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시장에 장사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다가 잠이 들면 밤 10시가 넘어서 우리 형제들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 소리에 눈비비고 일어나면 닭과 통마늘을 삶은 냄새와 김이 방안 가득하고 상이 차려져있다. 잠이 덜 깬 채 어머니께서 입 안에 들이민 닭고기를 먹는다. 부드럽고 쫄깃한 닭고기를 씹다보면 어느새 잠이 깬 우리 형제들은 모두 부지런히 닭고기를 먹고 있다. 닭을 다 먹고 나면 한 쪽이 물러서 둥그렇게 도려낸 복숭아를 하나씩 건네신다. 이렇게 우리는 배불리 밤중 복달임을 하고 또다시 행복한 표정으로 다시 누워 잠을 잔다. 그날 어머니는 복날 팔고 남은 닭을 닭장사한테 떨이로 싸게 두어마리 사와 통마늘만 몇 줌 넣어 석유곤로에 심지를 크게 키우고 얼른 삶았으리라. 그때는 닭에 인삼을 넣고 삶는 게 호사였고 썩지 않은 멀쩡한 복숭아를 사먹는다는 게 우리 식구들에게는 사치였다. 우리 오남매는 몇 년을 그렇게 밤중 복달임을 해도 닭먹고 체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 맛있고 아까운 것을 먹고 체하면 불효니까. 통마늘만 넣고 닭을 삶아오던 어머니도 오래전부터 인삼 등을 넣어 삶고 몇 년 전부터는 녹두를 넣어 닭죽을 끓여 주신다. 몸에 겁나게 좋다며.

어머니 생각에 녹두삼계탕을 먹으러 간 시흥보신탕에는 보신탕 손님 대 녹두삼계탕 손님이 6대 4의 비율이었다. 대한민국의 대표 보양식은 역시 보신탕이 약강세이다. 음식점 안의 작은 가구들과 입구의 대기 의자도 세월이 묻어난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다. 큰 방 하나와 단체방 3개가 있는데 큰 방에는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연상되는 꿩 박제가 녹두삼계탕을 먹는 우리들을 살짝 내려다보고 있다. 한물간 이 박제유행물 또한 시흥보신탕의 역사이리라.

녹두삼계탕은 우리가 흔히 먹는 삼계탕의 재료에 녹두를 넣고 끓인 것이다. 입맛 떨어지고 심하게 아플 때 어른들이 녹두로 자주 죽을 쑤는 것을 보고 닭과 녹두를 같이 끓이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보신탕과 녹두삼계탕의 두 가지 메뉴로 올해로 11년 째 영업을 하고 있는 시흥보신탕 주인아주머니(오영심·50세)의 메뉴개발에 대한 설명이다. 보신탕과 녹두삼계탕의 조리비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주인아주머니가 아닌 주인아저씨(배윤식·51세)이다. 시흥보신탕을 개업하기 이전에 어떤 음식점도 운영해본 경험이 없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용감하게 음식점 문을 연 것은 음식에 관심이 특별한 배윤식 씨 때문이라고 한다.

“예전부터 텔레비전에 나오는 요리는 집에서 한 번씩 다 해볼 정도로 음식에 대한 관심이 유별났어요”

이곳 녹두삼계탕은 성질 급한 사람은 못 먹는다. 주문에 들어가면 그때부터 음식을 조리하기 시작하여 25분 후에나 녹두삼계탕이 나온다. 뚝배기 안에 영계, 대추, 인삼, 밤, 은행과 함께 푹 퍼진 찹쌀과 녹두가 뜨거운 김을 뿜고 있다. 뜨거운 영계를 건져서 닭다리를 뜯으니 퍼지지 않는 쫄깃함이 또다른 부위는 부드러움이 느껴진다. 살을 다 발라 먹고 나서 뚝배기에 남은 걸쭉하고 담백한 눅두죽을 다 먹으면 배가 많이 부른다.

11년 째 맛있다며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오는 특별한 비결에 대하여 물으니 “특별한 비결은 따로 없어요. 그냥 재료를 아끼지 않고 듬뿍 써서 하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보신탕이 더 맛있다고 하는디….” 

주인아주머니 오영심 씨는 더 맛있다는 보신탕을 먹지 않은 게 못내 아쉬운 것 같다. 

앤드류 카슨 박사(Andrew D. Carson)가 주장한  ‘10년의 법칙’이란 게 있다. 어느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성과와 성취에 도달하려면 그 분야에서 지속적이고 정교한 훈련을 최소한 10년 정도는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음식점에서 단 두 가지의 메뉴로 10년 이상 영업을 했다면 어느 수준에 도달한 맛이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여름에 고단백의 보양식을 먹는 이유는 무더위로 지친 몸의 원기를 돋우어 주고 가을을 잘 넘기기 위해서이다. 녹두삼계탕에 들어가는 닭은 속을 데우고 간의 기능을 개선시켜주며 소화흡수가 잘 된다. 또 녹두는 몸의 노폐물을 해독해주고 열을 내리게 하고 식욕을 돋우며 피로회복에 좋다.

예전부터 우리 어머니도 뭘 알긴 알으셨나보다. 밤중에 먹어도 소화 잘되는 닭을 삶아준 걸 보면. 




시흥보신탕·녹두삼계탕 (전화:894-0172, 주소: 서울시 금천구 시흥1동 895-4) 

*기다림에 약하신 분 녹두삼계탕은 30분 전 예약필수


김현미 독산3동

프랑스에서 나오는 미슈랭 가이드· 대한민국 서울 금천에서 나오는 쓰레빠 가이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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