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

일터에서 돌아온 아버지 작업복에
하얗게 핀 소금꽃
바닷물을 말리면 생기는 소금이
아버지 작업복에 수북하다
몸을 말려 소금을 만들어 낸 아버지는
바닷물
공사장 뙤약볕 아래
오늘도 종일 출렁거렸을
아버지


  인터뷰를 위해 시인의 집으로 가는 길. 가면서 시인이 사는 집은 어떨까 상상해봤다. 들어서자마자 오래된 책 냄새가 집 안을 채우고, 원목으로 만든 책상 위에는 깎인 연필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을거야, 폭신한 양탄자와 고풍스런 음악이 기다리고 있겠지, 창너머로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의 휴식을 들여다볼 수 있을 테지.

  호암산 자락과 편도 1차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선 작은 아파트. 그 안에 곽해룡 시인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상상하던 책냄새·원목책상 같은 것은 없다. 그저 소박한 생활인으로서의 흔적이 있을 뿐이었다. 유달리 깔끔한 마룻바닥도 시인의 아내가 쓸고 닦은 것이라 했다.
  부엌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벽 액자에는 시인이 사랑하는 아내와 딸이 활짝 웃음을 짓고 있었다. 집 앞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 딸아이는 아빠가 인터뷰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학교에서 일찍 돌아오고 싶다고 했단다. “만날 수 있을까 모르겠다”는 아빠의 말에서 딸아이에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늦깍이 시인

  곽해룡 시인은 늦깍이 시인이다. 그는 동시로 생각의 깊이를 드러낸다. 눈높이문학상, 푸른 문학상 등을 받았지만 당선된 후에도 3년 동안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도현 시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날이 만우절이라서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단다.
 
  그런데 확인해 보니 정말 안도현 시인이었다.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몇 명의 동시작품을 묶은 책을 발간하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숨이 막혔다. 드디어 첫 시집이 나올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책을 내려면 현재 써 온 동시 33편의 두 배 정도 되는 분량이 필요했다.
  그때부터 그는 “신들린듯이” 시를 써내려갔다. 그 당시를 회고하며 “그 때는 내 능력 이상의 상상력이 발휘되었다.”고 회상하였다.
  사실, 곽 시인에게 시를 쓸 수 있는 능력이 어느 날 뚝딱 찾아온 것이 아니다.  어려서 억압하는 부모에게 말 할 수 없어 생각했고 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고향을 등지고 상경해 마찌꼬바에서 일하면서 일 년 동안 밀린 월급을 겨우 ‘쟁취하고’ 나왔다.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 한 학력이라 구로공단에서 일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동료의 이름을 대고 옛날 코카콜라 뒤에 있는 대신양행에서 일했다. 중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넘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 성적이 컷트라인 60점을 겨우 넘은 60.2점”이었다며 “오히려 남다른 이력으로 그 덕을 본다.”고 웃었다.

시는 깊은 사유의 산물

  곽 시인은 독서보다 생각을 많이 한다. 책을 읽을 때, 저자의 생각을 따져보고 자신의 생각과 부딪치면 저자가 되어 처음부터 다시 내용을 구성한다. 그는 그것을 사유라 했다.

  “사물과 나를 동급으로 가져가야 사물의 이면을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지렁이를 볼 때, 징그럽다면 자신의 입장만 생각한거고, 불쌍하다면 내가 저 지렁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입장이 깔려있는 것이다. 나와 지렁이를 동일시한다면 빗물 때문에 숨이 막혀 밖으로 나왔는데 온통 아스팔트 투성이어서 들어갈 곳 없는 지렁이의 입장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을 것이다”며 “다만, 개그맨이 웃지 않고, 슬픈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울지 않듯이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그려내야 공감을 받을 수 있다.”며 일러주었다.

인간미 살아있는 동네

  금천구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다. 열 여덟 살 때부터 그를 알고 있는 동네이기 때문이다. 태어난 고향 해남은 개발 붐으로 바다를 막았다. 그는 바다 없는 고향에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서울에서 가장 시골스러운 동네가 이곳이다. 내 정서에 맞다. ”며 좋아했다.
  "시골출신 친구들과 동네 근처에서 해장국 한 그릇에 소주를 마셨는데, 소주 다섯 병을 비우도록 주인분이 암말 않고 해장국을 계속 채워주더라. 요즘 어디 가서 그런 인간미를 느낄 수 있겠는가? 같이 온 친구가 감동 받고 자신이 쓴 책을 주인아줌마에게 선물해 준 적도 있다.”며 그 때 친구들 앞에서 뿌듯했다고 했다.

정직한 노동이 정직한 글을 낳는다

  그는 현재 시인으로서 휴식중이다. 을지로에 있는 ‘산업프로파일’관련 매장에서 견적내고  판매하는 일에 온전히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10년 동안 노동현장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몸이 나태해지고 정직한 생각이 나오지 않아 일을 찾았는데, 나이가 많아서 을지로까지 가게 되었다.” 며 “부품을 맞추는 일과 언어를 짜 맞추는 일이 같아 적성에 맞고, 꿈에서까지 그 일을 한다”고 했다. 한편 시인으로서는 “자신의 작품이 한 경향에 머물지 않고 다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도록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중이다.”고 얘기했다.

  ‘정직한 노동에서 정직한 마음이 우러나온다’는 사실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시인 곽해룡. 지난달에는 17세 때의 노동 이야기를 써서 전태일문학상을 받았다. 노동의 소중함을 알고 사물의 본질을 동시로 그려내려는 시인이 금천구에 오랫동안 살고 있다는 사실이 사뭇 자랑스럽다.


김수진 기자
gc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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