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복 선생이 텃밭 풍물동아리 회원의 장구 끈을 메주고 있다

굿쟁이
“난 굿쟁이다” 이희복 선생이 자신을 소개 하며 한 말이다. 첫 만남을 가진 보쌈집에서 텃밭풍물동아리 선생님을 소개받기 위해 간 자리였다. 그런데 난데 없이 굿쟁이라니? 옛날 사극에 몇 백 년은 됐을 법한 고목에 금줄이 쳐져 있고 오색 천 조각이 매달려 있는 마을의 정신적 지주인 백년나무 앞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딸랑딸랑 방울을 흔들며 펄쩍펄쩍 뛰는 무당이 연상됐다. 무당은 여잔데… 그럼 박수무당? 박수무당은 뭐하는 사람이더라…
‘굿쟁이’라고 소개하는 이 선생의 그 한마디에 오만가지 상상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간다. “사람들에게 소개를 할 때 나는 굿쟁이라고 한다. 풍물은 굿이다. 굿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민초들이 그 사람들이 무언가 극복해보고자, 무언가라도 해보고자 힘을 모으는 과정을 굿이라고 보고 있다”라고 설명하며 “풍물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가 얘기하는 것도 굿이고, 불이 나서 구경하는 것도 굿이라고 하고, 의병을 하는 것도 굿이라고 한다”고 덧붙여 말했다. 이 선생의 설명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아~ 너무 철학적이야…’ 무언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유랑예인촌
2002년 전국의 풍물공연자들이 고민에 빠졌다. 공연을 시작하면 늘 하던 순서대로 아무고민 없이 척척 공연을 끝마치고 내려오는 것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알맹이가 없잖아요. 음악적 고민없이 그동안 익힌 순서대로 탁 하고 끝나잖아요. 그러니까 뭔가 휭 한 거지…” 그런 고민들을 막 하던 차에 누군가 주축이 돼서 사람들이 강화도에 몰려들었다. 그렇게 만들어 진 것이 유랑예인촌이다. “당시 대표가 셋이었는데 나이가 제일 많다는 이유로 대표가 됐어요”라고 말하는 이희복 선생이지만 과연 그 동안의 풍물공연에 회의를 느끼고 뭔가 음악적 고민의 필요성으로 모인 사람들이 단순히 나이로 대표를 뽑았을까 싶다.
강화도에서 유랑예인촌이 둥지를 튼 지 2년 후 마리학교라는 대안학교가 생겼다. 학교에서 풍물이 정규과목으로 채택되면서 이 선생은 중학생들에게 풍물을 가르치게 되었다. 대안학교 이다 보니 일반학교와 달랐을 것이다.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이 선생은 억지로 앞에 앉혀서 가르치지 않았다. “왜 안하니?” 이런 게 아니고 하기 싫으면 “마음 내킬 때 하자”는 것이다. 아이들은 한쪽에서 놀고 선생님은 혼자서 악기를 치거나 때론 호기심에 악기를 치는 아이에 맞춰 함께 따라 쳤다. 그러다 흥이 나면 아이들이 하나둘 참여하게 됐다.

러시아속 한국인
학교에서 러시아 연해주로 소풍을 갔다. 일제시대 연해주로 강제이주를 당했던 고려인의 마을에서 170년 만에 풍물굿판이 벌어졌다. 이 선생은 어린 제자들과 같이 풍물로 마을사람들을 위한 고사를 지내고, 마당밟이도 해 드렸다. 풍물패들과 섞여 할머니들이 나와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얼굴은 분명 한국 사람인데 옷차림이나 행동은 러시아사람의 묘한 감성이 흐르는 러시아속 한국인이, 생소한듯하지만 익숙한 우리 음악에 맞춰 정말 덩실덩실 춤을 췄다. 그 순간 이 선생은 감정이 벅차올랐다.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했다.  “아…여기가 내가 있어야 할 곳 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5박 7일간의 소풍이 끝나고 이 선생은 다시 연해주로 가기위해 수소문 해 보았다. 다행히 동북아평화연대라는 NGO단체와 연이 닿아 그쪽 일을 돕는 것으로 해서 다시 연해주로 갈 수 있었다. 2년간 6개의 러시아 속 고려인 마을을 돌며 고려인들이 세운 제3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학생들에게 풍물을 가르쳤다. 처음에는 문화가 달라 문화적 충돌도 있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잘 따라주고 잘 익혀서 마을에서 발표회도 열고 즐겁게 풍물굿 한판 벌이고 놀다 왔다. 그러다 지난 2009년 MB정부가 들어오면서 단체보조금이 끊기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다시 우리 풍물선생님
어머니가 계신 금천으로 돌아왔다. 금천은 어머니가 계신 제 2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리고 금천에서 고광문 풍물패를 만났고, 그의 소개로 햇병아리 같은 우리 텃밭풍물동아리를 만났다. 어찌보면 열악한 환경의 텃밭에서 땡땡이 대마왕 풍물동아리 담당 남기자, 장난꾸러기 소연이 채원이, 사춘기 소녀 민지, 사람 좋은 조 대표와 사무국장 김 씨 등이 모여 겨울에는 비닐하우스 안에서 덩덕쿵딱쿵!, 날씨가 좋으면 텃밭으로 나와 덩덕쿵딱쿵!
이 선생은 “여기에서 굿이라는 정신을 갖고 마을 만들기를 하고싶다”고 밝히며, “굿 정신은 누가 주도적으로 하거나, 힘겨루기 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공평하게 나누고 똑같이 일하고, 누가 잘나고 못난 것이 아닌 그런 것을 만드는 게 굿”이라고 설명한다. 이 선생이 말하는 굿이 정말 good인 것 같다.

 

  지난 겨울 한내텃밭 비닐하우스에서 풍물강습을 진행했다

 대보름 축제 공연을 앞두고 텃밭풍물동아리 회원들에게 막간을 이용한 강습중이다

함께 하기에 더욱 즐거운 풍물~ ^^  이제 막 덩덕쿵딱쿵만을 간신히 뗀 초보 풍물꾼들도 공연을 함께했다~

남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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