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구 행정을 산재 사고의 공범자로 만들지 말라!






한때 포항제철과 현대중공업에서 무재해 달성 몇 년이라는 자랑 광고를 보고 경악한 적이 있다. 듣고 아는 산재 사망만도 몇 건인데 어떻게 저런 거짓말을 하냐는 분노였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하청 노동자들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산재와 사망은 제외시킨 결과다. 더럽고 위험하고 어려운 일은 하청 위탁 비정규화 즉 외주화시키고 거기서 일어나는 사고와 죽음은 자기와 무관하다는 저 악랄한 악덕을 버젓이 자랑까지 해되는 모습에 서럽고 분하고 참담했다.


지난 호 금천인 일면 톱뉴스에 금천구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산재 소식이다. 1년에 3명 중 1명이 다쳤다고 한다. 최근 1년 중 다친 사람들이 전체 일하는 사람들 중 32%가 된다는 것이다. 32%라는 수치 앞에서 잠시 사고가 멈춘다. 우리가 무심코 버린 쓰레기에 묻은 노동자들의 피가 선연하다. 만약 저 수치가 노동자가 아니라 사장들이었다면, 무슨 박사 교수 전문가들이었다면, 하물며 청소 용역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닥친 수치였다면 세상은 이렇게 조용할 수 있을까?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산재 위험직종 실태조사’ 보고서(2014)를 보면 일터에서 다친 조선·철강·건설플랜트 하청노동자 343명 중 산재 처리가 된 사람은 36명(10.5%)에 그쳤다. 개인이 비용을 부담하거나 아예 치료를 받지 못했다는 사람도 122명(35.6%)이나 됐다. 나머지 185명(53.9%)은 원·하청업체의 비용으로 처리(공상)됐다. 산재처리를 하지 않은 이유는 “원·하청업체의 불이익을 우려해서”라는 응답이 39.6%, “원·하청업체가 산재보험 처리를 못하게 해서”(29.4%)와 “산재보험 신청 절차가 복잡해서”(9.5%) 등이었다. 다친 사람을 위한 나라 법 행정이 미미하다는 말이다. 


우리나라 산재율은 낮다고 한다. 심지어 독일 제조업이 2.65%(2011년 기준)에 비해 우리나라는 같은 해 0.65%였다. 수치로 보면 독일보다 노동환경이 더 안전한 셈이다. 근데 산재사망률을 보면 독일은 10만 명당 1.7명이었다. 우리나라는 10만 명당 7.9명이었다. 일하다가 다치거나 아픈 노동자는 독일의 4분의 1 수준인데, 죽는 노동자는 4배가 더 많다. OECD 평균과 비교해 봐도 우리나라 산재율은 0.59%로 전체 평균(2.7%)에 한참 못 미치지만, 산재사망률은 10만 명당 6.8명으로 압도적 1위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다치거나 병에 걸리는 과정 없이 졸지에 돌연히 죽는 특별체질을 가지고 있는 건가? 이 격차의 비밀은 은폐다.  사망에 이르러 더 이상 감출 수 없기까지 감추는 기업과 그것을 방관하는 행정이 만든 참사다. 


산재 은폐율이 높은 것은 물론 산재 은폐를 부추기는 여러 제도적 허점과 고질적인 원·하청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가장 쉬운 이유는 아마 산재보험료 산정 방식이다. 산재가 많이 발생하는 업종과 사업장에 산재보험료를 더 많이 부담하는 현 제도는 기업에게 산재에 대한 노력이 생명과 안전이 아니라 비용의 증가로 보게 만든다. 우리가 산재를 사적 보험이 아니라 공적 보험 사회적 보험으로 제도화한 것은 산재 위험도가 큰 부분에 안전을 더하기 위해서인데 안전대신 비용과 부담만 더하는 꼴이다. 비근하게 건강보험만 하더라도 질병 발생 위험이 큰 가입자에게 보험료를 더 많이 부담시키지 않는다. 그러니 현 산재보험제도 자체가  사회보험의 연대적 원리와 보편적 가치를 위배하고 있다. 더 웃긴 것은 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에서 산재 보고의무를 위반했다가 적발됐음에도 산재 처리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절반이 넘는 다고 한다. 고용노동부 자료에도 최근 5년간 산재 보고의무를 위반해 적발된 건수가 4,549건이지만 이 중 산재 처리가 된 경우는 2,003건에 그쳤다. 위반을 확인하고도 그 위반을 시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정치 행정의 현실이 산재를 은폐하고 위험을 방조하고 있다.  


그래서 한국의 경우 노동행정과 관련된 부분만 제대로 잡아도 대부분의 문제가 예방되거나 쉽게 해결된다. 예를 들면 공공서비스 노동에 대한 과도한 착취는 민영화 또는 민간위탁의 결과다. 금천구 청소용역노동자들에게 강요된 짐승의 일터도 결국 사회적 공공적 업무를 민간 위탁했기 때문이다. 민간위탁은 이윤논리에 공공적 기능을 희생하는 공공업무 사유화 상업화 정책이다. 시민들에게는 공공서비스 비용과 부담의 증가 및 안정적 서비스 제공의 불안화이지만 기업에게는 손쉬운 세금 따먹기이고 공무원들에게는 행정을 ‘봉사’기능에서 관리 감시 ‘갑질’ 기능으로 돌리는 신간 편한 제도다. 그래서 공공기능의 민간위탁은 가장 큰 인권적 패륜행정이다. 노동자들이 직접 고용을 요구하는 것은, 그 방법이 세금을 줄이고, 안전을 만들고, 책임을 키우고, 무엇보다 일하는 사람들의 인간 존엄의 높이를 올리기 때문이다.  


산재를 줄이는 정말 필요한 사회적 대책은 결국 민주주의다. 산재가 은폐되지 않고 산재가 예방되기 위해서 반드시 산재의 고통 당사자인 노동자들의 능동적 참여가 필요하다. “아무리 강력한 법과 정부의 관리 감독도 노동자의 일상적인 감시체제를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일터에는 노동자의 참여가 집단적으로 가능한 노동조합이 필수다. 노동조합이 없는 회사는 그 자체로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노동권을 부정하는 것이자, 실은 자기들의 일터에서 사람에 대한 존중과 존엄을 부정하여 인간 이하 짐승의 일터를 강요하는 꼴이다. 영국 등에서는 고의적 산재로 사망이 발생하면 살인죄를 적용한다. 이른바 ‘기업살인법’이다. 최근에 한남상운에서 무리한 운행을 강요한 행정에 의해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행정살인법도 필요할 지경이다. 


금천구의 행정이 산재 다발의 공범이자 산재 사망의 사주자가 되지 않기 위해 행정상관행이나 기업탐욕이 아니라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의 말을 수용하고 즉각 시정하는 행정을 펼쳐야 한다. 하룻밤에 10톤에서 15톤의 쓰레기 무게를 감당하는 노동자들의 피땀을 새롭게 더 위로하기는커녕 외면하는 행정이 지속된다면 무슨 수사로 금천을 치장해도 여전히 우리 노동자들에게는 헬 금천의 지속일 뿐이다.


문재훈 소장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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