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폭염 주의보가 내렸던 8월이다. 날씨 못지않게 전국적으로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선  ‘NO 아베’ 일본 불매 운동도 뜨겁게 타올랐다. 그래서일까? 8월 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8월 15일 광복절은 여느 때보다 남다른 의미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방학이지만 ‘평화날개 기자단’도 바쁜 8월을 보냈다.  뜨거운 8월이 한차례 소나기로 한풀 꺾였던 지난 8월 12일 기자단은 강화도 답사를 떠났다. 강화평화전망대와 교동대 일대를 탐방하는 시간이었다. 강화도는 날이 좋으면 강 넘어 이북 땅이 한 눈에 잡힐 듯 아스라히 펼쳐지는 곳이다. 더구나 실향민들이 만든 대룡마을은 또 어떤가... 활자로만 보던 ‘통일’이라는 말을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바로 강화다. 소낙비가 오락가락하던 궂은 날씨에도 기자단은 강화답사를 무사히 마쳤다. 통일 이라는 말을 공기로 실감할 수 있는 강화 답사를 진행하며 기자단과 한 가지 작업을 진행했다. 자신이 느낀 강화를 사진으로 담아오는 작업이었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솔직한 후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 지면을 통해 기자단의 눈으로 본 강화를 사진과 글로 소개한다.  -8월 평화날개 신문을 내며-

 

  지난 8월 12일 월요일 금천구 청소년 평화의 날개 기자단은 강화도 제적봉 통일전망대를 다녀왔다. 
통일전망대에선 우리나라의 분단의 아픔과 통일을 위한 노력의 사진과 글이 제일 인상 깊게 남아 있었다. 1층, 2층, 3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우리는 3층 전망대에 올라가서 우리나라와 1.8km 거리에 떨어진 북한의 모습을 보았다, 아쉽게도 그날은 비가 오고 날씨가 흐려서 북한의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전시된 사진과 TV로 봤을 때는 날씨가 좋아서 북한의 모습이 잘 보였다. 
 분단으로 머나 먼 땅이 돼 버린 북한, 우리 눈앞에서는 가깝게 느껴지지만 철책선 때문에 가까우면서도 멀게 느껴졌다. 강사 선생님이 들어와서 북한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우리나라는 지금은 트랙터로 농사를 짓지만 북한은 1970, 80년대처럼 아직도 소달구지로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그런 다음 강혜승 선생님이 500원을 주셔서 망원경으로 북한의 모습을 조금 볼 수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 왔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웠다. 
  2층에는 전시관이 있었다. 전시관에서 기사를 쓰려고 사진을 각자 찍었다. 거기에는 안쓰러운 그림과 사진도 있었고 북한의 지폐도 있었다. 그리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북한말이 있었는데 우리나라의 사투리와 많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와서 이동하려는데 통일 염원소에 많은 엽서와 글이 있었고 나는 그 중에서 제일 좋은 말 한 가지를 골라서 찍었다. 뭐냐면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해하자 한 발짝, 두 발짝 다가갈게” 라는 말이었다. 그 전쟁 하나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죽고 고아가 많이 속출하고 배고픔에 굶주린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니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빨리 통일이 이루어졌으면 해서 이글을 골랐다, 그리고 입구에서 모두 모여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버스를 타고 밥을 먹으러 갔다. 
  맛있는 점심을 먹고 교동 대룡시장 안에 있는 오래된 교동 이발소로 갔다. 연세가 많으신 할아버지께서 대룡시장은 전쟁 후 실향민들이 모여서 만든 마을이라는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대룡시장을 한 바퀴 둘러보았는데 낡고 오래된 집, 가게들과 지금은 볼 수 없는 낡은 간판들이 많았다. 시장 중간 중간에 사람 모형, 제비집 모형 등 신기한 모형들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시장을 둘러보고 무려 100년이 넘은 교동초등학교도 가봤는데 학교 주변은 공사 중이라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학교보다 더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화도를 다녀와서 나는 통일이 꼭 이루어져야 되고 정말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전망대에 가서 북한 땅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정말 재미있기도 하고 난생 처음 보는 신기한 관경이어서 더욱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떠올랐었다. 빨리 통일이 돼서 이산가족들이 상봉하고 북한 땅도 가보고 싶다. 

