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아파트 - 우리 시대의 아편 




부동산-아파트에 대한 집착이 중독에 이른 사회다. 아파트 값 불패의 유지는 이제 정권의 사활이 걸린 문제에 이르렀다. 거기에 개혁과 적폐에 차이가 없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우선 주택(아파트)이 가지는 ‘한국적 의미’가 특별해서다. 산업화=도시화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아이들에 대한 교육열과 두 다리 쭉 뻗고 맘 편히 잘 수 있는 자기 집의 존재는 가장 위력적인 ‘복지’의 실현이자 사회적 안정이다. 그러나 내 집 마련은 쉽지 않다. 강남개발로 상징되는 부동산 불패신화는 관료와 결탁한 투기세력과 상류층의 몫이었다. 부동산 투기를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그 대열에 동참할 기회를 잡지 못한 것에 대한 열등감으로 악착같이 저축을 했지만 그것은 또 부자들의 넉넉한 돈 놀음에 밑천 대주기였다.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저축자산은 실질소득 증대로 귀결되기가 어려웠고 그러다보니 인상만 하는 실물가치인 내 집(주택)을 마련하는 게 가장 현명한 경제적 선택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내 집 마련’을 위한 대중의 열망은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폭발적으로 나타났다. 1987년 6월 민주화가 문을 열고 789 노동자 대투쟁을 통해 등장한 민주노조가 기반이 된 분배 투쟁이 그것이다. 바람직한 역사적 전개가 되었다면 정치적 민주화와 산업적 재분배의 힘이 새로운 사회체계와 질서를 만들어야 했지만, 형식적 민주주의 유지에 급급한 정치세력들에 의해 돈과 권력을 쥔 지배계급은 ‘중산층 만들기’ 신화로 사회변혁의 힘을 물 타기 했다. ‘자가용과 자기 집의 소유’ 요구가 그것이다. 노태우 정권이 내건 ‘200만호 건설’, 일산과 분당에 신도시 건설은 노동자 민중의 계급적 문제 해결 대신 ‘신도시는 새로운 중산층으로 민주와 복지를 누리는 신세대 라이프스타일’을 상징했다. (이만큼 산다는 것이 실은 박정희 덕이 아니라  박정희 전두환에 대한 시대적 정치적 사회 구조적 ‘부정과 극복’에서 시작된 것임을 잊지 말자.)  


이른바 386세대가 지탄의 대상이 된 2차 부동산 - 아파트 광풍이 불었다. 2000년대 중반 전 세계적으로 불어 닥친 부동산 거품과 맞물리면서다.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확산된 신자유주의적 부채-자산 경제가 대중들에게 ‘빚 권하는 사회’를 만들었다. 당시 외환위기 극복 명분으로 시행된 경기부양 대책들은 가계를 내수부양의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었다. 오랫동안 국가복지가 전무했던 시절을 겪었던 대중들은 외환위기를 경험하면서 더욱더 사회안전망을 대체할 노후대책 수단으로서 주택소유에 집착했다. 이런 자산형성에 기댄 복지체계가 ‘빚 권하는 사회’와 만나면서 부동산 시장이 폭발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 주도로 2003년부터 건설된 신도시들은 이런 수요를 감당하기 위한 것이었다. 주택소유가 절대적인 재산 유지 증대 및 노후 대비 복지수단일 수밖에 없었던 경제적 현실과 부동산 불패가 만든 주택자산 대한 투기적 욕구의 결합으로 불치에 중독 병이 된 것이다. 중독 증세가 정도가 어느 정도인가의 사례가 아파트 값을 이유로 장애인 특수학교 건설을 막은 이들, 아파트 값을 올리고 지탱하기 위해 기꺼이 투기 범죄 작전세력이 되는 이들의 모습이다.  


서울 아파트의 중위가격이 7억 원이 넘었다. 중위가격이란 가장 비싼 1등부터 가장 싼 100등까지 줄 세웠을 때 50등의 가격을 말한다. 7억 원을 순전히 주택담보대출로 받았을 때, 원리금 균등상환방식으로 갚으면 한 달에 연리 3%로 매월 360만원을 30년 동안 갚아야 한다. 착실하게 월급쟁이로는 요즘은 천연기념물보다 희귀한 정년을 마쳐도 갚을 수 없는 액수다. 그러니 편법 불법이 동원된다. 무수한 재테크 방법이 동원되고 무수한 선진 금융기법이 활용된다. 그 결과 소수는 웃지만 현실은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어도 주택 보유는 50%도 안 되어 현실, 다수는 우는 헬 한국이 되었다. 수단이 좋고 운이 좋아 돈을 버는 이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 자본주의 경제란 누군가의 이득은 누군가의 손해다. 누군가의 행운은 심지에 불붙은 폭탄 돌리기 같아 누군가들에게 불운을 몰아주기 한 결과다.      


사람을 전면 상품화한다는 것은 노예가 된다는 것이니 불가하다. 그래서 사람이 일할 능력을 특정한 시간에 빌려 주는 것에 한에 상품화 한 것이 자본주의다. 땅도 사람과 함께 아주 특별한 조건에서만 상품이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추가 공급이 없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재부를 사적으로 독점하면 공평한 사회적 조건은 성립조차 할 수 없다. 누구는 소유했다는 것만으로 돈을 벌고 누구는 피땀을 넘겨준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런 특권과 반칙을 누리는 이윤이 지대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는 지대추구가 '사회 구성원 다수를 희생시켜 특정 세력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부동산 투기는 지대논리의 극대화인데 아파트 값에 대한 지금 우리의 기본적 태도는 이른바 불로소득의 성역화일 뿐이다. 


토지공개념이 필요하다. 최소한 택지 국유화 방책이 서야 한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이익인 지대는 국가가 전액 조세로 환수하고, 토지공공임대제로 민간에게 임대하는 법 체제가 서야 한다. 주택은 살 것이 아니라 살 곳으로, 인간이 토지와 자연자원에 대한 평등한 권리로 사회적 이해가 확립되어야 한다. 투기 세력, 지대 세력, 금융자본 건설자본의 굿판인 지금의 토건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모든 민중이 쾌적하고 안전한 주거생활을 확보한 이후에 사치적 소유가 누진적 세금 체제 위에 허용되어야 한다. 


사람이 중독에서 벗어나는 길은 자기의 인간적 존엄성을 되찾는 일이다. 자기의 생각과 생활을 소시민적 욕심이 아니라 사회적 역사적 그리고 공동체적으로 확장하여 가치와 의미가 있는 삶을 재구축하는 길이다. 아파트 값을 올리고 유지하는 것이 1가구 1주택을 넘는 다면 그것은 결국 집을 가지고 있지 않는 이들을 더욱 가혹하게 쥐어짜는 것에 불과하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이들의 피땀을 빠는 것이다. 부동산 아파트 그 중독에서 벗어나기 우리 스스로 특단의 자존심을 마련해야 한다. 물들의 부실은 점검되고 있는가?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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