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을 한다. 현관문을 열면 가족들이 반겨주는 평온한 저녁나절의 풍경. 

막내는 '아빠빠..'를 외치며 두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다. 아이가 하나라면 퇴근하는 아빠를 독차지할 수 있으련만 그렇지가 않으니 둘째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동생 뒤에 서 있다. 물론 첫째인  아들녀석은 이제 안아주는 것까지는 원하지 않는듯 아빠랑 하이파이브한번 하고 제 볼일 보러 간다.   

이제 만22개월이지만 우리 나이로는 '세살'이나 잡수신 막내는 아빠에게 껌딱지처럼 착 붙어 있다. 밥을 먹을 때도 아빠 무릎에 앉아 있어야 하고 책을 읽어줄 때는 물론 아빠가 서있거나 앉아 있거나 누워 있거나 아무 상관없이 아빠의 품을 언니에게 절대로 양보하지 않는다. 어린 것이 무슨 샘을 그리 내는지 지가 앉아 있는 아빠 무릎에 언니가 엉덩이 한짝이라도 걸치면 팔로 밀어내고 꼬집고 울음보를 터뜨리며 언니를 필사적으로 밀어낸다. 아직은 아기니까 할 수 없지 하며 둘째의 양해를 구하고 대충 시간을 때워 왔는데 일이 터지고야 만 것이다. 

 눈이 내리던 12월 말의 어느 저녁, 막내딸은 자기 지정석인 아빠 무릎에 앉아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노래를 신나게 부르고 있다. 그런데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언니가 은근슬쩍 "나도 좀 앉자~" 하며 한쪽 무릎으로 파고드는 찰라. 막내는 두팔과 양발로 버둥버둥대며 언니를 밀어내기 시작한다. 하지만 언니도 오늘은 양보안할 기세인듯.

'나 여기 이쪽에만 앉아 있을게..응?" 동생에게 그렇게 얘기하며 엉덩이로 자리를 확보하기 시작하는데, 막내의 울음보가 '앙~'하고 터져 버린다.  이때 나의 상황판단력이 오판을 한 듯하다. 순간 짜증이 밀려들어 둘째의 어깨를 잡고 확 밀어 버렸다.

"넌 저기 가있어. 동생 울잖아 엉?"
아이들의 작은 몸뚱이에게 아빠의 손은 크기만 하고 힘은 세기만 하다. 살짝 들어간 힘도 아이를 단번에 밀쳐내기에 충분했다.
순식간에 아빠의 품에서 '방출'된 둘째는 방구석에 홀로 서서 씩씩댄다. 

이내 눈망울에 울음이 맺힌다. 그리고 외친다. 
"나도 아직 어리단 말야!"
"나도 아직 다섯 살밖에 안먹었다고!"
"나는 왜 안돌봐 주는데? 이 바보아빠야! 엉엉~"
 그리고 가만히 서서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쳐내며 아빠를 원망으로 쳐다본다.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에...

막내를 내려 놓는다. 물론 이녀석도 울음보가 터지고 있지만 우선순위는 아니다. 최소한 지금은.
둘째를 서둘러 안아준다. 눈물을 닦아주며 꼭 안고 말해준다. 아니라고, 미안하다고, 아빠가 널 사랑한다고... 그렇게 아이는 한동안 아빠에게 안겨있었다. 그래.. 넌 아직 어리지. 다섯살밖에 안먹었지. 맞아맞아.. 
 그날 밤, 둘째에게 팔베게를 해주며 재워 주었다. 아이는 아빠의 얼굴을 만지며 잠이 들었다

김희준(독산4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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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힘들지?

보안 감사가 있던 날.
며칠 동안 준비한 대장들과 서류들을 제출하고 마침내 마무리짓고 하루가 끝났다. 에휴~
동료들이 사당동에서 호프한잔하자는 뻐꾸기를 날리셨으나 갈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가..
오늘은 삐약삐약 병아리들 챙기러 들어가 봐야겠어요.ㅠㅠ
저녁10시... 졸음이 쏟아진다.
둘째가 책 한권을 들고 와서는 읽어달란다. `혹부리영감'
웬만하면 내일로 미룰까 하였으나 그 정도도 못해주느냐는 모 처의 압력이 들어와 아들과 딸을 옆에 앉히고 책장을 넘긴다. 이건 왜 이리 글자가 많은 거니..ㅠㅠ
읽다 보니 지친다. 눈꺼풀은 내려가고 발음은 꼬인다.
그래도 읽어간다. 혹부리 영감이 도깨비 집에 들어가 노래불러주고 혹떼고 부자되고 어쩌구 저쩌구...하는 순간 들리는 한 마디.
 "아빠, 힘들지? "
책에서 시선을 떼고 바라보니 아들이다. 아들녀석은 책 대신 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힘든 건 아니구 그냥 졸려서 그래"   "아빠, 내가 읽어줄까?"
그럴래? 이제 두 페이지밖에 안 남었거든.. ㅎㅎ
하지만 여동생은 오빠보다는 아빠의 목소리를 원했다. 그래서 결국은 내가 끝까지 읽어주었지만.
 이렇게 든든한 아들이 되어 주다니. 아빠가 너한테 참 고맙다.



서점 나들이

막내는 집에서 엄마가 재우고. 두 녀석을 데리고 집근처 마트로 갔다. 그런데 무조건 이책을 사달란다.  `7급 한자 따라쓰기 ' .잘 보고 그려라열살이 된 아들에게 기념으로 책을 한권 사주었다. `10살에 꼭 만나야할 100명의 직업인'  이제 열살!이다.  갓 태어난 너를 안고 6월의 초여름에 땀 삐질찌질 쌍문동 언덕배기를 올라가던 그 날이 생각난다. 앞으로 오년만 있으면 아빠랑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을 수 있겠지. 십년만 있으면 어른이 되어 우리 집의 튼튼한 대들보가 되겠지. 그땐 녀석과 호프한잔 해야겠다. 안놀아줄래나....



