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트라다무스

1994년 프랑스 감독: 로저 크리스티안  장르:  드라마



이번 영화는 세계의 종말을 예언한 사람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예언자 ‘노스트라다무스’ 의 생애를 그린 영화‘노스트라다무스’ 입니다. 150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미셸 노스트라다무스는 철학, 문학, 역사, 의학에 정통했고 연금술, 점성술을 배우며 불어로 된 4행시 12 예언시집들을 출간했습니다.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아래 이루어진 당시의 중세시대에 그는 과학과 실험정신을 굳게 믿으며 진정한 진리를 찾고자 힘썼던 진보적 지식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페스트가 전 유럽을 휩쓸던 그때 따뜻한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며 ‘신 앞에서 만인은 평등합니다.’ 를 외치며 자신을 궁지에 몰아넣었던 성직자의 병까지 치료해주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어쩌면 그가 인류를 위하는 예언능력을 갖게 된 것도 온갖 어려움에 맞서 진정한 진리를 추구하는 인도주의자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때는 페스트가 전 유럽을 초토화시킨 16세기 초의 중세 말, 거대한 재앙으로 사람들이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앙심이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멈추게 하는 것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조금씩 신앙에 의혹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런 사회정치의 분열속에서 교회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게 되는데 사람들을 이단으로 몰아 화형에 처하면서 그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조장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시키는 이른바 ‘마녀사냥’제도를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노스트라다무스 (체키카료) 는 자신을 키워준 유모가 마녀로 몰리면서 길거리에서 화형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이때 그는 처음으로 기독교 윤리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진지한 의구심을 갖게됩니다.

       

그리고 12년 후, 노스트라다무스는 ‘몽벨리에’ 대학에서 의학을 배우지만 교수들이 언제나 고대 문헌에만 집착했고, 환자 개개인의 상태를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교수가 강단에 서서 문헌을 읽으면, 학생들은 그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적는 중세의 수업방식에도 의혹을 품었는데 문헌을 그대로 줄줄 읊는 교수들도 문제지만 학생들이 그것을 아무 비판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진보적인 ‘노스트라다무스’ 에게는 개개인의 독창적인 실험정신이 결여된 ‘몽벨리에’ 대학의 수업방식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 같아서 이런 교육현실이 안타까왔습니다.

   

그러던 도중에 한 교수가 갑자기 쓰러지는데, 노스트라다무스가 상태를 보니 흑사병이었습니다. 흑사병은 중세 유럽 사회를 붕괴시킨 커다란 원인 중 하나일 만큼 당시에는 큰 재앙이었고 그래서 길거리에는 사람들의 시체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의사이기도했던 노스트라다무스는 사람들에게 위생을 강조함과 동시에 장미꽃잎으로 제조한 자신의 환약을 주려고 했지만, 성직자들과 교회는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지하지 않고 의학에 의지하는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며 "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일에 어찌 자네가 손을 대는가? " 라고 반문합니다. 


이 때 노스트라다무스를 이단으로 몰던 성직자가 페스트에 감염되고 노스트라다무스는 그를 치료하던 중, 우선 감염을 막기 위해 먼저 그의 옷을 태워버려야 한다고 말하자 감히 신성한 성직자의 옷을 태운다는 그의 생각은 기존의 기독교인들은의 거센 반발에 부딪힙니다. 게다가 페스트에 감염된 성직자는 "십자가에 입을 맞춰 보시오. 당신은 악마요. 그러니 당신의 입술은 타버릴 거야. 만약 당신의 입술이 타지 않는다면 나를 치료해도 좋소! "  라고 말하고 노스트라다무스는 십자가에 입을 맞추고 그를 치료해줍니다.

상황은 악화되어 한시라도 빨리 치료를 해야 하는 시점에서 성직자는 노스트라다무스도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루터파인데 당신은 어떤파요?’ 그러자 노스트라다무스는 ‘ 저는 카톨릭입니다.’ 라고 답합니다. 중세 말, 조금씩 분열의 조짐을 보이던 교회가 ‘루터파’와 ‘칼뱅파’ 로 나뉘었던 시점입니다. 

