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가 들려주는 책이야기

백승남  지음 / 한겨레 틴틴  출판   루케미아 루미                      



제목을 처음 봤을 때 이름이 참 리드미컬하다, 예쁘다 싶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을 읽어보니 그것은 ‘백혈병’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백혈병이라면 티비에서 머리를 민 아이들이 마스크를 쓰고 슬픈 눈을 하거나 오히려 밝게 웃음짓는 그런 것만 상상할 수 있는 무식스러운 내 수준에 루케미아 라는 병명은 생소하고 그러기 때문에 죽음의 냄새는 전혀 맡을 수 없었습니다.

루미는 이 책에 나오는 백혈병에 걸린 여자 아이 이름입니다. 황루미. 엄마가 일본 만화를 좋아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합니다.  루미는 재생불량성빈혈에 시달리는 ‘강’이가 관찰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책에서는 강이가 주인공이기도 하고 루미가 중요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는 그들이 왜 함께 주인공 역할을 했을까 하는 의문이 어느 정도 풀어지기도 했습니다. 루미는 강이보다 더 가벼운 증세로 시작했지만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습니다.
강이는 루미가 까탈스럽게 굴 때 미운 생각도 들지만 루미를 데리고 병원을 나와 스파게티를 먹으러 가기도 하고 두루미라고 놀리는 친구들이 밉다는 루미에게 우리 몸 속의 루미솜과 루미놀에 대해 이야기 해 줍니다.
루미는 머리가 둘 달린 쌍학을 강이에게 배우기 직전에 죽고 맙니다. 루미는 흙으로 새를 만들고 학 접기를 잘하고 하늘을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머리가 둘 달린 쌍학의 전설은 우리에게 뭔가를 암시하는 듯 합니다. 오빠가 동생을 지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루미가 죽고 루미 엄마, 강이, 강이 엄마는 모두 루미를 느낍니다. 잠시 보인 루미의 모습은 날개가 하얀 새의 모습과 겹치고, 강이는 병이 재발했다는 통보를 받고 괴로워합니다.
방황하던 강이는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루미에게 오빠를 지켜 봐달라고 말하는데 하늘 높이 날아가는 눈부신 새 한 마리를 봅니다.

강이는 루미에게 오빠로서 또 병의 선배로 여러 가지 도움을 주었지만 떠난 루미의 죽음을 인정함으로써 루미에게 다시 힘을 얻습니다. 죽음과 삶의 경계에 있는 이들은 이렇게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나 봅니다.
작가의 <늑대왕 핫산>에서도 아빠의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루케미아 루미>에서도 우리가 죽음을 삶의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 단지 살아있는 우리를 위로하고자 함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떠난 이를 더 가슴 깊이 간직해두는 일이기도 하기에 “잘 가..” 라고 말하는 것이 어렵지만 필요한 일인 것입니다.

작가는 금천구에서 함께 동화 공부를 했던 이입니다. 제목에 강이를 쓰지 않고 작가의 아들이름인 ‘완이’를 쓴 것은 완이가 겪은 일이 단지 가슴 아파서라기 보다는 앞으로 겪을 일이 조금 더 아픔을 주더라도 ‘우리가 응원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합니다.
이런 소극적이고 작은 응원이 완이의 역경에 어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완이가 참된 삶의 의미를 먼저 알게 된 소중한 경험을 계속 나누며 열심히 살아가리라 믿어봅니다. (초등 6학년부터)


'은행이가 들려주는 책이야기 '는 은행나무 어린이 도서관의 동화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책을 읽고 올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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