김희준(독산4동)




#아빠와 결혼했다고   생각하는 딸


모처럼 일찍 퇴근한 저녁, 오늘은 다섯 살 딸래미에게 팔베게를 해주고 잠을 청하는데
옛날 이야기 한판 해주고 이제 그만 자자 이녀석 머리통이 왜 이리 무거워 다섯 살인데.
"재은이는 결혼이 뭔지 알어?“
“응, 남자하고 여자하고 같이 사는 거..”
“재은이는 나중에 결혼할 거야?”
“응, 아빠 죽으면 다른 남자하고 결혼할거야”
(흐미...니가 나랑 지금 결혼해서 살고 있냐?)
“아빠 안 죽으면?“
“아빠 나중에 재은이 엄마되면 죽는 거 아냐? ”
“야, 너 엄마도 결혼했는데 할아버지 살아계시잖아. 안그래?”
(약간 버럭)
“응 그건 그러네..”
(요것이 아주 애비 죽는 날만 기다리는 건지...)
“재은이는 결혼하면 아기는 몇 명 낳을거야?”
“음...엄마처럼 세 명! "
"엄마도 아기가 세 명인데 할아버지 살아계시잖아, 그렇지? “
“그러네..잘 모르겠당. ”
딸의 눈꺼풀에 잠이 스르르 내려오는 것이 보인다.
천방지축 까불어대는 다섯 살 꼬마아가씨도 언젠가는 아빠의 품을 떠나 훨훨 날아가겠지.
그때까지, 그리고 그 후로도 내가 너를 많이많이 사랑할게...


#오빠는 선생님


지난 연말은 생각보다 조금 더 바빴다.
집에 와서 씻고 자고 일어나서 출근하기도 급급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아이들은 여름날 죽순처럼 쭉쭉 자란다.

어느 날엔가 퇴근해서 숨돌리고 앉아 있자니 놀라운 광경.
둘째가 동화책을 펴놓고 하나하나 글자를 짚어가며 또박또박 읽어내리는 것이 아닌가..
 "아니, 여보야.. 재은이가 갑자기 왜이래?"
나의 우문에 대한 정답은 오빠에게 있었다. 학교다녀와서 동생하고 같이 책을 읽어가며
연습장에 한글자 한글자 써가며 글을 가르쳐 준 것이다.
이런 놀라운 일이 나의 가정에 발생하다니~~
하긴 얼마전에 공책에 개발새발 연필로 난장을 부리던 기억은 난다만.. 어느새..ㅎㅎ
 2011년 한해,
너희들은 또 얼마나 커서 엄마아빠를 놀래줄 거니...
.기!대!만!땅!

김희준
(독산4동, 세아이의 아빠)

셋째가 생겼다는 후배에게 해 준 말

 

김희준

 

1. 2008년 6월의 어느 날. 마른 하늘에 날벼락도 이런 법은 없지 싶었다. 셋째 아기가 들어섰다니 말이다. 이제 겨우 둘째 녀석 키워놓고 맘편하게 좀 살아볼까 했는데 임신과 출산과 육아로 이어지는 2년간의 '고난의행군'이  또다시 시작할거라는 사실에 그저 털썩 주저앉고만 싶었다. 그 때 그런 내 마음을 다잡아주신 분이 계셨으니 당시 우리 과에 같이 계셨던 형님이 그 분이었다.  무슨 일 있냐는 지나가는 질문에 '네. 사실은요..흑흑..' 하며 털어놓은 내 고민에 그 분은 단호한 표정으로 축하한다며 낳아놓으면 모두 축복이 될 아이들이니 뭘 걱정이냐며 내 고민을 쓸데없는 기우로 일축해 버리셨다는.

아, 그런가요? 그렇죠..? ㅋㅋ 제가 사실 아기들은 되게 좋아하기도 하거든요..ㅎㅎ. 이상하게도 그 뒤로 내 맘은 아주아주 편안해졌다. 우리 아기는 딸래미로 태어났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딸딸이 아빠 되는 거잖아요..

 

2. 2010년 9월의 어느 날. 회식자리였다. 한 후배가 조용히 이야기한다. 셋째가 잉태되었다고. 그렇게 걱정하는 표정은 아닌 듯 하지만 겪어보지 못한 사태에 대한 약간의 걱정이 서려 있었다. ㅎㅎ. 난 단호한 표정으로 말해 주었다. 낳아놓으면 다 축복이 될 아이들이니 뭘 걱정이냐고? 축하한다고. 아이 셋 아빠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어서 축하주 한 잔 더하자고. 그렇게 내가 겪은 대로, 나에게 힘이 되어준 그대로 그 친구에게 곱빼기로 더해 돌려 주었다. 그럼요. 아이 셋 키우는 거 힘들다고 생각말아요. 힘든 만큼 그에 곱하기 백보다 더 많은 행복이 찾아올 터이니 아무 걱정 하지말아요. 아마 그 친구도 내가 받았던 그런 위안과 격려를 느꼈을까. 확신할 순 없지만 작은 도움은 되지 않았을까 싶다.

 

 

3. 2010년 11월 3일 오늘. 어린이집에 들러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는 길. 이제 말이 막 늘기 시작하는 막내에게 아빠 토닥토닥해주세요. 하면 고사리손으로 내 어깨를 성의없이 툭툭 쳐준다. 그렇게 조금씩 너의 세상은 열리는 법이지. 내가 길잡이가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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