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째 근육병 투병, 대학가고 싶은 고등학생


수능이 끝났다.
해마다 문제가 쉽게 출제 됐다고 하지만 당사자들은 늘 어려운게 수능 시험이다. 수능때면 의례 장애인 수험생이 어떤 병원에서 시험을 보는 장면이 나오곤 한다. 하지만 우리 금천구는 이런 기사가 나오기는 어려울 것 같다.
 금천구의 장애인특수학급의 경우는 뇌병변장애, 발달장애와 자폐, 그리고 근육병 등의  지체장애학생들이 장애 특성의 구분없이 똑같은  내용을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수능을 하루 앞두고, 독산3동 '책읽는 고양이'북카페에서 근육병을 앓고 있는 최진호(독산고2)학생과 어머니 임복순씨를 만났다.
진호군은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근육병이 발병해 올해로 11년째 투병중이다. 열두살까지는 휠체어에 의존하지 않고 걸을 수 있었으나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는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다. 현재 마비가 진행 중이며, 혼자 생활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화장실 걱정에 아침은 굶어
 진호가 앓고 있는 병은 근육에서 영양이 빠져 단백질 형성 안되면서 근육이 더욱 쇠약해지는 증상이다. 그래서 성격이 활달한 진호라도 아침은 안 먹는다. 학교에서 화장실 가는 게 부담이고 다른 사람 손을 빌리는게 어려워서 스스로 먹는 것을 줄였다. 엉덩이에 살이 없어 버티기도 힘들고 체력이 약하다 보니 5교시 까지만 수업을 듣고 집에 온다.
진호는 장애인 특수학급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 불만이다. 초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주입식으로 듣다 보니 재미가 없다. 현재 독산고에는 장애인 특수학급에 12명의 학생이 있는데, 진호와 같은 근육병을 앓고 있는 친구는 모두 세 명뿐이고, 나머지는 자폐, 뇌병변장애, 발달장애를 앓고 있다.
1학년 때에는 근육병을 앓고 있는 친구들이 별도로 수업을 받아서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본인이 감기라도 걸려서 아프거나, 부모님이 허리병을 앓기라도 하면 학교에 결석을 자주 할 수 밖에 없고, 상황이 그렇다 보니 교사 입장에서 진도를 맞추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2학년부터는 장애 구분 없이 똑같은 수업을 받게 된 것이다.

장애인 편의시설 턱없이 부족”

  어머니 임복순 씨는 진호를 학교에 보내고 남문시장에서 오전에만 3시간동안 아르바이트를 한다. 직장과 가정 일로 무척이나 힘이 들텐데도 임복순씨는 늘 씩씩하다.  인터뷰 중에도 복순씨의 말은 멈출지 모른다.
  “독산동 구립도서관은 경사로가 있어서 휠체어로 도서관까지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실내에 계단이 있어서 지체장애인이 이용할 수가 없는 구조예요. 경사로를 만들어 놓지나 말지...” 복순씨는 금천구에 지체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토로한다.
  “진호가 일주일에 한번씩 도곡동에 있는 병원에 다니는데 우리지역은 보도블럭에 턱이 많아 전동휠체어로 다니기가 어렵고 비탈길도 많아서 위험한데, 도곡동은 도로가 아주 잘 되어있더라구요. 진호가 도곡동에서 살고 싶다고 해서 참 가슴이 아팠어요.”엄마의 바람은 지극히 평범하고 사소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가 제일 걱정이에요. 여유 있는 집이야 가끔 외출도 할텐데,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아이가 집지키는 강아지 꼴이 될 것 같아요." 다행히 진호는 어디든지 나가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는 가까운 금천구에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보건소에 근육병 또래를 알려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사생활 정보이기 때문에 알려주지 않아 알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멀리 서울대병원에 있는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시간이 부족해요” 
  진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시간'이었다. 근육병이 더 심해지면 마비가 오고 호흡까지 곤란해질 수 있어 지금 이 시간들이 아깝고 너무 부족하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진호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대학공부도 해야 하고, 대학에 입학하면 취업준비를 해야 하고, 취업하면 금세 나이가 40이 되니, 시간이 너무 없다”고 담담히 말한다.
  대학생 누나와 약속한 '홍콩여행'도 가고 싶은데 방학 때 함께 떠나자고 한 약속을 지키기엔 너무도 먼 길인 듯 하다. 누나의 힘만으로는 현실이 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사람이 떠나는 여행이 아닌 엄마와 셋이서 떠나는 여행을 가려고한다. 복순씨는 일하느라 시간내기 힘들어 항상 생각만 했지만 알바가 없는 1,2월에 1박2일로 제주도라도 꼭 함께 떠나고 싶다고 웃으며 말한다.
  진호는 그림그리기도 좋아한다. 손에 힘이 많이 빠져서 그림그리기도 쉽지 않지만 연필로 그림을 따라 그리는게 재미있다. 또래의 다른 친구들처럼 자기실력으로 보란듯이 대학도 가고 싶고, 포토샵도 배우고, 컴퓨터그래픽도 하고 싶고, 멀티미디어 관련 일을 하고 싶다.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무엇을 먼저 할지 고민중이란다.

소망이 무엇인가?
  진호에게 소망이 무엇인지 물었다. 진호는 학교에서 당했던 일을 떠올린다.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체력이 약하다 보니 한가지 일을 오래 할 수 없는데, 어떤 선생님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히려 저에게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얘기하는 것이 제일 서운해요. 장애인의 어려움을 서로 이해해 주면 좋겠어요."라고 힘주어 말한다.
  “도로도 많이 불편해요. 턱은 많고 전동휠체어의 앞바퀴는 작아서 이동하기가 참 어렵거든요. 도로나 건물에 있는 높은 턱들이 빨리좀 없어졌으면 좋겠어요.”  진호는 두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내내 앉아있기도 힘들었을텐데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함께 해줬다. 모쪼록 수다쟁이 진호가 원하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소망들이 이루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최석희 기자
21kdl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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