 최예나/ 서울문교초 5학년 

 

기자단의 답사후기

 

박소은/ 서울두산초등학교 5학년 
강화도에 있는 통일 전망대에 갔다. 망원경 넘어 북한에 계신 분들을 어렴풋이라도 보니 북한이 생각보다 가까워서 신기했다. 북한이 강넘어 바로 앞에 있는데도 가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빨리 통일이 되어 북한에 갈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  

이윤수/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강화도는 내가 3번째 로 간 곳이다. 강화도에서 본 북한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고, 우리와 같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것 1.8km 길이지만 다른 이념으로 갈라진 것이 너무나 슬펐다. 통일이 돼서 모두 화목하게 지내는 그 날까지...

이주은/ 서울문백초등학교 5학년 
강화도가 우리나라 남한에서 북한을 제일 잘 볼  수 있는 곳이여서 더욱 더 안타깝고 슬펐던 것 같았다. 해설도 듣다보니 많은 느낌이 든 것 같았다. 그렇게 가까이 있는데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정말 답답했다. 무섭게 쳐져 있는 철조망이 마치 북한과 남한을 감시하는 걸림돌 같았다. 하루빨리 통일 되어서 남과 북이 만나는 첫 발자국이 강화도에서 이루어졌으면 한다.

이주호/ 서울문백초등학교 5학년
강화도 답사 중에서 인상적인 곳은 바로 38선이랑 북한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통일전망대이다. 그곳에 가보니 분단 현실이 아픔으로 다가와 마음이 숙연해졌다. 6.25 전쟁을 담은 사진과 대룡시장에 있는 교동 이발관이라는 곳에서 북한에 있다가 전쟁으로 한국으로 오신 할아버지 말씀도 들었다. 어서 빨리 평화통일을 이루어 북한에도 가보고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과도 만나 행복한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서윤/ 서울문교초등학교 5학년
 분단이 돼서 가장 슬픈 건 가족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라면 헤어진 가족들을 만날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것 같다. 돌아가는 버스에서는 거의 가만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에 철장들이 기분을 더 슬프게 하는 것 같았다. 강화도는 나에게 여러생각을 하게 해준 곳이다.

이채원/ 서울두산초등학교 5학년 
 우리 민족은 분단의 아픔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런 아픔을 함께 느끼기 위해 날개 기자단은 강화도에 갔다. 평화전망대에서는 우리가 직접 망원경으로 북한의 땅을 보아서 ‘아, 우리가 이렇게 가까이 살아도 만나지 못하구나.’라는 생각도 했고 최대한 이산가족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다음으로는 교동시장에 가서 교동이발관을 운영하시는 할아버지를 만나서 6.25전쟁을 실제로 겪은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생생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신기했다. 할아버지도 이발을 30년 정도 해 왔는데 지금까지 해 오셨듯이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꾸준히 건강도 챙기면서 일하셨으면 좋겠다. 이번 강화도 기행은 북한에 대해서 알아보고 분단에 아픔을 함께 느꼈기에 더욱 뜻깊고 의미있는 기행이였던 것 같다.

최윤영/ 서울두산초등학교 5학년 
강화도에 갔다. 강화도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섬이었다. 1.8km라는 좁은 거리를 건너가지 못한다는 게 답답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그리고 어쩌다 우리가 좁은 강 하나를 중심으로 갈라지는 사태까지 났는지 참 마음이 아팠다. 그래도 신기한 점은 우리나라 말과 북한 말이 다른 것이다. 북한 말의 특징은 보이는대로 이름을 부른다고 했다. 이런 점이 제일 인상 깊었다. 그리고 분명 같은 한글인데 외국어같이 들리는 게 어색했다. 어떻게 보니 이런 언어가 분단의 아픔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어서 통일이 되어 우리와 같은 말을 사용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노희재/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난 망원경으로 보는 북한이 아니라 직접 내 눈으로 보는 북한이 인상적이었다.  남한과 북한사이에 강 하나가 있는데 그 거리가 짧은 건 1.8km 밖에 차이가  안나는데도 대한민국과 북한이 66년째 통일을 하지 않는 것이 아쉬웠다, 그 거리면 보트타고 갈 수 있는 거리인데 대한민국에서 북한으로 건너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노희원/ 서울금나래초등학교 5학년
나는 북한과 남한의 언어차이가 제일 인상 깊었다.  강 하나인 1.8km때문에 북한과 남한의 언어가 다르다는 게 신기하다기 보다는 너무 안스럽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그리고 먼저 평화통일을 위해 한발짝 다가서려면 남과 북의 언어통일을 위해 반의 반걸음씩이라도 바꾸는 노력을 해야 한반도의 평화통일ᆞ한반도의 언어통일이 반드시 된다고 생각한다.

