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이야기 201

 

아주 오래전, 동화 읽는 어른 모임을 시작할 때부터 옛이야기는 내게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옛이야기 분과에 들어가 공부를 할 때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 하임의 <옛이야기의 매력>을 읽고는 이런 세계가 있었나 많이 놀라고 내용을 곱씹게 되었다. 그동안에 늘 궁금했던 것, 옛이야기에는 왜 계모가 그렇게도 많이 나오고, 그들의 악행은 왜 이리 심한건지, 아이들의 심리는 어떤 건지 등에 대한 심리분석적인 내용에 놀라기도 했다.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옛이야기를 이론적으로 정리해주는 책을 접한 적이 없고 특히 우리 것과 외국의 것을 비교하거나 한꺼번에 설명해주지 않고, 외국의 옛이야기보다 우리 것이 훨씬 훌륭하다는 일방적인 논리에 약간 실망을 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김환희 선생님의 <옛이야기와 어린이책>이라는 책은 내게는 멋진 발견이었다. 거기에는 콩쥐팥쥐와 신데렐라를 같은 비중으로 두고 설명하고 있었고, 이와 같은 설화의 줄기는 각 나라에 많이 분포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우리 옛이야기의 원형을 소개하고 그림책으로 나온 원형에 충실한 것들을 소개했다. 그림은 아름답지만 이야기의 원형을 파괴하거나 의미를 염두에 두지 않는 그림책을 가감 없이 비판했다. 
세상에는 비슷한 이야기들이 돌아다니고 있고 절대 서로 소통이 되지 않았던 그 옛날부터 내려오던 이야기들이 어떤 경우는 아주 똑같은 이야기로 아직 숨 쉬고 있다는 이론적인 틀을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옛이야기를 공부할 때부터 답답하게만 느꼈던 것들이 해소되는 느낌이었다. 계모에게 구박을 받고 신을 잃어버리지만 삶을 현명하게 살아가며 행복을 찾는 주인공들... 조금씩은 다른 모습이었지만(어떤 면에서는 우리 주인공들이 훨씬 훌륭하다)또 비슷한 모습이기도 했다.
신입교육에서 옛이야기 강의를 준비하며 김환희 선생님의 다른 책 <옛이야기 공부법>을 만났다. 목 뒤의 염증을 떼는 수술을 하고나서는 책을 앉아서 보기가 힘들어 누워보게 되었는데 그러자니 팔이 아파 책 한 권 읽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린다. 좋아하는 소설책도 아닌 이 책을 누운 자리에서 다 읽어버렸다. 엄청나게 재미있어서? 아니다. 옛이야기에 매료된 사람들은 재미있게 읽겠지만 학자인 작가의 글투와 내용은 아무래도 학술적이다. 옛이야기를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의 성격인 이 책은 작가가 매료되었던 <구렁덩덩 신선비>를 중심에 두고 갖가지 해설을 해준다. 
다소 학술적인 내용이 나온 뒤에는 작가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나는 그 부분을 읽고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학자이긴 하지만 ‘교수’의 이름을 걸지는 못한 작가의 개인 이야기가 나온다. 사실은 굉장히 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비교문학을 공부하며 자신의 재능을 감지하고 아주 열심히 공부하며 대학에 적을 두고자 했던 그 결의는 번번이 무너졌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에게,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자신의 모습은 늘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었다.
나는 이 감정을 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남편이 강사생활을 오래 했고 그동안에 펼쳐졌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가며 그 좌절감과, 이미 자리를 잡은 이들이 요구했던 부당했던 내용들이 다시 떠올랐다. 작가의 담담하면서도 빈틈없는 문장은 내 마음을 울리고 말았다. 
강의 준비를 하면서 선생님께 몇 가지 여쭈어봤던 터라 새벽 한시라는 것조차 인지도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보냈다. 공부를 하고 있었다며 주신 답장은 “옛이야기가 지닌 치유의 힘을 알 수 있어서 공부가 즐거웠어요.” 였다. 
열심히 공부했는데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다친 마음은 옛이야기의 숲에 들어가면서부터 조금씩 치유되었다고 한다. 아기장수와 콩쥐, 바리공주와 신선비의 색시 들을 만나면서 아무런 조건도 보상도 없이 이야기만을 남기고 사라져간 이야기꾼들에 대해 감탄한다. 그 이야기들은 탄탄한 서사의 구성을 가지고 있고 폭넓은 세계관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 
작가의 아들이 ‘상문고 사태’로 비리로 얼룩진 재단에 반대하는 시위에 앞장섰을 때에도 작가는 아기장수의 부모를 생각했다. 아기장수의 부모들 특히나 어머니들은 대부분 아기장수를 죽게 만들고 위험에 빠트린다. 작가는 이것이 세상을 바꿀 인물이 나왔을 때, 혹은 인간들의 삶이 도탄에 빠졌을 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으로 이해했다. 아기장수의 어머니의 행동이 작가에게는 반면교사였던 것이다. 결국은 두려움은 가득 안고 있었지만 부모들도 아이들 편에 서서 비리재단을 물리치는데 함께 했다고 한다. 
깊은 공부를 하지도 않았는데 옛이야기는 나를 늪에 빠지게도 했다. 내가 좋아하던 신화인 <오늘이>에 나오는 내용이 외국의 <황금머리카락>이라는 이야기와 거의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이것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구렁덩덩신선비의 기원이 인도설화라는 것을 어디선가 본 듯 해서 선생님께 전화로 말씀드렸을 때 선생님은 “아니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라고 하셨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옛이야기는 단정적으로 확신을 갖고 말할 수가 없다. 것이 옛이야기의 주요한 매력이기도 하다. 
옛이야기의 숲은 깊고 넓다. 그것은 우리의 심신을 위로해주는 작은 샘물 같기도 하지만 삶에서 겪는 깊은 고뇌에서 우리를 끌어올리기도 하는 진정 헤아릴 수도, 알 수도 없는 숲이다. 손을 잡고 함께 가보는 것이 어떨지... 

 

김환희 지음 / 창비 출판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민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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