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작가 다비드르보르통은 그의 산문집 '걷기예찬'에서 걷는사람들을 "세상의 알몸 속으로 직접 뛰어드는 모험을 감행하기로 작정한 특이한 개인"이라고 표현했다.
작가의 표현만큼 거창한 각오는 아니더라도, 잠시나마 짜여진 일상의 시간표를 버리고 세상의 알몸을 느껴보고 싶다면 금천구청역에서 한내를 따라 독산역까지 이어지는 뚝방길 산책을 권유한다.
때는 바야흐로 여름으로 다가서고 있다. 벚꽃이 한창인 때가 엊그제인 것 같은데 길에 들어서니 흐드러지던 벚꽃 대신 버찌 열매가 무리지어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후덥지근하던 초여름 날씨가 이 길에서만 청명하게 느껴지는 것은 간간이 불어오는 한 조각 바람과 사각거리는 나뭇잎들의 속삭임 때문이리라. 여름냄새를 몰고 온 그 바람결에 나도 가져온 일상의 짜증을 실어보낸다.
길 위에 오르니 가장 먼저 덜 피어난 엉겅퀴꽃이 보여 반갑다. 따가운 여름같은 이 엉겅퀴 꽃은 나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꽃피워내기에만 열중하고 있다. 가까이서 들여다볼까 했으나 치열한 작업이 방해될세라 먼 발치서만 바라보고 스쳐 지나갔다.
엉겅퀴에서 눈을 돌리니 앞으로 뻗어있는 산책길이 보인다. 저멀리 굽어져 이어지는 숲길이 어느 동화책에서 방금 튀어나온 것 같다. 할머니집으로 찾아가는 꼬마의 이야기인 앤써니브라운의 '숲속으로'라는 동화의 한 장면이 연상되었다면 좀 과장된 표현일까?

그 길 위에서 나는 함께 걷고있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만난다.
"찌릉찌릉" 정겨운 소리를 내며 나를 스쳐가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에서 그분이 살아왔을 세월의 흔적을 본다.
챙이 너른 모자를 쓰고 일정한 리듬으로 걷고 있는 아줌마의 뒷모습에서 건강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헤아려보게된다.
할아버지와 나란히 자전거를 타고 앞서거니 뒷서거니 가는 꼬마에게서는 앞으로 자라갈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할아버지에게서는 손자에 대한 깊은 사랑을 만난다.
와이셔츠에 정장바지에 워킹화를 신고 걷는 어느 남자분의 처진 어깨가 무거워보여 마음이 안쓰러워진다.
저만치 한내천변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은 노부부의 뒷모습도 보인다.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함께 쌓아왔던 소중한 추억들이 두런두런 얘기가 되어 흘러나오는 것 같다.


나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 이들이 가진 저마다의 사연이 이 뚝방길 위에서는 무조건 멋진 그림이 되고 풍경이 된다.
길 옆으로 쌩쌩 달리는 문명의 소리가 신경쓰이긴 하지만, 그 가운데 들려오는 새소리와 초록빛, 바람, 햇살, 그리고 사람들 사이로 간질거리는 오감이 살아있는 이 길,  더 뜨거워지기 전에 금천한내뚝방길을 걸으며 그 길 위에 자신만의 사연을 올려보심이 어떠하실런지...


김수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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