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이 아빠가 쓰는 성장일기 34번째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한 소리 한다. 또 무슨 건으로 책을 잡혔나 싶어 긴장한 채 들어보니 다행히 나의 잘못은 아니되 나의 자식들의 소행이 빚어낸 상황이란다. 아래 층 사는 아주머니가 올라와 제발 부탁이니 조용히 좀 살고 싶다며 신신당부 하고 갔다는 것이다. 우리 집은 독산1동에 위치한 건축한지 30년이 다 되어가는 주공아파트이다. 층간소음이 살인까지 부른다는 신문보도를 몇 차례 접하기는 했지만 그동안 살아오면서 그런 사실을 체감하지 못했다. 원래 옛날에 지은 아파트가 더 튼튼한가 봐 하며 안심했었는데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요즘 신축된 아파트들처럼 윗집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옆집 아이 리코더 부는 소리, 아랫집 핸드폰 진동소리까지 들리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도 층간소음에는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지금까지 간과하면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우리 윗집에 사사는 분들이 아이들이 없는 노부부만 살고 계신 집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 아! 그래서 그랬었구나. 층간소음에 강한 아파트라며 어느 정도는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제지하지 않았는데 아랫집 사는 분들에게는 층간소음이 장난이 아니었나 보다.

 다음 날은 휴일이었다. 오전에 시간을 내서 조심스레 아랫집 현관을 두드려 본다. 인상 좋으신 아주머니가 문을 여시고 이래저래 해서 왔다고 말씀드리니 일단 들어오라신다. 거실에 서서 마치 벌서는 아이처럼 일단 사과부터 드리고 변명을 늘어놓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차분하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어리고 거기다 셋이나 되니 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겠냐고 하지만 저녁 늦은 시간이나 휴일에는 쿵쿵 울리는 소리가 너무도 거슬려서 집에서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가 힘들기만 하다. 이런 점을 좀 주의해 주었으면 하다는 그런 요지였다.

 거듭거듭 죄송하다고, 아이들에게 충분히 이해시키고 집안에서는 될 수 있으면 잠만 자겠다는 거창한 공약까지 늘어놓고 넙죽 인사드리고 나왔다.

 “얘들아, 이리 와바” 아이들을 불러 모아본다. “아빠가 지금 아랫집 아줌마를 만나서 얘기하고 왔는데, 아파트라는 곳이 말이지 우리 집에서 뛰면 그 소리가 아랫집에 울려서 아줌마가 잠을 못 주무신데. 그러니까 집안에선 뛰어 다니지 말고, 특히 소파에서 점프하지 말고, 놀고 싶으면 밖에 나가서 놀아야 대, 알겠지?

물론 아이들은 냉큼 대답은 잘한다. 하지만 어찌 열 살도 안 된 생명력으로 파릇파릇한 기운으로 충만한 어린 것들이 몸뚱이를 어찌 가만둘 수 있겠는가. 오히려 집안에서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법이지.

 나의 어린 시절, 그때의 서울은 아파트가 거의 없었다. 지하철 2호선 라인의 환승역인 대림역 근처가 나의 코흘리개 시절 살던 동네였는데 그때만 해도 2층집 옥상에 올라가면 남산타워까지 한 눈에 보일 정도로 시내에 고층건물이 없었다.(그러고 보니 엄청 나이 먹었군.ㅠㅠ)

세월은 무심하게 흘렀다. 코흘리개 어린아이는 40줄에 접어들었고 무밭 배추밭이었던 동네는 고층빌딩으로 즐비한 상업지구가 되었다. 아이폰가지고 노는 첨단세상은 좋은데 아파트에 딸려나오는 층간소음이란 불청객은 과연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성장을 하면 어느 정도 해결은 되겠지만, 지금이 문제인걸. 집안에 매트로 도배를 할까, 아이들을 묶어둘까(?), 아니면?...

남북통일보다 세계평화보다 더 풀기 어려운 층간소음 이라는 문제. 고민은 깊어가되 그 해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아랫집 부부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 번 사과드리는 바이다. ㅠㅠ


                          독산1동 김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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