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다니는 우리 마을답사-고개답사 1편

“그리운 것은 고개 너머에 있다 -시흥고개”

시흥고개는 대한민국 제1번국도 위에 있다. 예전부터 산이 유난히 많은 지형을 따라 산등성이, 계곡에 고개 길이 생겨났다. 산을 돌아가기엔 거리가 멀어 고갯길을 따라 길은 낸 것은 지금이나 예전이나 마찬가지였다. 독산동이 생활터전이었던 나는 시흥고개가 정확하게 어느 위치인지 관심 밖이었다. 이번 답사를 통해 고개 마루가 어디인지 고개 옆 산은 어디였을지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시흥고개는 현재 주소로 말한다면 시흥대로 77길 위 보리밥집과 주유소 사이가 고개 마루가 될 것 같다. 연일 맹추위가 계속되는 한겨울에 길을 걷기란 다소 힘겨운 일이다. 잠시 추위를 잊고자 고개 길에 밝은 인테리어 가게 찻집에서 몸을 녹이고 지나는 사람들을 본다.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얼마 전 제주 사는 친구가 시흥동 부모님 집에 다녀갔다. ‘이 곳에선 내가 바보가 되는 것 같다.’고 하면서 사람 많고 길 복잡한 고향 금천을 낯설어했다.

사람이 많으니 하나하나 눈 마주하고 살기 어렵고 그렇다 보니 무관심한 이웃살이가 재미없기도 하겠다. 사람냄새 나는 시골로 가겠다는 데 말릴 이유가 없다.

금천의 사람살이는 복잡하고 그러다 보니 악다구니치고 무심한 듯 무례하기도 하지만 그런 가운데 피어나는 동네의 정서가 있다. 칼로 벤 듯 정확하지는 않지만 사람사이에 거리가 좁았다가 넓어졌다가 “유두리(융통성을 이르는 일본말)”굉장히 많다. 그야말로 불완전한 “사람”의 전형이 동네에 숨어있다.

내가 볼 때 도시 살이에 어설프고 서투른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적당한 곳으로부터 이런 정서가 태어난 것이 아닌가싶다. 우리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60년대 70년대 이곳으로 이주한 대부분의 동네 사람들이 타향살이의 어려움을 나누고 부족한 도시 살림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곳이라 자리 잡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어려운 사람들 끼리 서로의 부족함을 위로하고 희망을 꿈꾸던 삶이 시작되던 시기, 시흥고개는 새로운 운명을 맞이한다. 이 시흥고개에 큰 도로가 생긴 것이다.

52년생이신 윤부섭씨가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라고 한다. 지금으로 말하면 시흥사거리 한복판 집들이 있었는데 이 곳 몇몇 집을 시흥대교 입구 파출소 부근으로 이주시키고 지금의 도로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 때는 변변한 보상절차도 없이 무조건 집을 비워줘야 하는 시대였다고도 전한다. 대한전선 사택(지금의 무지개 아파트)앞 길이 국도 1번과 이어지던 도로였는데 이 무렵 교통량이 많아지면서 왕복10차선 50미터 길이로 확장 되어 시흥고개에 도로가 놓이게 되었다. 그 전에는 한 참을 올라가야 하는 고개였다고 한다. 지금의 산돌교회와 주유소 뒷길이 추정컨대 작은 산이었고 그 사이로 시흥고개가 있었으리라.

이렇게 시흥고개에 도로가 놓이기 전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서울로 남쪽 어느 지방으로 넘나들었으리라. 시흥초등학교(당시 시흥공립보통학교)로 통학하기 위해 몇 개의 고개를 넘어 난곡에서부터 걸어 다녔다는 이야기가 어느 한 집에만 있으랴. 이 시흥고개엔 수많은 이야기가, 다 알 수도 없는 애절하고 고달프지만 신나고 살 만했던 이야기까지 얼마나 있었겠는가. 시흥고개 너머 멀리 말미고개 마루를 내다 보며 흑백영화를 되돌려 보듯 그리운 사람들의 옛이야기를 그려본다.

산아래문화학교 김유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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