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흘리는 당신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

<피의 연대기> 상영회 및 김보람 감독 인터뷰

 

 

 

지난 4월 19일, 독산 4동 꿈씨 어린이 도서관에서는 ‘피 흘리기 위해’ 특별한 영화상영회가 열렸다. 이 날, 금천구 젠더 거버넌스 모임이자 풀뿌리 여성단체인 “열린파도‘는 서울시 후원을 받아 그 동안 각자 개인적으로 처리하고 해결해야할 문제로만 여겨졌던 월경에 대해 다룬 김보람 감독의 <피의 연대기>를 상영했다. 그간 하면서도 안하는 척, 가리고 숨겨야하는 일로 취급된 ‘생리’는 사실 우리 사회가 빠르게 변하면서 세대별로 해결하고 대처하는 방법도 달랐다. 영화는 월경에 대한 동서양의 시각, 월경대를 넘어 탐폰과 월경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선택권, 공공의 일은 공공이 해결해야한다는 메시지까지 월경에 대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갔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김보람 감독이 촬영 과정과 미처 다 담지 못한 부분들을 직접 방문해 이야기하는 한편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본지에서는 생리라는 단어의 기본 의미는 너무 포괄적이라서 ‘달마다 피가 흐르는 일’을 구체적으로 담지 못하므로 가급적 ‘월경’이란 단어를, ‘낙태’ 역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담겨있어 ‘임신중지’로 사용한다. 그러나 인터뷰에서는 감독의 발언을 살리기 위해 ‘생리’와 ‘낙태’ 단어를 그대로 적었다. 

 

가족들 출연 설득, 어떻게? 
(편집자주:영화에서는 감독의 모계 쪽 할머니와 이모들이 모두 등장한다.)
생리에 대해서 연령대별로 다 담고 싶었는데 마침 할머니와 이모들이 나이대별로 다 있었다. 할머니도 이모들도 출연 자체는 어려워하지 않았다. 다만 전국에 뿔뿔이 흩어져있어 모이기가 어려웠는데 해외에 있는 외삼촌이 와서 한 자리에 모이게 되었다. 촬영을 하면서 새로운 풍경을 볼 수 있었던 게 여자 어른들이 안방과 상석에 앉는 모습이었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면 보이는 풍경은 주로 이모와 할머니는 계속 일하고 남자들만 상석에 앉아있는데 이 날 영화 촬영하면서는 여자들이 모두 상석에 앉았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집이 좁고 다른 자리가 없어서 남자 가족들은 다 현관 쪽에 몰려 앉아있었다. 생리를 이야기 하면서 보지 못했던 풍경과 그간 한 번도 가족들끼리 이야기해보지 못한 부분들이 많이 나왔다. 영화엔 다 담지 못했지만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어떤 이야기들이 나왔나?
우선, 할머니께서 예전에 쓰던 생리대 만드는 법을 보여주시기로 했다. 목화솜을 쓰셨다고 해서 목화를 통째로 가져갔는데 이걸 어떻게 쓰냐고, 다 털어서 넣는 거라고 상세하게 알려주시기도 했다. 또, 생리대를 만들려고 가져간 천이 너무 좋은 천이라고, 보통은 입던 옷 뜯어서 만들지 새 천은 쓰지 않는다고도 했다. 그런 할머니에게 요즘은 이런 것도 쓴다며 생리컵을 우연히 보여드리게 되었는데 의도적으로 연출한 장면이 아님에도 세상 너무 좋아졌다며 놀라시는 모습이 그대로 영상에 담겼다.   
연령별로 생리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한 것도 달랐다. 할머니와 둘째이모까지는 면과 가재로 만든 생리대만 쓰고 한번도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해본 적이 없었다. 대부분의 이모들은 면을 쓰다가 일회용으로 넘어갔고 막내이모는 한 번도 면 생리대를 쓴 적 없다고 했다. 또, 면만 쓰던 시절에 할머니가 새벽에 밭일 나가야 돼서 생리대를 던져놓고 가면 둘째이모가 그 빨래를 다하면서 할머니의 생리 양까지 알았다고 했다. 그 생리대 빨러 시냇가에 빨래가면 다들 아들 태어났는지 물어보고 딸 낳았다 그러면 놀려대니까 맨날 해 뜨기도 전에 가서 빨다가 아들 태어났을 때 처음으로 낮에 빨래하러 갔더니 아무도 없었다고, 매번 여자들만 있다가 남자아이가 태어나니까 처음 보는 (남자의) 생식기가 떨어질까 봐 겁이 나서 업어주지도 못하던 얘기를 하면서는 모두 웃었다. 얘기가 이어가다 낙태 얘기도 나왔는데, 할머니가 나이 40이 되서 막내 이모를 배서는 나는 더 못 낳겠다, 낳아도 못 키우겠다 싶어서 낙태를 하려고 했다. 당시 낙태 비용이 쌀 한 가마니라서 그걸 이고 읍내에 갔는데 의사가 (아기가) 너무 커서 안 된다고 수술을 안 해줬다고 한다. 그래서 그 쌀 한가마니 그대로 지고 돌아온 얘기를 하면서는 다 같이 눈물을 쏟기도 했다. 

