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이 정상적으로 이뤄지면 아이들과 밥상머리에 모여앉아 저녁식사를 한다. 평범한 하루가 주는 행복은 어느 지붕 밑에서도 마찬가지겠지.
식사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서 신문을 들쳐보는데 아내가 장남 이야기를 꺼낸다. “재빈이가 말이지..” 하며 시작된 이야기는 아들의 수학성적에 대한 것이었다.
학교에서 받아온 수학 점수가 65점이란다. 보통은 그렇다. 부모는 아이가 못한 측면에서 너보다 더 잘하는 아이가 몇이냐 며 묻기 마련이고 아이는 자기보다 못한 아이들이 더 많다며 자기를 옹호하는 것이 이 지점에서의 대화 패턴이다.
그런데 아내의 말에 의하면 우리 아들의 반응은 뭔가 남다른 것이 있다. 아들의 설명은 이렇다. 수학시험이 나온 8단원이 ‘아주아주’ 어려운 부분이었다는 것이다. 흠. 그래서 점수가 나빴다? 그런 식으로 마무리가 되었다면 별로 이야기꺼리가 되지는 않았을 터인데 아들의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는 것.
주변에 수학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있단다. 학원을 열심히 다니는 친구들이 받은 점수도 65점이란다. 그러므로 학원 다니지 않은 자기가 받은 점수는 절대로 나쁜 점수가 아니라며 종결지은 아들 녀석의 한 마디는 ‘ 난 내 점수에 만족해’ 이다.
아내에게서 이 이야기를 전해 듣고 30여년전 ‘국민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어느 날이 생각난다.
내가 입학했던 학교는 동작구 신대방동에 위치했던 일제 강점기때 개교한 고색창연한 역사를 자랑하는 문창국민학교였다.
베이비붐 세대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1학년이 24반까지 있었고 교실은 지하실이었다.
지하교실에서 형광등 켜놓고 60여명의 꼬맹이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한글을 하나하나 배워나가던 모습은 지금의 현실로서는 가히 해외토픽감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가 영등포구 대림동에 ‘대동국민학교’가 긴급 개교되어 일부 아이들이 그쪽으로 수용되었고 그곳에서 지금의 아들과 같은 학년인 3학년을 맞게 되었다.
담임 선생님은 얼굴이 통통하고 파마머리를 했던 예쁘장한 여자선생님이셨다. 다른 건 다 생각 안나지만 선생님의 표정과 억양이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님은 너희들 중에 서울대학교를 갈 수 있는 아이들이 나올까 궁금하다며 서울대학교라는 곳을 한참 설명하셨다.
서울대학교는 정말 훌륭한 대학교라며 정말 정말 똑똑한 사람들만이 가는 학교라며 너희들도 열심히 공부해서 꼭 서울대학교를 가기를 바란다며 말을 마치신 기억이 난다.
열 살짜리 꼬맹이들이 서울대학교가 뭔지 하버드 대학교가 뭔지 알 게 뭔가.
하지만 그날 선생님이 강조하신 그 다섯 글자가 지금도 뇌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면 정색을 하고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신 듯하다.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를 진학하면서 나도 고3이 되었고 그때서야 서울대학교라는 단어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114번 버스를 타면 한 방에 갈수 있었기에 반 친구들과 농담으로 대학교도 학군제로 하면 우리들 모두 관악산에 있는 대학교 배정받을 텐데 하며 킬킬대기도 하였다.
고3 막바지가 되어 학력고사가 임박한 11월경이었다.
담임선생님과의 1:1진학상담. 배치고사 평균점수가 나왔으니 이를 근거로 대학 순위표에 줄을 긋고 그 밑으로 한번 골라보라는 것이 진학상담의 전부였다.
줄 위에 있는 학교 한번 써보면 안되겠냐고 강짜를 부리는 나를 쳐다보던 담임선생님의 똥씹으신 듯한 표정에 결국 꿀밤한대 맞고 쓰라는 데로 썼다.
그래서 가게 된 000대학교. 비록 서울대학교는 아니지만 지하철만 타고 다닐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들이 65점에 만족했듯이 나도 나의 대학교에 만족한다.
성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게 칭찬해 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는 것.
아들아! 만족해도 된단다. 넌 충분히 자격있어!
                   

         독산1동 김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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