       

노스트라다무스는 대학을 졸업한 후, 당시의 저명한 과학자였던 ‘스캘린저’ 박사 밑에서 공부를 하게 되는데 어느 날, 스캘린저 박사는 노스트라다무스에게 자신의 저택 지하를 보여주고 거기에는 당시 입에만 올려도 이단으로 몰려 처형당할만한 금기 서적들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물론, 현재는 위대한 자연과학계의 서적들로 여겨지는 것들이었지만 아무튼 스캘린저 박사의 조수였던 ‘메리’ (어섬터 세너 분) 와 결혼한 노스트라다무스는 혼인 후 메리에게 지하실을 보여주게 되고 메리는 과학서적에 푹 빠져 결국 스캘린저 박사와 노스트라다무스를 위험에 처하게 만들게 됩니다.

       

중세의 유럽은 거의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했고, 때문에 신앙과 이성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과학이라는 학문은 객관적이고 올바르게 논의될 수가 없었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과학은 이단, 금기시되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노스트라다무스의 과학과 실험정신은 언제나 억압받았고, 교회가 ‘아니다’ 고 할때는 어떤 과학도 입에 담을 수 없었습니다.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치료할 때도 기독교 때문에 반대에 부딪혔고 이런 속에서 노스트라다무스는 점점 불안한 미래를 예측하게 되는데 당시 프랑스의 국왕이었던 앙리 2세의 죽음과 여러 왕족들의 죽음을 미리 예측해서 맞추자 사람들은 그에게 예언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두려워서 ‘사탄’ 이라며 없애버리려고합니다. 하지만 야심많은 캐서린 왕비는 그를 구하고, 그녀의 후원아래 자연과학과 의학 연구를 계속해서 1000여편의 예언시를 수록한 ‘예언시집’ 12권을 출간하게 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그는 ‘나는 인류의 미래를 보았다’고 말하는데요, 그의 예언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예언보다 더 궁금한 것은 노스트라다무스가 과연 ‘인간 이성의 역사’ 에 있어서 암흑기나 다름없던 중세에 태어나 죽음 앞까지 몰고 가는 위기 앞에서도 도대체 무엇을 지키려고 그토록 피를 토하며 움켜쥐었던 것일까요?  

페스트로 도시가 사라질 만큼 매일 죽어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되고 그러자 기독교 지도부에서는 이 불안을 극복하고자 마녀사냥을 통한 공포정치를 시작하는데 공포정치는 지도자의 불안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나라도 수순이 기가막힌 것이 황교안 국무총리가 어느 날 느닷없이  애국을 말하더니 박근혜 대통령은 일언지하에 개성공단을 갑자기 중지한다고 발표합니다. 얼마나 큰 피해가 생기는지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 피해보다도 더 중대한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리고는 사드를 배치 해야한다고 날뛰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미국은 북한의 핵만 포기시킬 수 있다면 한반도의 사드배치는 백지화 할 수도 있다고 발표해서 우리 정부를 멀쓱하게 만듭니다. 


아무튼 정부는 총선을 앞두고 국가위기 상황이라며 국가가 테러위협에 처할지도 모르니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면서 대통령은 국회의장에게 직권상정을 합니다. 결국은 공포분위기를 조장해서 테러방지법이라는 명목으로 국정원에 더 강력한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일련의 수순같은데  국정원이 어디입니까?

서울시 공무원이던 유씨를 간첩으로 몰아세우기 위해 그의 여동생까지 협박했던 곳입니다.

이 사람이 간첩으로 적발이 되어 재판을 받았는데 무죄가 선고되었고, 이때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유씨의 중국과 북한 사이의 입출경 기록은 국정원이 조작한 서류라고 중국정부가 밝혔습니다. 그리고 작년에는 선거에 개입했다고 의심받던 국정원 해킹팀 직원이 자살하는 소동까지 일어났었습니다. 이런 곳에 더 힘을 실어준다면 이들이 할 일이 무엇일까요? 

테러방지법의 주요 내용은 국정원장이 국정원 소속의 테러통합대응센터를 운영하며 정부 소속 테러대책상임위원장까지 맡게 됨에 따라 대테러 활동을 총괄하는 사실상 국정원이 대테러 활동을 모두 가져가게 되는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대목입니다. 세월호 사건 이전이 국정원 최대의 위기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런 점에서 세월호 사건의 최대 수혜자는 국정원 일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 경제자문회의에서 희생, 불안,위기 세단어를 힘주어말햇다고합니다. 불안과 공포는 박근혜 대통령을 설명하는 키워드입니다. 그런데 공포정치는 사람들의 불안의식을 정치적 자원으로 삼아 사람들의 순응을 유도하므로써 목적을 실현하고자하는 정치를 뜻 한다고 합니다.  바로 중세시대의 암흑기처럼 말이지요, 


영화감독 홍두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