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르신 딱지만들기 가르치셔야죠” “ 복택이 집에 갔다가 온다고 했는디, 좀 지둘려” 십분이 지났다.

“너무 늦으시니까 어르신께서 대신 가르쳐 주세요” “잠깐 가만히 있어, 이 판 끝나고”


문성경로당 우리 할매 음식 우리 할배 장난감 프로그램 진행 중의 대화이다. 오늘 주강사 할아버지는 잠깐 집에 갔다 온다고 하고 함께 참여하는 할아버지는 옆에서 고스톱을 친다.

토요일엔 마을이 학교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문성경로당에서는 종종 이렇다. 가르치는 게 엄하지도 않고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느슨하다. 평소 생활하는 대로 보여주고 알고 있는 대로 가르쳐 주어서 생활과 가르침의 구분이 따로 없다. 가르치거나 놀아주는 할아버지도 여러 명이고 또 고스톱 치며 구경하시며 한 마디씩 거드는 할아버지도 여러 명이다. 

처음에 프로그램 할 때 보조강사로 들어오는 동네의 젊은 엄마들은 할아버지들 고스톱 치는  게  마음에 걸렸다. 아이들이 배우러 온 곳에서 고스톱을 치고 있는 것은 교육적으로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 토요일마다 할아버지들의 생활 터전에 오는 손님인지라, 주인들에게 그들이 평소 재미삼아 하는 걸 하시지 마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또 ‘뭐 명절 때 식구들이 모여 고스톱을 치기도 하니까...’하는 생각으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너무 교육적 차원에서 좋은 것만 보여주려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동네 할아버지와 만나는 게 좋을 듯 싶기도 했다. 

할배 장난감 중 팽이만들기와 윷만들기 등은 재료를 살 수 없으니 할아버지들이 직접 산에 가서 나무를 해온다. 톱 가져가서 잘라오는 게 아니라 벌목해놓은 나뭇단에서 적당한 것을 주어온다. 또 비석치기 할 때도 동네 골목과 산을 두루 다니시면서 적당한 돌을 주어 놓는다.  토요일엔 제기, 팽이 등을 만들어 팽이도 치고 제기도 차며 아이들과 함께 동심으로 돌아간다. 아이들과 편짜서 윷놀이 한 판도 함께 한다. 멀리 살아서 일년에 몇 번 만나는 손주들보다 동네 손주 녀석들을 요즘에는 더 자주 보는 편이다. 

할매 음식은 제철에 나는 재료에 제철에 해먹었던 음식을 함께 아이들과 만들어 해 먹는다. 음식이 부족하다 싶으면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인절미를 해 먹기도 한다. 인절미에 여러 콩가루를 묻히면서 옷소매에 콩가루 묻는다고 할아버지께 소매 걷어달라고 하는 아이들, 콩가루 묻힌 인절미를 할아버지 입에 넣어주는 아이들 옆에서 지켜만봐도 언제나 흐믓한 모습들이다. 그동안 쑥개떡, 미나리강회, 쪽파강회, 취나물 비빔밥, 칼국수, 만두 등을 해 먹었다. 맛있었다.  


항상 음식을 넉넉히 해서 1층 할머니 경로당에도 드시라고 아이들편에 보낼라 치면 서로 갖다준다고 난리다. 음식이 다 만들어지면 큰 상 여러 개 펴고 스무명 넘게 모여 먹는다. 동네 할아버지, 동네 할머니, 동네 아줌마들, 동네 아이들이 옹기종기 함께 먹으니 더욱 즐겁다. 할아버지들은 가끔 막걸리를 사와 한 잔씩 반주로 드시기도 한다. ‘ 어르신 노래 한자락 하시라’면 빼지 않고 바로 노래 한 곡을 멋들어지게 뽑는다. 엄마들 성화에 못이겨 아이들은 쑥스러운 듯 일어나서 합창으로 답가를 부르기도 한다. 이럴 때면 꼭 동네 잔치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옛날에는 동네에서 놀면서 배우고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웠다. 할아버지가 연을 만드는 것을 옆에서 보고 배웠으며 동네 형들 따라다니며 고무줄총 만들기, 썰매타기, 자치기를 배웠다. 또 동네 언니 따라다니면서 아카시아 파머도 배우고 몇 갈래로 머리 땋는 방법도 배웠다. 

배움과 생활이 따로 있지 않았다. 동네 안에서 동네 형과 동네 언니, 동네 어른들과 두루 알고 지내며 뭐든 따라 배웠다. 그리고 모두 다 알고 지냈기에 서로를 함부로 대하지도 않았고 누구나 함께 섞여 놀았다. 

옛날에 이랬던 것처럼 ‘우리 할매 음식 우리 할배 장난감’ 프로그램 이후에도 동네 할아버지와 할머니, 동네 손주 녀석들의 관계가 지속되길 희망한다. 프로그램 이후를 고민하면서 나온 게 ‘할배 장난감 통’을 만들자는 것이다. ‘할배 장난감 통’을 경로당 앞에 두면 놀이터에 놀러온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할배 장난감을 꺼내어 놀고 다 논 후에는 다시 통 안에서 할배 장난감을 반납하고 간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거나 장난감을 반납할 때 아이들은 동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어르신들은 아이들에게 좋은 말을 들려준다. 

‘토요일엔 마을이 학교다’의 많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지역주민과 동네 아이들의 따뜻한 관계맺기가 지속되기를 꿈꾸며 또 토요일을 기다린다. 


독서공방 대표 김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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