정원/ 서울금나래초등학교 6학년 
강화도 외진 시골마을에 위치한 대룡시장, 그곳에는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6.25 전쟁이 끝난 후 60여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의 마음은 고향을 떠난 그 순간에서 멈추어 있는 듯 싶었다.
 이산가족 정보 통합 시스템에 등록 된 2019년 7월 31일 기준 이산가족 생존자 수에 따르면 남은 생존자 수는 약 5만 4000여 명으로 초기 대비 40.6%에 불과하며 그중에서 70대 이상은 85.8%에 육박한다. 이는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전에 고향 땅을 밟고 싶다는 그 분들의 간절한 소망을, 그들의 삶에 대한 희망을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남은 우리들의 의무이자 도리이지 않을까?

권서현/ 서울두산초등학교 6학년 
 나는 전망대에서 본 북한의 모습과 대룡시장에 있는 교동 이발소가 인상 깊었다. 강화도는 북한과 1.8km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망원경으로 본 북한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모습과 별로 다른 것이 없어서 신기하기도 하고 가깝지만 가지 못해서 안타까웠다.  대룡시장은 실향민들이 만든 골목시장이었다. 그 곳에 있는 교동 이발소의 이발사는 탈북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셨지만 이발사는 한 가정의 가장이었기 때문에 가족을 생각하면서 일을 해 고난을 이겨내고 자수성가하게 되었다. 나는 이발사 할아버지가 멋졌다.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북한의 모습을 망원경 없이 볼 수 있고 실향민들의 그리움을 덜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장서윤/ 서울두산초등학교 6학년 
평화통일기자단 친구들, 선생님, 부모님과 강화도에 다녀왔었다. 강화제적봉평화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은 1.8km 밖에 되지않는 가까운 거리인데도 서로 문화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과 함께 북한말 맞추기 게임을 통해 북한의 언어를 배우는 시간도 갖었고, 교통이발관 이발사님의 안타까운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두번  다시는 이 땅에 이러한 가슴 아픈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통일을 위해 많이 기도할 것이다. 

임유빈/ 서울두산초등학교 6학년 
강화도는 북한과 가까운 곳이기 때문에 망원경을 통해 북한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북한을 보기 때문에 들뜬 기분도 들었지만 1.8km 정도밖에 차이 안 나는 곳에 직접 가지 못한다는 아쉬움도 있었다. 평화전망대에서 나와 우리는 대룡시장에 갔다. 대룡 시장은 남과 북이 분단 되었을 때 남겨진 실향민들이 만든 시장이라고 한다. 북한을 가까이나마 느낄 수 있는 곳에 와보게 되어 기분이 설레었다. 통일에 대한 관심이 몸으로 마음으로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았다. 통일도 이제..멀지 않았다는 신호 아닐까?

임예빈/ 서울두산초등학교 5학년 
강화도에 가서 대룡시장, 전망대, 박물관에 들렸다. 박물관에서는 북한과 우리나라의 차이점, 북한의 돈, 전쟁으로 인한 피해 사례 등을 배웠고, 대룡시장은 옛날 시장을 똑같이 재현해서 신기했다. 그중 대룡이발소에 가서 북한에서 이주해오신 할아버지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전망대에서는 바로 앞에 있는 북한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강화도에 있는 전망대가 제일 기억에 남았는데, 그 이유는 강화도에 있는 전망대가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나는 북한이 멀다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1.8km 앞에 있다는게 신기했고 지금은 바다 너머로만 봐야하지만 빨리 통일이 되어 직접 가보고 싶다

함상열/  서울문일중 2학년
  강화도는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1.8Km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넘어가지 못하고 전망대에서 보기만 해야 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점이었다. 우리 모두 같은 한국사람이고 이렇게 가깝게 있는데 분단국가라니 참으로 안타깝다. 분단이 안되었더라면 다같이 놀 수도 있는데 분단이 되는 바람에 이쪽으로 넘어온 사람들도 결국 다시는 저 땅을 밟지 못하게 되었다. 저기 보이는 북한 사람들도 우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면 좋겠고 통일문제가 빨리 해결이 나면 좋겠다. 통일문제도 해결이 나야지 우리는 강대국으로 성장을 할 수 있고 여러 이산가족 같은 문제도 해결이 되고 분단을 이겨내고 통일을 한 멋진 나라, 대한민국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나는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서 북한 땅을 밟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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