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책이야기 203

 

『트리갭의 샘물』은 ‘영생’을 주제로 한 우리나라 단편동화집을 읽다 추천받은 책이었어요.
그날 참 신기한 게, 같은 책을 여러 명이 읽었는데, 다 비슷한 느낌을 받았더라구요.
‘뭔가 부족해. 아이들이라고 이만큼만 쓴 걸까? 이 주제가 짧은 에피소드 같은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일까?’ 이런 이야기들 말이에요. 작가들이 더 고민하고, 한발 더 나아가 ‘영생’이라는 주제를 풀어주면 좋았겠다는 아쉬운 마음을 풀어놓으며 답답해하고 있을 때였어요. 
“‘영생’을 주제로 한 책은 『트리갭의 샘물』을 읽어봐요!”
라고 한 분이 자신 있게 추천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다이어리 한쪽에 크게 별표 쳐가며 ‘꼭 읽기!’ 해놨지만, 인연이 없었는지 읽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다 며칠 전 글은 써야 겠는데, 아무리 뒤져봐도 ‘글로 쓰고 싶은 책’이 없는 거예요. 그림책도 뒤적여봤고, 소설책도 뒤적여봤고, 실용서까지도 뒤적여 봤지만 마음에 오는 책이 그날따라 없었어요. 터벅터벅 도서관에 갔고, 그때 마침 반납된 『트리갭의 샘물』을 본 거예요. 어찌나 반갑던지요. ‘아! 이거 봐야겠다!’ 하고 얼른 빌려왔답니다.
그리고 오가는 버스 안에서 읽었죠. 생각보다 금방 읽었어요. 동화 같기도 하고, 옛이야기 같기도 한 분위기의 이 책을 아주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반갑게, 기쁘게 읽었어요. 읽으면서 알았거든요. 이 책은 ‘좋은 책’이라는 걸 말이에요. 제게 ‘좋은 책’이란 읽고 나면 마음에 무언가가 남는 책인데, 남는 게 뭔지 명확한 책이에요. ‘뭘 남겨야 하지?’하고 고민할 여지를 주는 건 제 기준에서는 좋은 책이 아니에요.
『트리갭의 샘물』 의 줄거리는 간단해요. 한 숲에 사는 한 가족, 그 가족은 샘물을 먹고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는 가족이에요. 아주 나이도 많죠. 아무도 모르게 숨어 살고 있어요. 그리고 그 숲 소유주의 딸인 어린 아이, 어느 날 이 아이와 그 가족이 만나게 되요. 그리고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죠. 늙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가족들끼리만 숨듯 살아가야 하는 삶을 이어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말이에요. 가족은 여자 아이에게는 절.대.로 그 샘물을 먹지 말라고 하죠. 불행을 가져올 수도 있다면서요. 나중에 여자 아이는 샘물을 먹고 영생을 얻을 수 있었지만, 친구인 두꺼비에게 부어 버려요. 그리고 나중에 이 가족이 이 마을에 왔을 때 이미 여자 아이는 죽고 없죠. 샘물도 사라져 버렸구요.
이 책은 끊임없이 ‘영생’이라는 것이 행복한 삶이 될 수 없다며 가족의 입을 통해, 여자 아이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흘러가는 시간을 사는 사람들 속에서 정지된 시간을 사는 사람들은 정상으로 보이지 않잖아요. 다들 나이를 먹는데, 이 가족은 늘 그대로였어요. 그러다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느낄 때쯤 떠나는 거예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그래서 또 몇 년을 살다, 또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느낄 때쯤 또다시 떠나야 하는 거예요. 도망치듯이 말이에요. 결혼을 해도 행복할 수 없고, 모두가 늙어가고 죽어가는 가운데, 이 가족만 그대로인 거예요. 예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말이에요. 
그래도 읽으면서 다행이다 싶은 건 가족이 다 영생을 얻었다는 거예요. 혼자라면 너무 외로웠을 텐데, 가족 4명이 다 영생을 얻었으니 서로 의지하며 나누며 그래도 살아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가도 그래서 가족에게 영생을 준 거겠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문득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의 생각이 궁금해 졌어요. 
“아들,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아?”
“싫어. 아픈데 죽지도 못하고 계속 살면 뭐해?”
“음... 아프지도 않고 영원히 산다면 어때?”
“싫어. 늙어서 계속 사는 건 싫어.” 

 

“그럼, 지금 모습 그대로 멈춰서 아프지도 않고 늙지도 않고 계속 사는 건 어때?”
“싫어. 가족들이 나보다 먼저 죽을 거잖아. 그러니까 난 영원히 사는 거 아주아주 싫어.”
『트리갭의 샘물』에서 작가가 하려던 말을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나 봐요. 아이의 마지막 말이 작가가 하려던 말이었고, 제가 마음에 남겼던 말이었거든요. 사랑하는 사람들이 먼저 죽는 걸 보는 게 얼마나 괴로운 건지 아이는 그 짧은 상상만으로 이미 알고 있었나봐요.  
작가는 그래서 가족 모두에게 영생을 주었나 봐요. ‘행복하지 않은 영생이지만 그래도 옆에 함께 할 가족이 있으면 받아들이고 살 수 있다’ 고 말이에요. 동화니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이 결말이 저는 마음에 들었어요. 우리는 어떤 현실에서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잖아요. 앞으로도 사람들은 영생을 꿈꾸겠죠?  
하지만 3학년 아이도 영생이 행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는 걸 보면, ‘영생’은 말 그대로 언제까지나 사람들의 ‘꿈’으로만 남을 것 같네요. .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활동가  안해나

 

 

나탈리 배비트 / 대교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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