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몸으로 애사심을 발휘하여 열심히 일한 죄의 대가 정리해고
쌍용정리해고 노동자들의 문화제가 매주 화요일 7시에 보신각에서 열린다. 시간이 닿는 대로 참가하고 있다. 격이 없는 문화의 향연이다. 그래서 원없이 웃기도 한다. 그때 00노조 지회장님이 옆으로 온다. 00지회는 정리해고 사업장으로 투쟁 중인 노조다.
"문 소장님 이것 좀 봐요 "하며 툭 고법 판결문을 내민다. 그러면서 친히 판결문의 결론 부분을 펼쳐주며 읽어 보라고 한다.
거기에는 ‘진실을 부정하고, 반성도 성찰도 없고, 단체협상을 회피하고, 나이, 성향, 가정환경, 사건의 동기, 경위, 범행 전후의 상황’을 보아 사용자에 유죄를 내린다고 하고 있다. 사용자의 살아온 환경이나 인성까지 질타하는 판결문은 참 시원했다.
요즘 보기 드믄 판결문이라 지회장님도 꽤나 통쾌해서 자랑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래도 천천히 전체를 살폈다. 그런데 쌍방 항소 판결문이었고 쌍방 기각된 사건이고 판결의 내용이었다. 즉 노동자 측, 거기서는 검사 측에서 한 항소도 기각한 것인데 그 내용을 살펴보니 또 그게 기가 막히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해고가 무조건 안 되는 경우를 인정한다. 하나는 출산 휴가 직후의 여성노동자, 다른 하나는 산재 및 산재 후 복귀 직후의 노동자들에게는 복직 후 최소 한 달 이내에는 해고가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 회사에서는 산재 중인 노동자가 회사의 요구로 치료를 하며 일을 했다. 요양 중이라도 일이 가능하다면 일을 하지 않으면 눈치를 받는다.
괜히 주변 동료에게 미안하고 이왕이면 회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했다. 산재 대신 공상으로 대체하는 노동자도 많다.
공상이란 산재로 올리지 않고 회사 안에서 사사로이 치료를 하는 것이다. 공상은 산재 발생을 은폐하고 후유증에 대한 보상을 막는다. 편법이다.
문제는 산재 요양 중인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자 명단에 들어 간 것이다. 근로기준법 상의 해고 불가 조항을 위반한 것이고 기특하게 검찰이 항소씩이나 한 것인데 증거불충분으로 기각한 것이다. 사람이 다치고 요양이 필요한 시간이 객관적인데 증거가 불충분하다니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한 것이라 정리해고 대상자가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판결이다. 자발적으로 공상 처리를 하고, 자발적으로 치료를 거부하고 일을 하려는 사람이 있을까? 법이란 상식의 최소한이고 사회적 통념 안에 있는 것인데 왜 세 살배기도 아는 상식을 법은 수용하지 않을까?
그렇다. 열심히 회사를 사랑하면, 근로기준법이 사라지고, 산재 요양이 사라지고, 법적 보호도 사라진다. 그리고 열심히 일한 결과가 해고만 부른다.
마치 싼 똥이 똥파리를 부르듯. 정리해고 승소 판결문도 좋지만 나는 열심히 일한 죄로 받지 않아도 되는 정리해고자가 된 그분들이 애달파 죽겠다. 열심히 일만 한 죄가 정말 죄란 말인가?
문재훈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상담문의 859-0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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