현으로 유고에 잇는 페란의 할머니에게 큰 집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 말에 조금 위안을 얻어 다시 살 힘을 얻는 페란은 도로의 ‘보도블럭’ 을 뜯어 그 안에  돈 을 숨기며 꿈을 키워 가다가 문득 동생이 보고 싶어져서 병원을 찾아가지만 거기서 ‘페란’ 은 동생이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아메드가 동생의 다리를 고쳐주기는커녕 행방도 모른다는 사실에 배신감에 빠져 유고의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거기에도 아메드가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던 자기 이름의 집은 없었습니다.  모든 게 거짓이고 자신은 철저하게 이용만 당했다는 사실에 페란은 분노하고 절망하는데 이때 사랑했던 ‘아즈라’ 가  불룩한 배를 가리키며 너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깊은 절망과 배신감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페란은 그녀가 자신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말을 믿지 못 하는데 아즈라가 바로 자신의 삼촌과 놀아났기 때문입니다. 아즈라는 결국 혼자 아이를 낳다가 죽고 페란은  그녀가 아이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페란'  을 보고 할머니는 이런 말 을 합니다.

 

‘네가 모든 걸 부정하면 하나님도 너를 모른 척하실거다’ 

이 영화  '집시의 시간' 은 저에게 가슴이 시리다는 말이  어떤 것인지 알려 준 영화였습니다! 페란이 얼마나 순수한 청년이었던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의 타락을 지켜보는 것이 얼마나 가슴시린 것인지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 후에 페란은 불쌍한 동생 다니라 를 생각하고 그녀를 찾으러 이태리로 떠나서 온 도시와 국경을 헤매다가 결국 로마에서 두 사람은 기적적으로 상봉하게 되는데  절름발이로 동냥을 하며 힘든 나날을 살아가던 동생 '다니라' 에게 '페란' 은 충격적인 말을 듣게되는데  이후에 영화는 삶 속에 존재하는 작은 기억들은 착각과 망각이라는 비이성이 만들어낸 또 다른 현상들로 인해 자기 기억과는 다르게 삶을  전개해 나간다는 삶의 양면성을  말해줍니다. 


이번에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보면서 알파고를 응원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왜 알파고를 응원하느냐고. 물었더니 알파고가 강하니까 강한족을 응원하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강한 족을 응원하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신이 길에서 권투선수한데 얻어터질 때 권투선수가 당신보다 강하니까 우리가 권투선수편을 들어도 당신은 할 말이 없겠네요? 했더니 조용해지더군요. 강한 쪽을 응원한다고해서 자기가 강한 쪽에 속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힘있는 쪽을 응원한다고 해서 내가 힘 있는 쪽에 속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아니 그럴수록 어쩌면 내 현실은 점점 힘들어 질수도 있습니다. 세계경제는 양극화 현상이 심해져서 잘사는 1%와 나머지는 가난한 99%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치라는 것은 사회를 이끌어가는 힘 있는 1%의 편리데로 구도를 짜기 때문에 힘없는 서민들은 점점 살아가기 힘들어 질 것이라고합니다. 그런데 제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힘없는 99%가 힘 있는 1%의 정당을 지지한다는 것입니다. 4월13일은 우리나라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있는 날입니다. 부디 잠시 기분좋자고 힘 있는 쪽 편을 들지 마시고, 그런다고 당신이 힘있는 1% 되는 것 절대 아닙니다. 냉정하게 현실을 보고 현명하게 투표했으면 좋겠습니다. 젋은이들도 헬조선이라고 푸념만하지 말고 투표에 참가해서 우리나라 정치판도를 바꾸십시오. 젋은이들이 투표에 참여해서 직접 정치판을 바꾸지 않는 한 헬조선은 계속 될 것입니다.  

 영화도 이런 비상식적인 것들로 초월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산문적인 것과 시적인 것들을 넘나들며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기 위해 글도 모르는 진짜 집시들을 출연시켜 만들었다고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 ‘집시의 시간’ 은 전체 분량의 90% 를 실제 집시의 방언인 ‘로마니어’ 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이 작품은 제가 뽑는 명작 베스트10에 들어가는 영화입니다.   

  

영화감독 홍두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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