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평화의소녀상을 만들게 된 계기가 무엇인지요?
2015년 12월 박근혜 전대통령이 일본과 한일위안부협정을 국민들과 소통 없이 비밀리에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존해 계신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견을 듣지도 않아 할머니들의 미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할머니들은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금천구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금천 구민 모두가 힘을 모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해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2. 왜 금천구청 앞에 설치됐나요?
평화의 소녀상 위치 선정 역시 금천구민들의 소중한 의견을 모아 진행하였습니다. 후보지가 몇 군데 있었고 과연 구민들의 의견은 어떠할 지 모아보자라는 생각에 2017년 4월 벚꽃하모니축제 때 소녀상을 금천구 어디에 설치하면 좋을 지 축제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직접 물었습니다. 후보지는 금천구청 입구, 금천구청 국기게양대, 금나래공원 세 곳이었는데, 스티커 붙이기를 통해 선정했습니다. 가장 많은 의견이 모아졌던 장소가 지금의 금천구청 앞입니다. 

3.  힘든 점이 있었다면?
소녀상을 금천구 구민들의 모금을 통해 세우려면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거리모금, 학교 및 여러 기관에 소녀상 기금마련 저금통을 나눠주었고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 모금에 동참해 달라고 했습니다. 보람있고 가치있는 활동이었지만 소녀상을 세우기 위해 돈을 모금하는 것이힘들었습니다 . 하지만 어린 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십시일반 마음을 모아 결국 소녀상 건립 기금을 마련했을 때는 가슴 벅찬 감동이 컸습니다.

4. 제작까지 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들었나요?
음~ 2016년 9월부터 소녀상 건립에 뜻을 모은 분들과 준비위원회를 만들었고 그해 12월10일 소녀상건립을 위한 추진위원회를 발족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8월15일 제막식을 했으니 약 1년의 시간이 걸린 것 같습니다. 비용은 얼마가 들었을까요? 기자단 여러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순수하게 소녀상 조형물의 제작비용은 세금포함 3천5백만원입니다. 또한 소녀상 건립을 위한 운영비와 제막식비용 등은 나눠드린 소녀상건립백서를 참고바랍니다.

5. 평화의 소녀상이 만들어진 후, 마음이 어땠나요?
우리 금천구민들의 손으로 소녀상을 세웠다는 뿌듯한 마음이었습니다. 구청 앞을 지날 때마다. 금천구에도 소녀상이 있다는 자부심과 함께 소녀상을 세울 수 있도록 함께해준 많은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느낍니다. 금천구민 모두가 함께 소녀상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6. 왜 나비가 함께 있나요?
나비는 미래를 의미합니다. 금천의 소녀상 왼손에 들고 있는 번데기는 나비가 되기 이전의 과거를 말합니다. 즉 상처받은 과거의 영혼을 떨쳐내고 아름다운 나비로 승화해 새로운 미래의 삶을 당당히 살아가기를 바란다는 뜻도 담고 있습니다.

7. 소녀상 옆에 빈 의자는 무엇을 뜻하는지요?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앉아 있는 소녀상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소녀상의 빈 의자는 소녀의 상처를 위로하며 친구가 돼 주겠다는 의미이지 않을까요.

8.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분들은 위안부 합의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나요?
할머니들은 위안부 합의에 대해 정부의 잘못이라고 강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왜 당사자인 우리에게 의견을 물어보지 않았냐고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위안부할머니들은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기를 원합니다. 이제 생존해 계신 분들이 점점 연로해지고 있습니다. 살아 계실 동안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도록 현 정부가 노력해야 합니다.

9. 일본으로부터 피해보상과 진실된 사과를 받기위해 만든 것인데 실제로 긍정적인 효과가 있었요?
소녀상 건립 그 자체가 일본에게 많은 부담과 위압감을 주고 있습니다. 소녀상은 일제강점기 일본에게 빼앗긴 소녀의 삶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위안부의 역사를 부정하고 있지만 소녀상이 세워짐으로써 본인들의 추악한 과거를 덮을 수 없기에 일본대관 앞에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은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고 하루라도 빨리 위안부 할머님들께 사죄하기를 바랍니다. 

