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동형비례대표제를 보다.



1960년 4월 혁명으로 수립된 제2공화국이 내각책임제 정권인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젊은 세대들이 주로 그런 부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도 예외가 아니다. 유의하고자 하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 중에는 그 역사를 모르는 경우도 있고 알고 있으면서도 내각제 정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그런 사실 자체를 알려 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 제도 즉 내각책임제 정부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라 할 수 있지만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더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란 어의(語義)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게 있는데 그것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그로 인한 혐오 또는 환멸 때문일 게다. 국민들이 왜 정치에 대해 불신을 넘어 혐오감조차 가지는가를 묻는 것은 모두가 식상해 할 일이기는 하지만 그 질문을 멈출 수가 없다. 그렇듯 우리의 정치는 정치인 스스로도 자조(自嘲)해마지 않을 정도로 후진적이다. 

정치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어디까지나 그것을 일터 삼아 나선 자 곧 정치를 하겠다고 자리를 차지한 자들의 탓이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인은 국회의원을 주류로 둘 수 있지만 정치가 업(業)인 자는 그 범주에 포함한다. 물론 모두는 아니지만 도덕성에다 역량 문제를 가진 자들이 많고 그런 자들로 인해서 얼룩진 헌정사를 빚게 한 것이 우리 정치의 현대사다. 

그러나 정치의 후진성을 말하면서 정치인 탓만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그들은 유권자 곧 국민들에 의해 선출되었으니 국민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기량이 부족한 선수로 구성된 팀은 승리는 커녕 궁색하고 졸렬한 게임으로 그들을 선택한 자는 물론 관전자들에게도 실망을 준다. 따라서 이러한 팀을 구성한 자와 그 배경을 제공한자는 그 팀이 이룬 결과에 대해 탓을 당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듯 우리 정치는 구성에서부터 문제가 있으니 비정상적 운영이 될 수밖에 없고 결과가 좋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함량이 모자란 소재들로 제품을 만들면 온전한 제품이 될 수 없는 원리다. 

그렇다면 왜 이런 현상이 있게 된 것일까? 우리 민족은 누가 뭐래도 우수한 문화민족이고 그것은 숱한 환란을 겪어내고 오늘의 번영을 이뤄낸 역사가 잘 설명해 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다시 말하면 인적자원이 풍부하고 그로서 비롯한 문명과 문화가 꽃을 피워 세계인의 찬탄을 받는데도 유독 정치판만 조소의 대상이 되는 연유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정치판의 혼탁은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함께 제기되어야 할 것은 그런 사람들이 활동하게 되는 환경 곧 생태계 문제다. 비록 유능한 사람들이 있어도 그런 사람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이 못 된다면 그들의 유능함은 소용이 없다. 토양에 문제가 있다면 열매나 꽃을 피워야 할 식물은 제대로 성장할 수 없고 대신 쓸모없거나 유해한 식물만 번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좀 미안한 표현이지만 우리의 정치생태계가 그렇다.  

이런 생태계를 바꾸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쓸모없고 유해한 정치꾼들이 판을 벌이지 못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60년 전 4월 혁명은 당시의 무능하고 부패한 정권을 심판하자는 국민적 염원의 결집이고 결국 성스러운 승리를 하였다. 이러한 결과로 민주주의가 모습을 드러내었는데 이 때 선택한 정치체제가 내각책임제인 것은 정치체제를 두고 논쟁하는 오늘의 현실에 시사를 던진다.

그렇다고 내각 책임제가 이상적 정치체제라 주장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정치체제가 오랜 시간에 걸쳐 민주주의를 앞세우면서도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점에 대한 반성을 해보자는 것이고 그것을 비교 접근방법으로 이해를 해보자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정치판은 대통령제에다 거대 양당이 강력한 통제체계를 견지하면서 긴 시간을 이어왔고 그런 환경이 오늘과 같은 정치체제를 있게 한 점을 성찰해보자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현실 정치체제에서는 참 정치인의 출현이 어렵고 비록 나온다 하더라도 제도가 만들어 둔 한계로 단명(短命)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현장, 즉 정치판에서 유능함이란 그들이 속한 집단에서 가치로 두는 이른바 당론(黨論)의 충실도로 판단되니 참 정치인이 설 자리는 비좁고 결과적으로 국민이 공감하는 정치를 보여주지 못한다. 거대 양당체제인 우리의 정치판에서 두는 가치 기준은 충성도이고 그런 환경에서 구성원의 소신은 자해행위가 될 뿐이다. 

살펴보았듯이 현재와 같은 거대 양당체제에서 참 정치인의 출현은 어렵다. 강력한 명령체계가 견고한 만큼 합리적인 질서가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헌법적 제약도 있는데 강력한 대통령책임제가 그것이다. 이 제도는 엽관(獵官)제를 관행으로 하고 있어 인적 구성의 다양성을 기하기 어려워 권력 집중의 규범을 만들게 되고 결과적으로 일인 중심의 권력 구도가 형성되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비민주적 상황을 빚게 된다.  

근간 정치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이야기가 나오고 관심을 가지는 국민들도 있다. 아직은 몇몇 소수 야당의 주장이라 그 향방을 두고 논쟁을 펼치기에는 이르지만 정치판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일단 관심을 둘 만하다. 스스로 민주시민이라 자처한다면 의미를 둘만한 과제가 되지 않을까? 우리 정치판은 변화가 요구되고 그것은 개혁이라는 표현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되어서다. 

(♣2018.12.12.)


장제모

*필자는 시흥3동에 거주하며

다양한 활동을 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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