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다니는 우리 마을답사40 - 고개답사3편

“ 이야기 따라 넘어가는 - 문성고개 1 ”

문성고개는 문성초등학교에서 오르면 시내 방향으론 내리막길이다. 한동안 LG패션고개라고 불리기도 했다. 중앙차로가 생기면서(버스정류장의 이동은 유동인구의 동선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고개길을 오가던 사람들이 나눠졌다고 한다. 상행 하행이 마주보는 위치에 정류장이 있었을 때보다 상권이 죽었다고 한다.

이 동네사람이면 알 수 없는 얘기를 들으러 기억을 더듬어 본다. 처음 찾아간 곳은 고개 바로 아래 버스카드충전소 겸(예전에 토큰판매소) 노점이었다. 이 노점은 늘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듯해서이다. 아니나 다를까 20년이 훌쩍 넘었다는 노점 사장님은 언뜻 봐도 칠순은 넘기셨을 듯하다.

아주 아주 매우 오랜만에 신문을 하나 사고 이런 저런 말씀을 여쭙는다.

“‘이 고개위에 가장 오래된 상가는 어디예요?, 댁은 어디세요?, 혼자서 일하시기 힘들지 않으세요?” 두서없는 질문에 차분히 얘기를 해주신다.

고개를 넘기 전 유난히 시대를 넘어서는 색다른 양복점이 바로 제일 오래된 곳이라 한다. 나머지는 언제 생겼는지, 사라졌는지 모르게 주인이 바뀌어서 모르겠다고 하신다.

이번엔 고개 마루에 그 양복점을 다시 둘러본다. 아무래도 맞춤 양복점이 아니고서는 기성복이 흉내낼 수 없는 디자인과 색감의 남성복이 가득한 “엘리트양복점”. 무수히 지나다니던 버스 안에서 무심히 보면서 어떤 사람들이 저 옷을 입을까, 맞출까 궁금했었다.

이 과감한 옷을 만든 분은 누구신지 호기심은 컸으나 화려한 의상만큼 문을 열기는 쉽지 않았다.

남자 양복맞춤집에 내가 또 갈일이 언제 오려나싶어 “확”문을 열고 들어가기로 한다. 말끔하게 양복을 입으신 사장님은 보통 멋쟁이가 아니시다. 대뜸 어떤 분이 이 양복을(그중 눈에 가장 띄는 것을 가르키며) 만드시는 지 궁금해서 들어왔다고 고백했다. 예상대로 이 양복점은 이 자리서 30여년 가까이 됐으나 본인은 은행나무 사거리에서 다른 사업을 하다 여기로 오셨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옷을 만드신 건 아니라는 뜻?’

이 자리에 오랫동안 양복을 만드셨던 분은 사정이 있어 그만두셨다고 한다. 이 불경기와 기성복시대에 자리 지키기 어려웠으리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강한 경계를 보이시니 바로 옆집, 빵집으로 자리를 옮긴다. ‘난 고개 답사을 온거지?’지 싶지만 오늘은 이 고개에 살았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그런데 여기 또 문성고개의 산 증인이 계셨을 줄이야...

정갑희 파리바케트 독산점 사장님은 20살 청년시절부터 삼립빵의 전신인 삼미당에서 제빵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대기업 대리점이라 기대 없이 들어갔던 바라 깜짝 놀랄 수밖에.

자리부터 권하시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황송하게 커피까지 내려주시며 아주 겸손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을지로 삼미당에서 대림동 삼미당을 거쳐 67년 삼립빵으로 옮겨와 지금까지의 역사를 얘기하신다. 참 대단한 역사다.

정갑희 사장님의 이야기가 그대로 우리 동네의 이야기가 되는 순간이다. 정조의 능행길로 알려진 이 고개길에 역참도 있었다고 하고 고갯마루에서 아래쪽으로 가구거리가 있는 사연도 좀 들어봐야 하는데 오늘은 순한 얼굴의 정사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로 고개를 넘어본다. 남은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하자.

문성고개는 지하철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도보로 5분 천천히 걸어도 10분 안에는 도착, 또는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안양방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문성고개”정류장에서 하차한다. 새로운 주소로 시흥대로 150길 위에 있다

 

김유선(산아래문화학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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