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자니아통신 시즌2>

 

담장 없는 파란색 박공지붕 집의 현관문을 열고 그녀가 나온다. 화려한 문양이 수놓인 빨강 드레스를 입고, 함박꽃보다 더 커다란 웃음을 피우며. 앞치마를 입고 일에 열중할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사교계의 여왕 같다.
그녀가 내놓은 사진첩 속의 흑백 결혼식 사진. 자그마한 키에 가녀린 몸매를 하고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다. 지금의 풍만하고 당당한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순백의 드레스 속에 자신감을 꽁꽁 여며 놓았으리라. 
그녀 옆에는 키가 크고 늘씬한 신사가 자릴 지킨다. 직업학교를 다니면서 만났다는 그들은 서로의 유일한 사랑이었다고 했다. 남편을 5년 전에 먼저 보냈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단다. 인터뷰 중에 들어온 청년, 프랭크는 그녀와 함께 살며 대학에 다니고 있는 막내아들이다. 그가 사별한 남편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했다. 프랭크 속에 숨어있는 그녀의 남편을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아 보인다. 말수가 적고, 부드러운 성품에, 성실했을 그의 모습을. 
내가 페트리시아를 처음 본 건, 아니, 그녀를 처음 인식한 건, 실크스크린 교육 날이다.   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수업이 끝날 무렵, 식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때마침 교육의 결과물로 앞치마가 나왔고, 내가 속한 조직의 로고를 실크스크린을 이용해 프린트했던 것이다. 조직 홍보도 하고 교육생들에게 결과물의 효과도 바로 볼 수 있게 하기위해 로고가 찍힌 앞치마를 그녀에게 입게 하며 그녀를 기억하게 된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꽤 오래 살았지만 특별한 인연이나 사건이 없으면, 여전히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기억이 안 되는 탓이다. 
조금 식상한 질문이긴 했지만,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물었다. 예상한 대로 결혼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가 우리 조직을 만나 소액대출을 통해 사업 기회를 얻은 것이란다. 그라민 은행을 롤모델로 한, 여성의 자립을 목적으로 우리나라 돈 20만원에서 100만원 한도로 무담보·저금리로 융자를 해주는 프로젝트이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구멍가게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돈으로 무슨 사업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신의 집에서 물건 몇 가지를 놓고 시작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6개월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업을 잘만 꾸리면 빌린 돈은 자본이 되고, 또다시 대출을 일으켜 물건의 가짓수를 늘리며 사업을 조금씩 키울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가 음식배달 서비스로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을 꼽는다. 우리는 많은 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고, 교육이 끝난 후 점심을 제공한다. 
배달 업자는 소액대출로 사업을 시작한 사람 중에서 요리 솜씨가 좋은 사람들을 골라 기회를 주기 때문에 그녀에게도 기회가 온 것이다.
 그녀의 요리 솜씨는 단연 으뜸이어서 그녀에게 자주 기회가 돌아가고, 수입이 늘며 살림이 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내가 사업장을 방문한 날은 특별히 내 식판에 고기를 듬뿍 넣어주곤 한다. 그녀와 인터뷰를 하며 생각해 본다. 자신도 미처 몰랐던 사업가 기질이 싹틔워질 적절한 토양이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라고.
딸 하나에 아들이 셋. 첫째 딸 빌리지니어는 그녀와 가까이 살면서 손주들의 재롱을 선물한다. 큰 아들은 다르에스살람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밑에 두 아들은 그녀의 곁을 지키며 바쁠 때는 일손이 되어준다. 남편을 일찍 여윈 걸 빼면 복 많은 중년여성이다. 50대 초반의 그녀. 아직 젊고 에너지 가득한 그녀에게 제2의 인생이 활짝 열려, 그 어느 시절보다 힘찬 날개 짓으로 비상하길 기대하는 건 나만의 욕심일까?  

 

탄자니아에서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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