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그림: 전미화 / 사계절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의 책읽는 어른모임 ‘함박웃음’에서 함께  읽고 올린 글입니다.  



 샛노란 표지에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까만 머리의 한 아이가 밝게 웃으며 서 있다. 그 옆에 그려진 말풍선 안에는 뭔가 다짐이라도 하듯 힘차게 적힌 글씨, ‘씩씩해요’. 쉽고 편하게 보는 글줄 적은 그림책인 줄 알고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다가 얼마 못 가 ‘쿵!’ 하고 가슴이 내려앉는다. 차마 책을 덮지 못한 채 가슴이 아려오는 걸 억지로 눌렀다.


 아빠차가 공중에서 크게 한 바퀴를 도는 무서운 사고가 일어난다. 아주 긴 시간을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와 아이가 단색의 바탕에 까만 펜으로 간결하게 그려졌다. 이후 달라지는 생활모습들... 엄마는 더 바빠졌고, 혼자 먹는 밥에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식탁, 아빠 없이 혼자 하는 목욕, 아빠 없이 타는 그네, 잠이 들면 아침까지 엄마를 볼 수가 없기에 곰돌이와 얘기하며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의 모습. 어느 날은 엄마 아빠와 함께 있는 꿈도 꾼다. 아름다운 풍선으로 가득한 꿈이지만 깨어보니 이불이 젖어있다. 엄마는 화내지 않고 말한다. “괜찮아.” 엄마와 함께 무지개 색깔의 산에 힘차게 오른 날, 엄마는 웃으며 말한다. “이제부터 우리 둘이 씩씩하게 사는 거야, 알았지?” 

이때부터 색이 없던 엄마와 아이의 옷에 색깔이 입혀진 게 보인다. 혼자 먹는 밥도 괜찮아졌고 설거지를 할 줄 알게 되고 엄마가 마신 커피 잔도 치운다. 아빠처럼 어른이 되면 높이 날 수 있을 거라며 혼자 그네도 탄다. 엄마는 예전에 하지 않았던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운전을 시작하고 망치질도 하고... 사진 속 아빠가 나를 보며 웃고 있고 아이도 함께 웃는다. 그리고 말한다. ‘나는 씩씩해요.’ 마지막장에 그려진 아이의 환한 표정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인다. 그러다가 이내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쭉 씩씩할 수 있을까. 아니, 씩씩해야만 하는데. 


 아이의 시선에서 담담하게 쓴 그림책이지만 나도 엄마인지라 자연스럽게 엄마에게 감정이입이 되고야 만다. 3~4줄에 다 표현하지 못하고 글과 그림 사이에 담겨져 있는 엄마의 마음이 절로 읽혀져서 참 아팠다. 겪어보지 않으면 감히 예상치 못할 아픔과 상처이리라. 얼마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충격을 준 남편의 직장동료가 생각났다. 남겨진 아내와 4살 아이에게 조심스럽게 이 책을 내밀고 싶다.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는 세상,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 크고 작은 아픔과 상처들을 늘 마주하는 우리들에게 오늘 나는 씩씩해지는 마법을 걸어보고 싶다. 우리 씩씩해요!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 

윤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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