생리컵 사용하게 된 계기?
사실 영화에 나오지 않지만 네덜란드 친구 중에는 생리를 아예 안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성인이 되면서 주치의와 상담해 IUD(비영구 피임시술)을 받았다고 했다. 의사와의 상담을 통해 생리를 하는 일이 힘들고 또 성생활 과정에서 나를 지킬 방법으로 자궁 내 피임장치를 ‘선택’한 것이다. 사실 현재는 피임보다 생리를 하지 않게 된 점 때문에 (피임장치를) 안 할 수가 없게 된 점이 좋다고 했다. 이 부분도 같이 다루려고 봤더니 사람들은 영화로부터 딱 한 가지 이미지만 갖게 되는 것, 예를 들면 ‘생리컵이 좋다’, 혹은 ‘생리 안할 권리에 대해서 다룬 영화’라고만 생각하게 되는 게 우려됐다. 개인적으로는 생리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조사하다가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능한 (인공적으로) 건들지 말자, 고 생각하게 됐고 그러면서 생리컵을 시도해봤다. 그런데 한 번에 딱 성공을 해서 계속 사용하게 됐다. 

꼭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 
영화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촬영과정에서 고등학교 학생과 진행한 인터뷰가 있었다. 이 학생은 정말 기다렸던 수학여행에서 한 코스로 바나나보트 체험이 들어가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수학여행이 마침 생리 시기라 탐폰을 쓰려고 했더니 엄마가 안 된다 해서 피임약을 먹고 한 달 피임주기를 미루게 되었단 얘기였다. 그러나 우리에게 선택지가 많다. 여성의 몸에 대한 혐오는 결국 생리에 대한 혐오로 이어지고 계속 정보를 차단시킨다. 생리에 대해 선택할 수 있으려면 (생리는 개인적인 게 아니라 모두가 하고 있다는 사실처럼) 필수적인 것들을 상식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면 좋을까?
영화 개봉 시기쯤에 생리대에 유해물질 사태가 터져 갑자기 생리컵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고 대안생리대 사용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생리팬티, 면생리대, 생리컵 회사들로부터 협찬을 받았고 영화 관객들에게 나눠주는 이벤트가 있었다. 나중에 그 회사들에게 시장을 얼마나 점유했는지 물어보니 생리팬티와 면생리대는 예상 매출이 5배까지 올랐는데 생리컵은 현재 수입생산도 되는데도 기대했던 정도에 미치지 않았다고 들었다. 대부분 문의만 많고 구매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웃음) 주변 친구들에게도 촬영 때문에 많이 구매한 걸 나눠주고 쓰라고 해도 다들 못 쓰겠다는 반응이 많다. 결혼을 한 친구임에도. 또 어떤 학생은 탐폰 쓰려고 보니까 엄마 생각나서 못 쓰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또 영화를 준비하면서 맘 카페 취재를 많이 했는데 딸이 미대 준비로 하루 종일 앉아있는데 생리대를 쓰니까 살이 짓물러서 탐폰사용 문의하는 글이 있었다. 댓글들은 모두 절대 안 된다고 달렸다. 
이렇듯 우리의 몸을 알고 ‘더 잘 피 흘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은데도 정보가 계속 차단된다. 어렸을 때도 성기를 만지면 ‘지지(지저분하다)’라고 만지면 안되는 것, 안 좋은 것으로 학습된다. 내 몸인데도 내 몸과 멀어지는 것이다. 성기가 속으로 들어가 있으니까 안 보인다고 없는 것처럼 여기고 금방 다치고 아프고 약할 것 같은 느낌을 주면서 인식 자체를 할 수 없게 만들고 차단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스스로를 모르는 상태에서 누가 이 혜택을 보냐면 그정보를 아는 사람들에게 지배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 정보를 저희 세대도 안배우고 모든 세대가 안 배우고 아마 다음 세대도 힘들 것이다. 
한편으론 사실 성 행위가 (여성에게는) 타인의 성기가 들어오는 일이고 어마어마하게 신체적으로 부자연스러운 일인데 그건 자연스러운 일로 보면서 정작 내가 내 몸에 모른다는 게 이상하지 않나? 내 몸을 타인이 더 많이 보게 되는 상황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 스스로 자신의 몸을 보고 알려는 것을 억압하고 성장기 애들에게 금기시하는 건 문제다. 이를 깨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몸에 대해서 더 알아볼 만한 자료는? 
넷플릭스에서 상영하는 ‘빅마우스’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12살 아이에게 질이 말을 걸어오면서 성을 알려주는 내용이다. 성에 관한 적나라한 이야기가 담겨있기도 하다. 또한 ‘질의 응답’이란 책은 여성도 남성만큼 성욕을 깨닫는 시기가 있다는 내용을 포함해 여성의 몸을 여성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
무상생리대에 대해 조례와 정부 지원을 다루는데 무상 콘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결이 다른 문제라고 본다. 물론 영화에서 성에 관한 얘기를 했지만 생리는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잠시 갖는 휴지기를 빼면 38년 피를 흘려야 되는 생존의 문제다. 생리는 안전한 섹스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섹스는 선택이 가능하지만 피는 선택하거나 제어할 수 없는 몸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무상 생리대 얘기를 하면 남성분들은 면도기를 공짜로 달라, 군대를 어떻게 해 달라 그런 얘기를 하는데 전혀 같은 선상에서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을 무상과 연결시키는 게 많다. 마치 생리를 몽정과 등치시키면서 몽정이 당황스럽고 발기가 되는 게 힘들다고도 하지만 그 고통은 알겠는데 그건 생리와는 다른 것이다. 생리는 몸 교육으로 가야한다. 몸에서 의지와 상관없이 (성욕과도 전혀 상관없이) 피를 흘린다는 명제를 따로 가져가야된다. 

차기작 준비는?
‘섭식장애’를 다루는 내용을 준비하고 있다.

박새솜 기자
gcin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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