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오후, 서윤택 지휘자를 만나러 가는 길.
‘대학졸업 후 독일에서 10년 간 유학’, ‘금천유스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자’. 대략 줏어 들은 그의 경력만으로도 TV에서나 접할 법한 격조높은 마에스트로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서 지휘자가 알려준 대로 물어물어 찾아간 연습실은 은행나무사거리 근처 골목 크지 않은 교회 지하. 빛바랜 벽돌 교회의 컴컴한 계단으로 내려가자 다듬어지지 않은 현악기의 소리가 낯선 손님을 맞는다. 입구로 들어서니 밝은 형광등 아래, 몇 개로 나누어진 무리들이 각자의 파트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생경하지만 무언가 활기가 느껴지는 이 분위기가 기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카메라를 챙겨들고 연습장 곳곳을 살피다가 누군가와 얘기하고 있는 어른 남자의 실루엣이 기자의 카메라에 찾아든다. 직감적으로 그가 서지휘자임을 알아차렸다. 상상대로 ‘마에스트로’가 떠오른다. 하지만 까칠하지는 않다. 그의 첫 인상은 ‘유쾌한 마에스트로’였다.

서씨는 금천구에서 자랐다. 백산초등학교가 그의 모교. 1997년부터 10년간 독일유학을 다녀온 이후에도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지금도 소프라노 아내(금천구 1000인의 하모니에서 솔로를 했다고 한다), 두 아이와 함께 이곳에서 금천구 문화에 또 하나의 씨앗을 심어 키워나가고 있다.

“금천구의 문화 컨텐츠가 열악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금천구 청소년 문화행사에 댄스나 사물놀이는 있는데 악기 공연이 없더라구요. 분명 여기도 악기 하는 아이들이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몇몇 분들과 상의를 해서 초등학생에서부터 대학을 졸업한 20대까지 12명을 모아 유스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하, 유스필)를 시작하게 되었네요. 3년째인 지금은 단원이 48명으로 늘어나고 전공자도 18명이나 있습니다.”

유스필을 꾸려오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경제적인 어려움이었다. 여느 분야와 마찬가지로 전공자에 대한 연주비를 지원하고 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재정이 뒷받침되어야 했던 것이다. 유스필 단장인 조민경 씨는 “그 때를 떠올리면 눈물난다.”고 회상했다. “완전 맨 땅에 헤딩했다”는 서씨는 유스필이 이만큼 자리를 잡게 된 원인으로 금천구청의 지원과 학부모회비, 주변인들의 후원을 꼽았다. 하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금천구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지만 전체 운영으로 본다면 1/6 수준입니다. 선진국에서는 기업들이 지역문화발전 차원에서 공신력 있는 예술단체를 지속적으로 지원하여 재정이 탄탄합니다. ”며 서씨와 단장은 재정지원을 지속적으로 해 줄 수 있는 기업이 연결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올 해 4월 금천구 벚꽃축제 때에 천명의 구민과 하모니오케스트라 연주를 성황리에 진행하여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이 때 구민하모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장본인이 바로 서지휘자이다.

“그 때 진행이 막막한 상황이었죠. 과연 몇 명이 모일 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이었는데, 숨어있는 구민들이 1000명 넘게 모이더라고요. 알고있는 악기 말고도 오카리나, 하모니카, 피리 등 30여 종 이상의 악기가 하모니를 기다리고 있었지요. 바이올린을 배운 지 1개월도 안 된 아이가 참여하겠다고 앉아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는데...(웃음) 뭔가 하려는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나에게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다행히 반응도 좋았고 무엇보다 흩어진 구민들이 모였고 문화단체가 함께 했다는 점이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며 그 날의 소회를 전했다.

천상 음악가답게, 준비한 공연을 선보일 때 설레고, 단원들의 기량이 발전된 것을 느꼈을 때 가장 행복하단다. 좀 더 대중적이고 누구나 즐거워하는 레파토리로 다가가고 싶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당부한다.

“모든 문화적 콘텐츠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호응이 있어야 발전합니다. 그런 차원에서 구민들이 공연행사에 대해 무관심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금나래 아트홀에서 좋은 질의 음악회가 자주 있는데 참여하는 구민이 없이 ‘자기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것 같아 예산이 아깝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도시가 발전하는 만큼 문화가 성장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구민들의 관심이 절실합니다.” 며 구민들이 공연을 많이 보러 오고 관심가져 줄 것을 부탁하였다.

단원들의 악보를 직접 복사하러 가고, 연습 후 뒷정리까지 하는 지휘자.
단원들과 학부모들로부터 “격의없다. 아이들에게도 존댓말한다” “상대의 얘기를 들을 줄 안다” “소외계층을 늘 염두에 둔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시원시원하고 단원들에 대해 강약조절을 잘 한다.” 는 얘기를 듣는 서 지휘자.
소탈한 웃음과 격의 없는 지휘로 전하는 문화에 대한 그의 애정이 금천구에서 결실을 맺어 퍼져나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아 보인다.

김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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