10. 어떤 사람들은 “소녀상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는데 왜 이런 주장을 한다고 보는지?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왜 과거를 들추어 내어 힘들게 하냐?라고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경제가 힘들어진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없는 현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소녀상을 철거한다고 과거의 역사가 사라질까요. 지난 역사를 통해 잘못된 것을 되풀이해선 안된다는 교훈을 얻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은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철거를 요청하는 분들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부끄럽지 않냐고 되묻고 싶습니다.  

11. 관련해 하고 싶은 일?
일본으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기위한 운동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지지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평화의 중요성을 알리는 운동도 금천구민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12.  사람들이 소녀상을 어떻게 기억했으면 좋겠나요? 
전쟁의 상처를 씻어내고 평화로운 미래를 상징하는 소녀상으로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평화통일신문 날개 
공동취재기자단

 

어느 덧 기자단 수업도 후반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동안 계절은 가을로 바뀌었고 태풍 소식이 잇따라 전해졌고 가을 장마가 계속 됐다. 태풍 ‘링링’으로 우리의 수업도 한차례 미뤄져 추석 전 예정됐던 수업이었으나 추석을 보내고 진행됐다.  이번 수업은 지난 시간의 연장선이었다. 지난 시간 광복절을 맞아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에 대해 짚어보고 금천구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알아봤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시간에는 기자단 학생들이 직접 관계자를 모시고 금천구 평화의 소녀상에 대해 인터뷰 취재를 해봤다.  이 시간을 위해 금천구 평화의 소녀상 건립을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발로 뛴 두 분, 강혜승 금천평화의소녀상 건립추진위원장과 조정옥 공동대표가 함께 참여해 주셨다.   기자란 무릇 ‘잘 물어서 제대로(정확히) 전달하는’ 사람이다. 독자들의 궁금증을 대신 해소해주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핵심을 제대로 알고 질문해야하고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이날은 학생 모두가 참여해 이름하여  ‘평화통일신문 날개 공동취재기자단’을 꾸렸다. 직접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촬영했으며 인터뷰도 진행했다. 이 시간을 위해 학생들은 사전에 질문을 준비해 왔다.
첫 인터뷰였으나 평화통일신문 날개 기자단의 몇몇 질문은 훌륭했다. 물론 중복된 질문도 많았지만 기성 기자단 못지 않은 의미있는 질문들로 두 명의 인터뷰이를 흐뭇하게 했다는 후문. 좋은 인터뷰의 많은 조건 중 하나는 인터뷰 대상자에 대한 ‘집중’이다. 다소 긴 시간 이뤄진 인터뷰였지만 분위기는 진지했다. 이번 지면은 이날 인터뷰 내용을 중심으로 꾸렸다. 학생들은 어른들의 짐작보다 훨씬 생각이 깊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더 인상적이었던 시간었다. 참여한 한 학생의 말처럼 이번 기회를 통해 금천구 평화의 소녀상에 좀더 많은 관심과 성원이 이어지길 바란다.   -9월 신문을 내며-

■ 금천 평화의 소녀상 건립까지 2016년 10월 금천 평화의 소녀상 건립 제안과 준비위원회 결성 12월건립추진위원회 발족 2017년 1월 작가선정 및 소녀상제작위원회 구성 거리모금 등 각종 모금활동 추진 3월 소녀상제작 배철호 조각가 선정 6월 소녀상 제작과정 주민 설명회 7월 금천구청 건립 부지 조성 작업 8월 금천 평화의 소녀상 건립 * 거리모금 등 다양한 모금활동을 통해 총 61,809,155원 모금 ■ 전국 평화의 소녀상은 어디 있을까?전국에는 얼마나 많은 소녀상이 세워져 있을까? 한눈에 알 수 있는 평화의 소녀상 지도가 있다. 평화의 소녀상의 모습은 지역마다 다 다르다. 인터넷에 ‘전국 소녀상 지도’를 검색해서 들어가면 쉽게 전국 각 지역의 소녀상 위치와 모습까지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평화의 소녀상은 1997년 8월 14일 경기도 광주시 나눔의 집에처음 건립돼 2019년 9월 8일 현재까지 전국 125개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금천 평화의 소녀상 건립추진위원회 조정옥 공동대표와 강혜승 추진위원장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